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 18... 이 몸의 신비 & 감사

by 소망

폭설의 첫눈이 내린 이틀 후

눈을 뜨자 창밖으로 보이는 맞은편 아파트 꼭대기에 쌓인 흰 눈이 '나 아직 살아있어.' 하고 안도하는 듯 조용하다.


해를 막은 희뿌연 하늘이 그를 돕는 듯, 꼭대기라 짧은 태양 빛에도 금세 녹아 사라질 듯한데, 그 짧은 눈의 생명을 보호하고 있다.


길게 기지개를 켜다가 문득, 행복은 길게 늘이는 이 몸속에 있고 '구름 속에 감춰진 무지개'ㅡ이는 하나님 약속의 말씀이다.ㅡ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라는 무지개가 늘 왔다리 갔다리 오고 가는 구름 닮은 이 고통의 육신 속에 들어 있다는 생각.


나는 침대에서 꼬물거리며 움직인다.

꼬물거리는 건 나만이 아니다. 작은 애벌레도 꼬물거리며 산다. 먼 곳에서 보는 나도 꼬물거리는 애벌레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 싫어하던 애벌레를 보는 시각의 전환이 일어나는 시점이다.


이런 상념의 시간,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밤이면 제멋대로인 생각은 순해져 무의식의 감각 속 꿈나라로 인도되고 꿈나라를 구경하느라 생각은 쉬고, 뇌도 쉬고, 눈도 쉬고ㅡ꿈나라를 구경하는 눈은 진짜 쉬는 건지 모르겠다. ㅡ몸은 시체 놀이하듯 잠 속에 빠져든다.

꿈나라를 구경하다 눈 뜨는 아침이면 생각이 모습을 드러내어 '너 살아 있어' 알려주는 듯하고, 의지가 없는데도 이미 발은 꼼지락거리며 스스로 건재한지를 살핀다.

각자의 일을 시작하니 영화의 삶이 오픈되고 식물의 잎과 꽃이 생동하며, 새 창조의 날이 시작되는 듯하다.

자율 신경이 내 몸을 체크하고 고유 감각이 눈을 뜨고... 원체 몸이란 잠깐 손을 놓고 돌아간 후의 기계들이 기본 시스템만 돌려가며 기름칠만 하고 있는 공장의 기계설비 같다.


이제 직공들이 출근했으니 잠시 쉬었던 작은 시스템들도 돌려 생산을 시작할 때다.


어느 것 하나 나와 같지 않은 것이 없고, 삶과 같지 아니한 것이 없다.


희뿌연 구름층이 벗어나며 파란 하늘이

옅게 드러나고 있다. 갸들도 일을 한다.

움직이는 다리가 뻑뻑해도 부은 손이 찌릿거려도 모두 해우를 할 시간이 되었다. 꿈속 세상에서 만들어진 찌꺼기들을 버리고 생동할 시간 말이다.


새롭게 시작되는 아침에 감사한 이유이다.




한참 전 쓴 글이 생각나 찾아보았다. 글은 그대로 부식되지 않고 남아있을까? 그도 신기하다.



참 신기합니다.

이 몸의 높이는 160.8 cm.

이 몸의 무게는 57kg.


이 작은 몸이 아침이 되면 눈 비비고 일어나 꼼지락꼼지락 쭉쭉~ 움직입니다.


이 작은 몸은 무엇이든 척척 해냅니다. 틀려도 잘못되어도 뭐든 해냅니다.


산도 오르고, 하늘도 오릅니다.

건물도 짓겠다면 못 지을 건 뭡니까~

깊은 바다로 잠수도 합니다.

땅속도 들어갈 수 있고 꿈나라도 갑니다.


맘만 먹으면 지옥도 천국도 갈 수 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무슨 글이든 지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든 마음만 먹으면 꺼낼 수 있습니다.


어디에든 뭣이든 그릴 수 있고

꿈마저 그려낼 수 있습니다.


참으로 말도 잘 듣습니다.

신비한 램프라도 품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충성도 합니다.

평생 눈 돌리지 않고 한 주인만 섬깁니다.

결코 떠날 맘 없습니다.


충성스러운 건 알겠는데

누가 누구를 섬기는 건진 잘 모르겠습니다.


어~ 주인은 어디에?

주인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진정 신비한 램프인가요?


참 신기합니다.


160.8은 170도 될 수 없는데,

57은 100도 될 수 있다네요.


하늘로 뻗치진 못하고 옆으로 퍼질 수 있는 건 왜랍니까?


신기한 이 몸은 점점 찌그러져 나중엔 흙이 된다네요.


160.8과 57은 과연 얼마나 작고 작은 건지요...


주인은 책임감이 있는 거랍니까?

아님, 몸이 스스로 하는 일이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