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 13... 감정 & 거리두기

by 소망

'엄마는 자주 그 말을 되뇌곤 했다.

사람은 결국 무엇에든 익숙해지는 법이라고.


그리고 엄마는 말했다.

사람이 전적으로 불행하기만 할 수도 없는 법이라고.


마치 여름 하늘 속에 그려진 낯익은 길들이 우리를 감옥으로 데려갈 수도 있고, 순진무구한 잠으로 데려갈 수도 있다.


나의 의견을 묻는 일없이 나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다.'


ㅡ '이방인' 중ㅡ






자신의 감정선을 보고 느끼며 사는 것은 좋은 일일까?


좋다고 확신은 못해도 차분할 수 있다는 말은 할 수 있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느꼈던 생각, '나의 의견을 묻는 일없이 나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다.'


운명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니까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 운명 속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감정들은 중심을 잃고


여름 하늘 속에 그려진 낯익은 길들이 우리를 감옥으로 데려갈 수도 있고, 순진무구한 잠으로 데려갈 수도 있다고 했던 것처럼 나의 선택 밖 일이 되어 가는 곳 모르게 나를 실어 간다.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게 아니고 그 소용돌이에 빠져 헤어날 수 없는 것이다.


뫼르소가 그의 감정을 보고 세상의 굴레 속으로 들어갔더라면, 재판의 결과가, 그의 운명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는 젊을 때부터 오랫동안, 요란한 감정선에 휘둘리며 살았다. 그러다 번아웃이 왔다. 그것은 내게도 감옥이었지, 순진무구한 잠은 아니었다.


감정선을 보지 못하면 운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알아챘다. 감지 못해 생기는 증상과 후유증은 불안정이었다.



요즘 내게 또 변화가 느껴진다.

사람의 마음, 감정 변화가 장마철 날씨 같다고 했지만, 직접 보고 느끼는 차원은 좀은 다르다.


감정선을 보고 느끼는 일은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하는 일인데, 그로 인해 나는 좀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무엇이 어찌 변하고 있는지 외부인은 감지하지 못할 것이나 나 스스로는 분명히 느낀다. 그러나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무엇이 어찌 흐르는지,

무엇이 원인인지,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ㅡ아니 해결 방법은 그냥 흘러가게 둘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 또한 운명의 뜻일 수도 있고 나의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ㅡ 생각하고 있다.


뫼르소의 단순한 감옥생활처럼 나의 방콕 생활ㅡ골절 사고 5개월째ㅡ도 물리적 환경은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그 단순한 환경 속에서 그 생전 뫼르소가 겪어 보지 못했던 복잡한 감정이 발발한 것처럼 나의 이 단순한 환경 속에서도, 늘 그래왔듯 감정선이 파도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無기력 했다가 有기력 했다가,

조용했다가 시끄러웠다가,

차분했다가 소란스럽다가,

의욕이 솟았다가 가라앉았다가,

생각 속에 묻혔다가 뚝 끊어졌다가...


그렇지만 지금 다른 점은, 감정선이 이리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속이 어지러운 것도 나이고, 겉이 차분한 것도 나다. 차분하게 속을 볼 수 있고, 보며 그 감정에 부화뇌동하고 있지 않는 것 또한 나이다.



친한 사람과도 1m 이상의 거리는 두어야 한다고 했나?

나 자신과는?

나 자신과도 보이지 않는 물리적 거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볼 수 있다. 보아야 지킬 수 있고 등불을 밝혀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

지켜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거스를 수는 없어도 적어도 어느 길로 끌려 가는지는 알 수 있고 우왕좌왕하지 않을 수 있다.


세상 모든 것과의 거리 두기는 필요한 것이다. 나 자신과도, 물론 내 안의 감정과도 말이다.


나 자신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과의 거리 두기는
고요와 평화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by 소망



그래서 나는 속은 시끄럽고 소란스러우나 조용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자중할 수 있다.

마음 단단히 하고 운명의 흐름을 지켜볼 수 있다.





위 글을 쓰고 침대 이불정리를 했습니다.


늘 덮고 자던 이불을 개며

'오늘 하루 또 새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해야지' 하는데, 마음이 텅 비어 있고 이 마음도 감옥에 있는 뫼르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불은 산뜻한 색임에도 감옥 안의 후질그레하고 어두운 색으로 느껴졌습니다.


분명 나는 뭔가를 버텨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적응이라는 이름으로요.


이 어둠도 순간처럼 사라질 거고요.

감옥에서도 불행하기만 한 건 아니듯, 나에게도 곧 행운이 올 것이고 내일이라는 시간이 오면 이불이 제 색을 찾을 거라고 믿습니다만, 지금의 감정은 이상하게도 어둡네요. 이도 곧 익숙해질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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