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현재 다니고 있는 교회 찬양팀에 싱어포지션으로 나의 재능을 쓰고있다. 7년이라는 적지않은 기간동안 매주 평균3-4시간 찬양을 부르다 보니 체계적으로 호흡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어도 언제 숨을 들이마셔야하는지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물론, 개구리가 되기 전 올챙이시절에는 목소리가 크면 클수록 한 호흡으로 길게 부를수록 잘 부르는 줄 알았다. 한 숨에 많은 음을 내다보니 결국 숨이 차서 두통을 느끼기도 했다.
찬양 악보를 보면 숨을 마실 수 있도록 표시해두는 쉼표들이 있다.
쉼표가 있는 위치에 숨을 들이 마시면 된다. 그러다보면 호흡을 잘 조절하면서 한곡 부르기를 어렵지 않게 완성할수있다.
전반적으로 높은 음들이 많거나 한 호흡에 두마디절 이상을 끌어가야할 긴 가사의 곡일 경우는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호흡이 무너지지않도록 표시된 곳에 호흡을 해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특히, 언제 호흡해야할지 모를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초반에는 호흡 조절이 잘 안되서 악보에 나와있는 쉼표표시를 참고하면서 숨 마시는 연습을 했다. 지금은 이전보다 편안하게 부른다. 이런 변화가 스스로도 체감이 가능할 정도로 폐활량이 늘었다.
긴 곡을 끌어가는 힘이 호흡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곡을 부를 때 더 자유로웠다.
최근, 내 삶에도 쉼표가 찾아왔다.
성인이 되고 작년까지 나의 삶은 100미터 달리기 선수의 삶이었다. 대학교 다니면서는 인턴쉽, 동아리활동, 통역봉사, 해외연수, 워킹홀리데이, 각종 자격증시험에 열정을 쏟았고, 직장 다닐 때도 마찬가지!! 인정받기위해 이리뛰고 저리뛰던 나였다.
그렇다 바쁘게만 살았다.
나의 20대를 아는 친구, 지인들을 만나서도 나에 대한 정의가 소망이는 항상 바빴자나. 늘 뭔가 하고있었어! 였다. 좋은 말로는 멋진 주체적인 여성이야 있었지만 대부분은 ‘바쁜소망’ 이라는 피드백이 전부였을정도니까 말이다.
바쁘게 살았기에 다양한 경험속에서 배운 지혜들도 참 많다. 그러나 바빴다고 해서 그만큼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었는가? 내가 원하는 삶으로 가고 있는가 했을때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인간미 마저 점점 사라져가는 나는 삶의 여유가 없었다.
근무중 전화벨이 울리면 숨부터 막혔고, 회사 동료와의 대화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당시 맡은 내업무도 가치있어 보이지 않았기에당연 일에 집중할수 없어 고민하다 끝에 퇴사했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호흡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때보다 수입도 적고 인간관계도 좁아지고 세상물정에서 도태되는 느낌이 들지만 나는 자유롭다. 누구는 정신승리 아니냐고 할수있겠다
그러나 지금이 가장 제대로 숨을 쉬고 있고 내가 컨트롤 할수 있을정도로 내 호흡이 편안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건 확실하다. 또 주어진 것에 달려야 할때를 위한 쉼표의 순간이라 여긴다.
내가 코칭하고 있는 요가에서도 호흡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요가 수업때 제일 많이 말하는 내용 또한 ‘호흡하세요!’, ‘천천히 숨쉬세요!’, ‘호흡에 집중합니다.’ 이다.
그만큼 요가할 때 호흡이 중요하다는것을 알려드리고 싶은 맘에서랄까.
특히, 하나의 동작을 길게 유지하는 방식의 하타요가에서는 난이도가 어렵지 않은 동작도 호흡의 일정한 주기가 깨져버렸을 때, 회원들께서 동작에 집중하기 어려워하시는 모습을 많이 보게된다. 쉬운 동작도 호흡이 무너지면 버겁게 느껴질수 있다는 것이다.
호흡이 차오는구나 인식하고 있을 때는 더 깊은 자극으로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잠시 멈춰서 호흡의 속도와 깊이를 확인해줘야 한다. 더 오래 머물고 더 깊게 가기위한 쉼표의 시간이 필요하다.
노래를 부를 때에도 악보에 표시되어있는 쉼표 때 숨을 쉬지않고 그대로 가사를 부르게되면 숨이 딸려서 음이 제대로 나오지않거나 금방 지치기 마련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유한한 삶에 쉴새없이 달리다보면 아무리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가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인생에서 어떤 삶을 살고싶은 것인지 또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게 더 어려울수 있다.
숨이 차오를 때 그 순간은 어쩌면 내 자신에게 쉼표가 필요함을 말하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빠른 대열에 벗어나 잠깐 멈추어 숨을 마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