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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양로 Nov 18. 2021

삼성을 생각한다.

수평조직으로 가시게요?

삼성이 수평조직, 다시 말해 직급을 폐지하고 직책자 아니면 다 계급장 떼겠다고 운을 띄웠습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아니지만 딱히 새롭지는 않은데요, 이미 그런 식으로 운영되는 조직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이미 CJ는 님으로 호칭한지 20년이 되어가고, 다른 많은 대기업도 직급호칭 통일 등 (페이그레이드는 유지하면서도) 수평조직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었습니다. 그 중 일부 대기업은 다시 사대과차부로 돌아가버린 경우도 있죠. 그만큼 수평조직을 만들기란 대기업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번 뉴스가 이슈가 되는 것은 조직이 국내에서 가장 거대한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시행하겠다고 하는 점일 겁니다.


수평조직. 단순하게 생각하면 팀장 이상 직책자를 제외하면 모두 계급장을 떼겠다는 얘기입니다. 신입도, 경력도, 저연차도, 고연차도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업무에 임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죠.

이건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해외 많은 기업들은 이미 원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외국에도 직급이 있었다고요? 네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책임과 권한의 범위 내에서 설정됩니다. 그런데 사대과차부로 일컬어지는, 여러분이 익숙한 (일본식) 직급체계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멀리 볼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회사 팀 내에서요. 과장과 차장의 업무가 질적으로 획기적 차이가 있나요? 대리와 사원은? 더 극단적으로 어떤 영업부서는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모두 직급은 다르지만 하는 일은 다르지 않습니다. 너는 이마X, 나는 롯X마트, 당신은 홈X러스, 이런 식으로 나눠 맡는 경우도 있지요. 어떤 영업부서는 너는 1,000톤, 이대리는 1,100톤, 김차장은 900톤...이런 식으로 실적목표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책임과 권한이 다르지 않다면 직급을 나눠놓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IMF이후로 팀제가 다수 기업에 도입됐고 요즘 부서의 최소 단위라고 하면 직장인들은 의례히 팀을 떠올릴 정도로 팀제는 이제 대세이자 일반적인 조직 최소단위가 되었습니다. 팀제는 팀장을 중심으로 나머지 팀원들이 함께 일을 하는 구조이지만 우리나라는 이 팀원간에도 서열이 있는 구조입니다. 물론 대기업 기준으로 봤을 때, 소팀제처럼 작은 팀도 있고, 임원이 팀장을 하는 대팀제 조직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팀장이라 하면 기업에서 가장 작은 세포단위 조직이고, 가장 처음 의사결정이 시작되는 책임과 권한의 단위입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팀장이 아닌 팀원들은 모두 같은 팀원인 것이 정상입니다.


왜 사대과차부가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기로 하고, 그렇다면 이렇게 기형적인 한국적 팀제는 왜 아직도 팀원간의 서열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억지춘향처럼) 수평조직을 만들려고 시도들을 하고 있는 걸까요?


우선 사대과차부 같은 직급체계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팀장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팀장님. 보고서 가져왔습니다."


"김대리. 이거 박차장에게 검토 받은 건가?"


팀장이 편하려면 이렇게 중간 검토자들을 두어 팀장에게 함부로 찾아오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팀장은 흔히 파트장이라 불리우는 그런 고참 팀원들을 통해 하부 조직들을 통제하고 관리합니다. 수평조직의 팀제는 팀장이 모든 팀원들을 1:多로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팀장이 매우 버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업무에 따라서 팀원임에도 중요한 책임을 맡아야 하는 조직들도 있습니다. 금융권이 그 예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팀원임에도 직급을 갖는 게 자연스럽고, 아직도 사대과차부를 유지하고 있는 조직의 대표가 금융권이지요.

그러나 업무 특성상 각자 맡은 일을 해서 빠르게 의사결정을 받고 추진력을 받아야 하는 조직은 여러 의사결정 단계를 두기보다 팀장과 바로 소통하고 의사결정을 받는 것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입니다. 가끔 터놓고 얘기하며 집단지성을 활용할 때도 수평조직이 더 원활합니다. 수직적 조직에서는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어렵더군요.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 불리웠던 영국은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강화함으로써 인도 식민지배를 더욱 공고히 했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권력을 가진 자 입장에서 통치와 관리를 쉽게 하는 좋은 방법은 그렇게 신분에 차등을 두는 것, 그래서 함부로 그 윗선을 넘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죠. 일제가 앞잡이를 세워 완장을 채우고, 나치가 유태인 관리자를 뽑아 동족들을 관리하게 한 것처럼요. 물론 사례가 극단적이라 회사 조직과 바로 비교해 생각하긴 어렵지만 사실 계급제는 통치의 논리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 사대과차부 직급체계를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한국 특유의 문화입니다. 선후배 문화, 동기 문화, 기수 문화 등이 일본과 한국이 공유하고 있는 독특한 사회문화적 특징입니다. 이 문화 속에서 나고 자라 지금 관리자가 되어 있는 분들은 최근 MZ세대들의 수평지향적 사고가 낯설고 때론 마음에 안들며, 동의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한 사대과차부라는 승진단계 세분화가 직원들을 동기부여한다고 말씀하는 분도 있습니다. 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중간이 아닌 맨 앞과 맨 뒤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입사원은 출중한 능력과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있음에도 더 적은 연봉에 더 낮은 수준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업무를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나이 많은 고참들은 딱히 실무에 손을 대지 않고 그 밑에 사원 대리들이 만들어온 결과물을 가지고 팀장에게 보고하고, 자기가 한 것인마냥 얘기하기도 합니다. 부아가 치밀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라도 하면 좋을텐데, 어떤 경우는 아예 실무를 할 생각이 없는 고참 직원들도 있습니다. 하릴 없이 시간을 떼우고, 주식과 코인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냅니다. 누구는 열심히 일하는데 저런 월급루팡들을 보고 있으면 화가 머리 끝까지 납니다. 팀장도 딱히 그들을 통제할 생각이 없습니다. 언제 자기도 저렇게 팀장을 그만두고 일반 팀원으로 살아야할 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 때가 되어 편하려면 자신도 그러한 은덕(?)을 주변에 베풀어두어야 합니다.

그럼 사원대리들은 손해만 보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더 잘할 수 있고, 더 열심히 하여 목표를 달성할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선배들 뒤에, 직급 뒤에 숨습니다. 낮은 급여를 받고 있으니 더 열심히 할 필요 없으며, 나보다 더 많이 받는 사람이 더 고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죠. 일면 맞는 말인 듯 하지만 수평조직에서는 말도 안되는 논리입니다. 수평조직은 모두가 프로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죠. 전술한 문제점들이 바로 흔히 말하는 '대기업병' 현상입니다.


수평조직을 만들면 조직관리가 안되고, 조직의 기강이 무너진다고 우려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일면 타당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기우에 불과함을 지금부터 설명하려고 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현재 2단계의 직급체계를 가지고, 뒷단에 4단계의 Pay grade를 갖고 있습니다. Pay grade는 겉으로 드러난 직급은 아니지만 호칭과 별도로 과거 사대과차부의 직급별 급여 테이블을 그대로 복사해 숨겨놓은 수준에 불과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직급 호칭은 2단계입니다.

페이그레이드를 올리는 것도 승진과 비슷하게 승급이라는 개념으로 불리웁니다. 승급은 현재 최소 3년만 체류하면 다음 승급을 노릴 수 있는 자격을 얻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최종 등급인 4단계까지 빠르면 9년만에도 올라설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기업 직원들은 만성적인 승진적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이없지 않나요? 고작 9년만에 직원으로서 회사가 주고자 하는 최고 수준의 급여를 받고 정년 퇴직 전까지 거의 20년 이상을 더 이상 올리갈 데 없는 사람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실제 20대 초반에 입사한 여성 직원의 경우 40세가 되기 전에도 4단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직원 중 최고 등급을 받는 직원이 조직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최고등급 직원들의 상당수가 일을 잘하든 못하든 그 급여를 보장받고 있다면, 그리고 실제로 대기업병에 걸려 팽팽 노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그 조직의 미래는 밝다고 볼 수 있을까요?

물론 다수의 직원들이 4등급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들은 무슨 동기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걸까요? 직장생활의 절반 이상을 최고등급으로 살고 은퇴하게 될 그분들은 왜 열심히 일할까요?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는데요. (임원이 있다고 하지만 천상계 이야기이니 대부분에게 해당되지 않으므로 패쓰)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의무감, 조직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과소평가하면 안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많은 직원들이 평가나 보상수준과 관계 없이 내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과연 올해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만 열심히 할까요? 아마 거의 생각도 안하고 열심히 하고 있을 겁니다. 평가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돈 조금 더 받기 위해서라고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들을 폄하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현재 우리가 만들자고 하는 그 수평조직은 20대 초중반~30대까지의 젊고 혈기 왕성한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들로 조직에 더욱 충성하게 만드는 장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지만 역기능도 이렇듯 다수 존재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시기의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방법으로 세분화된 직급체계를 쓰기보단 이번에 삼성이 쓴 것처럼 직급을 통폐합하고, 모두 동일한 호칭을 쓰며, 우수한 평판을 얻는 사람이 더 높은 연봉을 받고 관리자가 되는 길을 걷게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짜는 없습니다. 수평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준비해야할 것이 많습니다.

우선 명확한 직무분석을 해두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얼마의 난이도로 얼마의 시간이 소요되는 일인지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공정하고 공평하게 업무를 분담하거나, 혹은 더 어려운 일을 더 많이 맡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을 수립해야 합니다.

결국 매년 평가때마다 익년도 자신의 연봉을 결정받게 될 텐데, 낮은 평가를 받는다면 이제 팀원들이 거칠게 항의할 것입니다. 팀장은 이러한 팀원들의 항의를 적절하게 무마시킬 수 있는 논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며, 그 기준은 바로 철저한 직무분석이 기반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곧 성과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두번째로 수평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채용 프로세스 자체를 변경해야 합니다. 과거 기수에 따라 대규모 공채를 하던 방식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습니다. 상시, 수시채용을 강화하고, 공무원식 대규모 공채가 아닌 직무중심의 채용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들어오자마자 기존 재직자들과 경쟁할 수 있는 프로들을 뽑아야 하는 것이죠. 결국 사회초년생이 대기업에 입사해 평생직장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실력을 키운 프로들이 더 높은 보상을 제공하는 대기업에 입사하는 프로세스가 보편화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상체계도 변경해야 합니다. Pay grade 내에서 평가등급에 따라 보상하는 형태가 아닌, 개인의 철저한 평가결과에 따라 저마다 능력에 맞는 개별보상을 받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좀처럼 쉽지 않은 제도입니다. 진정한 프로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실력대로 보상받는 직장이 되는 것이죠.


이러한 변화가 부담스럽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대과차부 같은 제도와 기수별 공채문화, 선후배 문화는 과거 고도성장기에나 어울리는 문화였습니다. 지금은 저성장시대이고 이제 대기업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첨단기술이 집약된 산업이나 트렌드가 급속히 변하는 B2C기업은 뒤쳐지는 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큽니다. 그래서 삼성은 이런 제도를 선도적으로 들여와 변화를 꾀하는 것 같습니다.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회사들도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은 시대가 곧 오겠죠. 변화를 강요당할 때까지 고집스럽게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변화하는 것이 저는 언제나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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