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 17... 축복의 삶

고 이순재 배우님의 연기 인생 다큐를 보고

by 소망

고전이 된 'Back To The Future'는 1987년 개봉영화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소재의 영화로 진짜 흥미롭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과거나 미래로의 여행은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타고 갈 타임머신이 없어 공상에 그치고 여전히 영화나 드라마 속 세상에서만 즐길 수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현재의 인생을 즐기는 일은 언제까지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느 미래쯤엔 그도 가능해질 수 있을까?...




과거와 미래를 사는 사람들


그러나, 타임머신을 타지 않고도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연기자들이다.


11월 25일 연예계의 큰 별이 가셨다.



금요일 밤, 생을 마감하신 배우 이순재 님의 다큐를 보다가 문득 알게 되었다. 타임머신 없이, 현생 속에서도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사람들이 바로 연기자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늘 연기로만 보았던 과거와 미래가 그들에게는 연기가 아닌 현재의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과거의 현재와 미래의 현재를 오가며 사는 일은 신의 축복이 아닐까?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은 글 속에서, 상상 속에서, 혹은 꿈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 불가능한 체험은 현재에서 가정한, 가상 세계를 현실화하는 일에서 경험할 수 있다.


다큐 속 님을 보면서 연기 속 인물이 님인지, 아님 후배들을 만나고, 대본을 연기하며, 사람들과 대화하는 님이 님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마치 아파서 병원 침상에 누워 의사와 대화하는 님도 연기하는 님인 듯, 님의 목소리는 연기처럼 생생했다.

과거 역사 속 인물을 연기하며 대본이 손에 쥐여있던 시간과 연습한 시간. 촬영하는 시간 등 그 작품에 몰입해 있던 시간이 얼마였을까?

아마도 작품 하는 기간은 그 과거 시간 속에 살았을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포함해 수백 편의 작품을 하는 동안, 님 또한 누구보다 그러했을 것이며 젊은 날부터 숨이 지기 전까지 현생의 '이순재'란 인물로 산 날은 실제로 얼마나 되었을까를 헤아려보았다.


'연기 인생'이란 하나의 이름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님을 '이순재'라 부를 수는 있는 걸까?

진정 님은 인간 '이순재'였을까?


헷갈리고 의문이 들었다.


과거라는 현재의 영조대왕이나 리어 왕은 아니었을까?

현생에서의 대발이 아버지는 아닌가?


연기자의 작품 캐릭터는 한 인간 속에서 함께 살고 있는 과거 속, 미래의 인물이며 또한 현재 삶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상상 속 시간을 사는 연기자들은 축복의 삶을 사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축복인 삶의 무게


한편

나는 축복이라 생각하는 그들의 삶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삶의 무게는 얼마일까?'


파란만장한 삶

그 삶이라는 것은 한계가 없구나 싶다.


고 배우 이순재 님의 다큐 '신세 많이 졌습니다'를 보는 시간만큼은 어쩔 도리 없이 님의 삶을 관조하며 보았으니...


저리 사신 님은 연기한 캐릭터만큼의 인격과 삶을 살아낸 사람이란 생각을 하며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한 인간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나 고되고 정신없이 분주하다. 바빠서 분주한 게 아니고 사람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것들을 하고 생각하는 것,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분주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님은 한 인간으로 태어나 수백의 다양한 인생을 살았으니 얼마나 분주했을까 싶다. 그것을 운명이라 해야 할까? 운명이기에 가능한 것이었을까?


그 분주함에 부러운 마음이 깃든다.


얼마나 고되었을까?

얼마나 슬프고 우울했을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얼마나 알찬 삶이었을까?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을까?

얼마나 뭉클한 감동의 삶이었을까?

얼마나 열정적이고 격정적인 삶이었을까?


참 무거웠겠다... 한 생에서 수백의 삶을 살다 갔으니 말이다. 내 생각에 그 무거움은 곧 한 인간에서 벗어난 해방과 감사할 축복이다.


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수백의 삶을 산 님은 축복이었겠다. 고정된 캐릭터가 아니니 해방감이 들지 않았을까?




고 이순재 님을 추모하며


그리고

님은 마지막까지 삶의 책임과 의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가셨다. 생의 에너지를 91세까지 활활 태우고 가신 인간 모범상이셨다.


줄곧 삶 자체의 생활이 연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화 한 마디마디가 극 중 대사 같은 느낌을 주는 배우도 드물 듯한데, 님이 그러셨다.

어떤 역할에도 진정이셨고,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는 배역에 상관없이 가장 성실한 인간이셨다는 말이다.


연기자 '이순재' 란 인간으로서도 손색없는 삶을 사셨다. 깊은 사생활은 모르니 장담은 못하나, 님의 언행과 태도는 남은 국민 모두에게 귀감이 될 듯하다.


'님은 모든 이에게 신세 많이 졌다며 떠나셨지만, 많은 가르침과 사랑을 받은 후배 연기자들과 님으로 인해 웃고 울며 즐겁고 행복했던 국민들도 님께 신세 많이 진 것이 맞습니다. '


아름다운 배우, 한 님이 그리 가셨다.


'죽음'을 억지처럼 새로운 시작이라고 해도 죽음은 슬픈 일임에 틀림없다. 지난해까지도 열혈 연기를 선보이신 님이셨기에 그 삶의 자취가 더 슬퍼서, 더욱 깊은 애도를 표하게 된다.


'새로운 배우로서 거듭나 영원히 행복하세요.

노구는 벗어 놓으시고 편히 가세요.'


나의 생 내에 님의 연기를 다시 보는 일은 지나간 필름 속에서나 가능하겠지요!


실제 대면한 적은 없어도 국민 배우는 영원히 국민의 가족이 맞습니다. 슬픕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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