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유의 왕께서 제게 잠을 내려 주십니다.'
잠자리에 들면 이렇게 믿고 몸에 힘을 뺀다.
그래도 가끔 잠이 빨리 안 들 때는 뚜렷한 생각의 실체는 보이지 않으나, 흩어져 있는 감정이나 어휘들이 잠을 방해할 때이다.
그럴 때 나는 전도서를 듣는다.
'이전 세대는 가고 나중 세대도 가나 땅은 그대로요. 해아래 새것이라 할 게 없이 예전에도 있던 것이 나중에도 있을 것이다.
바람도 남이나 북으로 돌고도나 제 불던 곳으로 가고, 해도 떴다 제자리로 돌아간다.
뭐 하나 새것도 없고 제 것이라 할 것도 없이 인생 또한 난 곳으로 돌아갈 것이니 모든 것이 바람을 잡듯 헛된 것이다.......
1장과 2장을 듣다 보면 어두운 꿈나라다.
'그리고 평안히 눈뜨게 하소서.'
아침이면 평안한 마음으로 눈을 뜬다.
전도서에서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하는 것은 삶의 유한성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왔던 곳에서 뺑뺑이를 돌뿐이다. 둥그런 투명 유리공 안에서...
투명한 옷을 입은 투명한 인간들ㅡ뢴트겐의 x-ray에 드러나는 뼈대조차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ㅡ이 뿌려진 하얀 눈가루처럼 투명한 구(球) 안에서 흩날린다.
의식계에서의 눈에는 다양한 색상이 섞인 세상이나 무의식계의 어느 눈에는 투명한 흰색을 띠고 있다.
추운 나라의, 기념품 숍에서나 봄직한 스노볼, 그 스노볼에 거대한 세상이 들어있고, 투명한 흰색의 인간들과 하얀 건물들이 들어찬 색 없는 세상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
흰색의 투명인간들은 눈이 순간 녹아 사라지듯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거대한 스노볼 안에서 흩날리는 눈가루 같이 살아갈 때, 어떤 이는 선행을 하고 어떤 이는 해를 입힌다. 선행의 손은 순간의 빛을 내고, 해를 입히는 손에서는 피처럼 검붉은 파편이 튀다 사라진다. 보는 이만이 알고 있는 선행과 악행의 장면이다. 투명한 그 몸에서는 가끔 검거나 잿빛의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살짝 피어오르다 사라지기도 한다. 태어난 그날부터 사라지는 그날까지 아무 색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고, 환한 빛이 수없이 발산되는 경우도 있고 검붉은 피를 뚝뚝 흘려내는 경우도, 검은 연기로 그을려버린 경우도 생겼다.
거대한 눈은 수많은 눈송이 중에서도 정확하게 어느 것인지를 알아내는 신의 눈이다.
선행의 환한 빛이 사라져 다시 태어날 때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에서 눈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난다.
성경에는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가 아는 세상은 백 년이 흐르고 천년, 그 이상의 흐름 속에, 수많은 눈꽃들이 피었다 지어간 장소이다. 지어간 눈꽃들을 우리는 지난 세대라 한다. 세상은 뿌려진 눈꽃에게는 긴 시간일지 모르나, 그 눈에는 순간이다. 모든 눈송이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누군가의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다.
고층 빌딩도 그 눈에는 투명이니 '몰래' 혹은 '숨어서'라는 행동이 통할리 없고 비밀도 있을 수 없다.
그러니 같은 눈송이인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행동이 무슨 소용이며, 순간 녹아 사라질 존재에게 무슨 영예가 있겠는가!
선행을 보이게 할 필요도 없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몰라도 거대한 신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 언젠가 무너질 빌딩을 제 것이라 할 것도 없으며, 빌딩은 눈꽃보다 오래 남으나 그도 제 것이 아니니 마음 둘 것이 아닌 듯하다.
우리는 눈가루처럼 왔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존재이다.
우리가 사는 스노볼 같은 세상에서 잘 사는 길은 아름답게 서로서로 엉켜 붙어 좀 더 오랜 시간 꽃으로 피었다가 사라지는 것이 영광이다.
긴 듯하지만 짧은 인생
잠시 와서 의탁하고 가는 곳
변함없이 있어온 해와 달, 땅과 바다, 산과 들이 우리에게 의탁했다 가버리는 게 아닌, 우리가 왔다 가는 곳이 세상이다.
영원한 주인은 누구일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호화로운 궁전은 사막의 신기루일 뿐이다.
그러니 헛되고 헛되며, 세상의 것을 잡으려는 욕심은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
욕심이 생길 때 삶의 유한함과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무언가가 툭툭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스노볼 안에서 눈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이리 상상해 본다.
그리고...
마음이 편해져 잠에 빠져드는 것은 욕심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