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실마리를 보다... 5편/ 새엄마

잦은 이별로 외면당한 어린 감정

by 소망

밤을 지새운 후, 내 눈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이 부었다. 시푸르딩딩 울긋불긋. 가관이었다. 의식은 몽롱하고 끊임없이 올라오는 생각으로 낮 또한 잠들 수 없었다. 침대 위에서 세운 두 다리를 끌어안은 채 병든 병아리처럼 꾸벅거렸다.

내 의식은 간절히도 모든 것을 기억해 내고 싶었다.




"우리 엄마 하늘나라에서 왔어요."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시고 몇 개월쯤 지나서였을까. 아버지는 새엄마를 대동하고 오셨다. 그동안은 할머니께서 우리를 돌봐주고 계셨던 것 같다.


젊고 이쁜 아줌마는 뽀얀 얼굴에 좀은 세련되어 보이는 옷을 입고 오셨다. 어른들이 이제 그 아줌마가 엄마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왔다며 뛰어나가 동네 친구들한테 자랑을 했다.

'에고 철딱서니...' 어린아이였지만, 그도 분별을 못했을까. 지금 나의 생각도 그렇지만, 수군대던 아주머니들의 대화 속에서 듣던 소리였다.


새엄마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물론 아버지는 새 장가를 가신 것이다. 세 아이가 달린 홀아비였으니 어느 아줌마라도 환영할 판이었나 보다. 할머니도 좋아하셨다.

어린 나는 새엄마를 잘 따라서 미움은 받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한 태생적 직감이었을까.



새엄마 밑에서 1학년 입학을 했다. 입학 전 어느 날, 새엄마는 빨간 투피스를 사 오셨다. 바지를 입었더니 오리엉덩이가 아빠를 닮았다며 웃으셨다. 윗도리를 입으니 윗배가 볼록 나와 옷태는 나지 않았을 텐데 이도 아버지 체형을 꼭 닮았다고 계속 웃어대셨다. 새엄마가 웃으시니 나도 좋았다. 어린 나는 새엄마께 고마워서 '엄마, 나중에 크면 밍크코트 사줄게.' 했다. 밍크코트는 어찌 알았는지... 아니면 크면서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입학 때 사준 옷이 너무나 고마워 아직도 실천하지 못한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갔다. 언니는 아버지의 새장가 이후 거의 보이지 않았고, 오빠도 내 생활에서 격리되어 있었다. 어쩌면 달콤한 날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르고 두 분은 잘 다투셨다. 새엄마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셨다. 엄마도 다르고 아버지도 다른 동생 ㅇㅇ이었다. 난 그 아이를 잘 돌봐줬고 예뻐했다. 아버지가 술 드시는 날에 그 아이는... 내 눈에 늘 안쓰러웠다. 아마도 두 분의 불화가 더 심해진 이유일 수도 있었다.


2년쯤 흐른 뒤였을까...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ㅇㅇ이 사라졌다. 다른 곳으로 데려다준 것 같다. 난 몹시 슬펐다. 지금도 그 동생이 그립다. 어디서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느 날엔 엄마도 나가셨다. 그 후 우리는 할머니와 다시 살게 되었고, 아버지는 집 나간 새엄마를 어디에선가 찾아오셨고, 새엄마는 살다가 또 나가시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늘 새엄마를 찾아다니셨다. 새엄마도 집을 나갈 때는 말없이 나가셨다.


나는 늘 정 붙인 사람에게서 외면당했다. 어쩌면 모두가 인생 속 피해자였다.




또 다른 어느 날, ㅡ언제인지 기억은 정확지 않지만, 2학년부터 5학년 사이의 일이다. ㅡ


"어머나, 어쩌면 인연인가 봐. 죽은 ㅇㅇ엄마랑 똑 닮았어. 똑같네~."


동네 아주머니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아버지가 또 다른 새엄마를 데리고 오셨다. 우리에게 무척 친절했고, 진짜 돌아가신 어머니와 닮았고, 참한 여자가 들어왔다며 할머니도 좋아하셨다. 간단한 혼인절차를 치르고 ㅡ결혼식은 안 하고ㅡ 신혼여행을 다녀오신 것 같다.

나는 또 다른 새엄마의 손을 붙잡고 '엄마, 엄마' 부르며 잘 따랐다. 그분은 진짜 엄마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체격뿐 아니라 얼굴에 있던 점 위치까지 비슷했다. 한동안 난 마음을 놓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의 호통이 요란했다. 아버지와의 대화. 난리가 났다. 조그만 전세 가게의 보증금과 새로 해준 패물 등을 몽땅 싸서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어린 나도 참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에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갈등이 심해진 듯, 늘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그쯤~~ 학교에서는 또 슬픈 일이 있었다.
그나마 단짝이었던 동네 친구가 갑자기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어 전학을 갔다.
그 친구 어머니가 학교에 오신 날, 교실 문밖에서 선생님을 만나셨다. 잠시 후 ㅇㅇ이가 가방을 챙겨 어머니 손을 붙잡고 가버렸다. 말 한마디, 인사 한 마디 나누지 못한 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공부 시간이었다. 내가 좀 더 똑똑하고 용감했었더라면... 늘 그대로 보낸 친구가 그리웠다. 지금도 그렇다.

그뿐이 아니었다. 나의 외로움의 끝은 어디였을까...


하루, 이틀, 잠 못 드는 날이 늘어갔다. 그때 이후 난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다. 입맛도 서서히 떨어졌다. 밥을 먹을 때마다 슬픔에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눈물 젖은 밥이 삼키기 힘들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To be continued~


에필로그


첫 번째 새엄마는 들락날락하셨지만 우리와 인연이 있는지 이쁜 동생들을 낳아주셨고 호적상의 어머니로 오래도록 남아 주셨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타인이 내 곁에 남아 준다는 것은 특별한 인연이 없으면 안 되는 일 아닌가...

잠깐의 동생이었던 ㅇㅇ이는 얼굴이 어렴풋 기억나는데 그 후 들은 이런저런 사연은 가슴 아파서 덮을까 한다.

이런 글이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누가 될 수 있다고 생각도 해 본다. 누가 누구의 인생을 뭐라 뭐라 하는 것은 자격을 떠난 일이라 생각한다. 단지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자 하는 나의 일념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2학년 때 헤어진 친구는 서울 도봉구에 있는 학교로 갔다고 나중에 선생님께 들은 기억이 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억이 있는 옛 동네를 떠나온 후에 친구가 없던 꾀죄죄한 여자아이의 유일한 친구였다. 얼굴의 볼은 붉은 기가 돌고 통통한, 눈동자는 검고 컸으며, 머리는 완전 숏커트의 머슴아 같은 씩씩한 아이였다.

난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누구나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 겪는데 유독 나만 더 이 몸살을 앓는지...


지금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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