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90대 송해 님의 힘찬 오프닝 외침과 함께 밴드의 음악이 흐르던 kbs의 오랜 프로그램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송해 님은 안타깝게도 코로나 증세로 급격히 악화되어 생명을 잃으셨다. 님은 대한민국 아줌마들 누구나 부러워하던, 90대에도 왕성한 활동으로 돈을 벌어오는 가장의 모범상이었다.
남자도 죽기 전까지 돈 벌어오는 기계는 아닌데, 많은 여자들은 님과 같은 가장을 원한다. 생각해 볼 문제이다.
퇴직 후, 친구들과의 주요 대화는 "어떻게 사니?"에서 시작된다.
"살만 하니?" "뭐 하고 사니?" "심심하지 않아?"등등 우려 섞인 소리를 들었다.
"바빠~" 한 마디로 정리하지만, 친구들의 걱정의 이슈는 늘 경제적 문제이다.
모아둔 돈으로 살 수 있냐는 말이다. 현금 동원은 가능한 건지. 나보다 우리 일을 더 걱정한다.
우리ㅡ나와 남편님ㅡ는 일찌감치 뜻이 있어 퇴직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창 일할 50대의 퇴직은 아니라고 다들 고개를 흔들었다. 나의 직접 원인은 아파서 퇴직을 한 거지만, 남편님은 좀 젊다 할 때 하고픈 일이 있어 결정한 것이다. 난 그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동시에 은퇴한 백수가 되었다.
친구들도 그러하지만, 주변의 아줌마들을 보면 50대나 60대나 70대나 다 비슷한 생각이다. 남편이 오래도록 돈 벌어다 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아줌마들, 특히 주부로 살아온 아줌마들은 돌아보고 깊이 생각해 보라 권하고 싶다.
내가 직장 생활해 봐서 아는데, 남자들도 무지 피곤하다. 주부들도 하는 일 많고 중요한 일을 한 거 맞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해줘야 하는 때가 은퇴 시기이다. 50대 후반부터는 자녀들 다 독립시키고 가계 경제도 축소되어 돈도 많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친구들 보면 가정 경제는 아내들이 꽉 틀어쥐고 축적해 왔다. 알뜰살뜰 살아온 아내들의 공로가 빛날 시기가 온 것이다. 돈 버는 일만 해온 남편들이 위축됨 없이, 직장에서 벗어난 일반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남편들은 적어도 30년 이상 건물 안에 갇히고, 직무에 매여 노동과 근로의 세월을 보냈다. 남자들도 여자들처럼 60이 되고 70이 되어 노화된 몸을 쉬어주고 싶다.
그러나, 보통 아줌마들은 말한다.
"이제 애들 키워놓고 친구들하고 여행 다니며 즐기고 싶은데 우리 남편이 퇴직을 한다네... (한숨)"
겨울 혹한과 여름 혹서에 주섬주섬 챙겨 나가는 사람은 바로 남자들이었다. 일해 가족들 먹여 살린 건 그들이다. 그들도 이제는 쉬고 싶고 아내랑 함께 남은 삶을 즐기고 싶다. 하고 싶었던 일 중에는 힘과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돈만 벌어다 달라고 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좀 덜먹어도 같이 덜먹으면 되고, 있는 것 나눠 쓰고, 없으면 주택 모기지로 살면 되지.
보통 친구들에게 놀고 싶다고 하는 아줌마들은 경제적으로 살만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워킹맘들보다는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긴다. 피부과는 단골 삼아 다니고 얼굴도 매끈하다.
친구 모임에서 보일 허세로 인해, 또는 자신의 보상 대우를 위해, 쉬어야 할 나이의 남자들 계속 스트레스 있는 직장으로 몰아내는 일은 숙고할 일이라 본다.
열심히 일한 당신도 좀 쉬세요. 부부가 함께 노세요.
단, 퇴직 후 비전이 없어 지하철에서 헤매거나, 주변 공원을 무작정 배회할 거라면 끝까지 일을 하세요.
생각이 많으면 몸을 써야 한다.
내 주변의 한두 사람은 내게 말한다.
"하루 종일 화분을 옮겨 봐."
"네 몸이 편하니 그런 잡생각을 하는 거야."
"그리 놀고 있으면 어쩌니? 돈을 벌어야지."
때론 한심하다는 표정을 볼 때도 있다.
나는 32년간 직장 생활을 했다. 1년을 하루같이 일했다. 번아웃 후 자진 퇴직을 하게 되었고 만세를 부르고 나왔다.
퇴직 후 몇 년간 심리적 아픔이 계속되었지만, 난 그 시간을 통해 거듭났다. 묵상과 성찰, 사유하는 시간이 내 생활의 전부였다. 그 시간들이 나를 안정되게 만들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운동부터, 산책, 말씀 듣기, 독서 등이 하루를 지나 한 달, 1년, 2년 3년, 4년... 그리고 5년 차.
나를 컨트롤하고 나를 인간으로 세우기 위해 꾸준히 실행했고, 나의 인생 후반은 건강과 행복, 신앙의 삶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퇴직금은 32년간 일한 나를 혹시나 겪을 초라함에서 벗어나게 해 줄 나의 큰 자산이 되었다.
성실하게 살아온 대가로 얻은 보상은 먹고사는데 지장 없을 정도이면 된다. 그러나 요즘처럼 인플레이션이 심하여 경제가 휘청일 때는 사실 먹고사는 문제뿐 아니라 삶의 질을 생각하면, 받은 퇴직금에 기대어 야금야금 파먹고 살아서는 안 된다. 간간이 소득을 창출해 내는 것이 좋다. 소득을 위한 약간의 시간을 쓴다. 퇴직금을 적당히 비축하기 위한 벌이로써 말이다.
그래도 오래도록 직장 생활을 한 나에게는 백수로서 즐길만한 여유의 시간이 꽤 있다.
그래서 난 백수라 한다. 난 백수가 좋다.
이제는 백수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즐길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주변 누구에게나 말한다.
'수고한 만큼 백수가 된 당신을 즐기세요.~'
'수고한 만큼'이라는 말의 무게가 느껴지는가? ㅎㅎ 그냥 백수가 아니다.
지금 백수인 나는 글쓰기까지 하느라 바쁘다. 즐거운 바쁨이다. 내가 백수로서 즐기는 몇 가지는 모두 즐거운 바쁨이다. 그런데 주변인들 중에는 나의 이런 생활이 한가하게 노는 것만으로 보이는가 보다. 내가 묵상과 사유로 글을 쓰고 나를 온전하게 다듬어나가는 일이 진짜 중요할 뿐 아니라 제일 소중한 일인데, 한낱 쓰잘데기 없는 잡생각들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나의 정신적, 물질적. 육체적으로 느껴지는 충만감은 나 자신만이 알고 난 지금 나름 꽤나 행복하다.
나는 노는가?
아니다. 난 열심히 일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내가 즐겁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야.
사람들 중에는 '생각하는 것은 무익하다'라고 보는 이가 있다. 그래서 몸을 움직여 돈이라도 버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아님 돈을 위한 정신적인 일이라도 하라고...
정신적인 일로 돈을 쓸 만큼 벌려면 반드시 치러야 할 스트레스라는 대가가 있다.
난 스트레스 없는 정신적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내 체력에 맞는 육체적 일로 적당히 보충액 정도만 채울 것이다.
그러면 난 돈 버는 백수라 하겠다.
여전히 살기 힘들어 죽겠다고 하면서 엘리베이터 있는 빌딩 상가를가진 친구도 돈돈 돈하며 생활 전선에서 전전긍긍한다.
명품 걸치고 돈돈돈 외치며 생활 전선에서 총 맞아 파리해지느니, 1만 원짜리 지하철 역내에서 산 티와 바지ㅡ요즘은 디자인도 죽여준다.ㅡ 심플하게 입고 멋진 카페에서 책 읽으며, 지대넓얕의 지식 대화라도 나누는 게 훨씬 품격 있어 보이지 않나.
백수가 좋다. 그러나, 나의 아들이 백수다? 노력하고 분발해도 안 되는 경우는 인연의 탓이라지만, 해이한 정신 탓이라면 그건 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