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 20... 게으름의 대가(代價)

by 소망


자전거에 올랐다.

페달을 밟으며 시선은 당연한 듯 베란다 창밖을 향한다.


먼저 거치대에 널려있는 옷걸이가 어지러이 시선을 분산시킨다. 아니, 정신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에이 저 위 넓은 하늘을 보고 싶은데, 흩어진 옷걸이를 한쪽으로 모을까?' 생각한다.


'아~~ 귀찮아.'

갑자기 귀찮다는 생각 아닌 느낌이 온몸에 전기가 흐르듯 한다. 동시에 이미 생각은 내 움직임과 동선을 훑어 브리핑이라도 하듯 일사천리로 안내한다.


우선 밟고 있던 페달을 멈추고 자전거에서 내린다. 창까지 걸어가 문을 연다. '아차, 옷걸이 옮길 나의 막대손까지 챙겨 들어야지.' 비집고 올라온 생각까지 하면서 돌아서 침대 위에 있는 막대를 들고 다시 창가로 향한다. 그러고는 흩어진 옷걸이를 주욱 쭉쭉 한쪽으로 민다. 그러면 끝? 아니 다시 자전거로 올라가야 한다.

하늘을 보고 싶은 대가의 움직임과 일련의 과정을 실행하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좀 넓은 하늘을 보기에 할 일이 너무 많게 느껴진다.


그뿐이랴, 이미 분산된 정신에 거치대의 작대기 모양도 창 위를 가로막은 몇 칸의 버티컬도 모두 내 눈을 파고든다.


보고픈 하늘을 좀 넓게 볼 것인가?

아님, 가려진 것들에 의해 쪼개진 답답한 하늘을 볼 것인가?


자전거 위에서 보이는 저 하늘이 다리환자인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넓으며 하늘과 맞이은 유럽풍의 박공식 지붕과 붉은색 처마가 사이의 나무와 어우러진 경치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위치인데 말이다.


발의 통증과 다리의 불편함이 오랜 시간 걷기에 대한 거부감을 키워왔다.


잠깐의 생각으로 건강할 때 몰랐던 몸의 움직임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느꼈다. 그도 알게 모르게 나를 지탱해 온 몸의 작용이었다.


이런 사소한 행동으로 귀찮다고 생각한 건 의식 밖의 일이었다.

그런데 팍 느낌이 왔다.

'이런 귀차니즘이 바로 게으름이구나.'


일련의 변명거리를 찾아가며 움직임을 줄이는 것.

즐기고 싶은 것마저 포기하게 하는 선택형질.


이미 하늘을 품고 있던 나의 고요함은 깨졌다.


그러나 이 의식은 찾아 헤맨다. 게으름을 인정하고 몸뚱이를 지배하는 정신을 용서할 핑계적 대안을... 나는 몸을 앞으로 숙여 자전거에 팔을 기댔다. 납작하게 엎드린 상체의 눈을 들어 옷걸이 아래 좌우로 길어진 가로형의 일체 된 하늘과 지붕과 나무를 본다.


게으름의 대가치고는 쓸만하다. 그러나 생각이 휘젓는 사이 평화는 깨졌다.



오늘의 생각은 고요한 평화를 깬다. 아니 깼다.

순간 나를 잃었다는 걸 알았다.



게으름은 기쁨을 놓치는 일이다.

자연스러운 웃음을 잃는 일이다.

감동의 눈물을 잃는 일이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게으름으로 잃는 것들을 대신할 기회와 소득을 찾고 얻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 순간을 잃고 아쉬움만을 남기는 것임도 알아야 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만이 게으름은 아니다. 모든 행위를 멈추고 가만히 있는 것,

최소한의 기초 대사만을 유지하는 일이 게으름이 아니고 마음이 원하는 일을 저지하고 멈추는 것도 게으름이다.


하루 종일 시체처럼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기를 원하는가?

그렇게 하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다.


나는 오늘 게으르지 않을 기회를 잃었고, 마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못한 게으름을 탓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