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실마리를 보다... 6편/ 또 다른 새엄마

불안정한 정서의 정체

by 소망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서 가능한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는 썼다. 계속 진물 닦아내기를 반복해야 했다. 내 눈, 결국 예쁘게 자리 잡지 못하고 눈 밑이 우들두들한 찐보가 되었다.

방황과 혼돈 속에서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밤에는 잠을 설치며 계속 초감정의 꿈을 꾸었다.


아직도 고 귀여운 까까머리 동생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기어 나오다 문턱을 넘어 떨어져 바닥에 머리를 박고 울어 젖히던 그 아이의 울음소리.




첫 번째 새엄마, 호적에 오른 정식 새엄마가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조그만 툇마루에 낯선 아주머니가 앉아 날 보고 빙그레 웃으셨다. 몸은 퉁퉁하고 얼굴은 자그마한, 뭔가 신체 균형이 언바란스한 아줌마였다. 인상은 선해 보였다. 부끄러웠는지 웃기만 하고 말은 없었다. 그저 직감으로 '또 다른 새엄마구나' 했다.

그날부터 우리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우리 사는 곳보다 더 시골에서 온 아줌마는 순박함이 있어 초등생이던 나와 웃어가며 잘 지냈다.


그때는 내 의식이 좀 컸었나 보다. '저 아줌마는 왜 이런 집에 왔을까?' 좀은 맹해 보이는 그 아줌마를 보며 생각했다. '오래 살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다.


또 다른 새엄마는 부끄러움이 많고 순박했다. 몸집이 큰 편에 비해 부지런한 편이어서 그럭저럭 살림을 잘 돌보았다. 그때의 나는 마음 편히 학교에 다녔다.


좀은 정이 붙어가고 익숙해가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다. 역시 새엄마 모습이 안 보였다. 어른들은 내게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들리는 말로는 아주머니가 지병이ㅡ지금 생각하면 질환이었던 것 같다.ㅡ도져 친정으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좀 어처구니없었다. 어른들이 참 책임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머니가 불쌍했다.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지. 집으로 돌려보내다니...' 이런 생각을 했지만, 난 말 할 자격도 없고, 참견할 일도 아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때부터 할머니와 아버지의 태도에 약간의 불만이 생겼다.


그 후, 아버지는 더 이상 다른 아주머니를 데려오지 않고 호적상의 새엄마를 찾아다니셨다. 다시 새엄마가 돌아오시자, 두 분은 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나 살림을 꾸리셨고,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았다. 오빠도 함께 살았었는데, 의식 속에 오빠는 잘 등장하지 않았다.


5학년 때인가... 아버지는 타지 살림을 접고 이쁜 여동생을 데리고 왔다. 새엄마가 또 나간 것이다.

2학기에 한 달 이상 등교를 못 했다. 난 그때부터 장기 결석자가 되었다. 할머니께서 가끔 서울 따님 댁에 가시면, 치매가 있으신 할아버지와 여동생을 돌봐야 했다.


6학년 때 역시 학교에 못 다녔다. 물론 잠깐씩 등교한 날도 있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한 번씩 간 학교는 친구, 선생님과 함께 늘 생경한 곳이었다.


한 번은 할아버지 아침을 드린 후, 어린 동생을 업고 학교에 갔다. 담임선생님이 놀라시긴 했지만, 학생이 공부하러 왔으니 그냥 받아 주셨다. 동생을 의자 옆에 내려놓으니 여기저기로 헤매며 기어 다녔다.


2교시쯤 칠판에 필기를 하시던 선생님이 드디어 말씀하셨다.

"ㅇㅇ야, 동생 집에다 잠깐 데려다 놓고 와."


'집에 두고 오라고? 집에 두면 누가 보는데? 가라는 거구나. 뭔 선생님이 저래? 공부하겠다고 동생까지 업고 온 학생을 집으로 가라니...'

어려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섭섭한 생각만 들었다. 그 즉시 책상 정리하고 동생을 업고 나왔다. 선생님을 원망하며 그다음 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5학년 때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김ㅇㅇ. 나는 조용하고 차분한 그 애를 좋아했다. 내가 학교를 못 가니 점점 멀어졌다.

나는 후배들과 함께 중학생이 되었으니 ㅇㅇ이는 나의 선배가 되어 다시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새엄마는 감사하게도 우리 곁으로 돌아와 주셨다. 할머니 집에서 함께 살던 아버지가 한 동안 또 방황하시더니 또 살림을 분가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쁜 동생이 생겼다.


나의 정서 속에서 들락날락한 부모님, 동생들, 낯선 아주머니까지...

좋아하던 친구도 잃었다. 정들면 떠났다. 탄력성을 잃은 물체처럼 나의 정서는 메말라갔다.



나는 초기 청소년기를 보내며, 또 다른 정든 지인을 보내야만 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슬픔이 턱~ 툭~ 튀어나왔다.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



To be continued~




에필로그


30대 후반에 5학년 때 좋아했던 친구 ㅇㅇ이를 찾아갔었다. 내 사무친 그리움에 갔다. 내 마음과 다르게 맹맹한 그녀의 태도를 보고 서글펐다. 서로 다른 감정을 확인했고, 어색함만 안고 돌아왔다. 그 후, 다른 동창을 통해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난 그리움을 풀지도 못했는데, ㅇㅇ이와 회포도 풀지 못했는데... 그녀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 당시 겪은 일들은 뭔가 이상한 감정만을 남길 뿐이지, 당시의 생활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파급력은 갖지 못한다. 그래서 다 겪어내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베일 속 모습이 슬픔인지, 외로움인지, 그리움인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모든 일들이 어느 날 느닷없이 일어난 것처럼, 나의 우울증도 느닷없이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게 인생의 베일이었음을... 너무 늦게 알았다.

묻고 지내온 시간만큼 치유의 노력과 시간도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앎의 시간과 모름의 시간도 공평을 따지는가 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