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없고 사진없고 퇴고없다
WRITTEN BY 지랄방구
글 잘쓰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자꾸 의식하니까 아무것도 안 써진다. 그냥 막 휘갈겨 쓰는 것으로.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써야 한다.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여행기를 쓰려거든 볼펜으로 써야 한다. 절대 지우개로 지울 수 없도록. 키보드 자판 중에서 백스페이스와 딜리트 키를 딜리트 해야 한다. 쓰다가 고치고 고치면 결국 한 줄도 쓰지 못한다. 나는 김영하도 아니고 유시민도 아니니까 글을 잘 못 쓴다는 것을 린정해야 한다. 한번 썼던 글을 다시 되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아무말 대잔치 그것이 유일한 정답이다. 지금부터 쓰는 내 여행기는 형식없고, 건조체 없고, 퇴고 없다. 그냥 내 맘대로 막 쓸거다. 문단도 마음 내키는 대로 바꿀 수 있다.
가
령
.
.
.
이런 식
ㅇ
ㅡ
로
의식의 흐름기법이다. 의식이 흐르지 않으면 쓰지 않을 것이다. 붓 가는데로 쓸건데 붓이 없으니까 손가락 움직이는데로 쓸거다. 여행기이지만 여행기 아니고 여행기 아니지만 여행기다. 서두가 길다고 누가 욕할수도 있겠으니 이 글이 브런치든 어디든 올라갈지 안 올라갈지 모르니까 상관없다. 그리고 누가 보겠나 나만 보고 말 그런 글이다. 그래서 마음이 한결 편하다. 벌써 A4 반장이나 썼다. 이렇게 쓰다가는 A4 100장 금방이다. 출판할 수도 있겠지 의외로 사람들한테 인기를 끌 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떡하지? 조엔롤링킹처럼 대박나면 어떡하지? 아브라카타브라 브라운아이드걸스 이러다 미처 내가 여리여리하던 내가
여행기다 6월 6일 2017년에 출발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밤이 생각난다. 러시아인데 생각보다 안춥네라고 허세를 부리다가 밤에 불어오는 동해의 바람을 한 몸으로 맞았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 기억나는건 밤 늦게 기차를 타야되서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있다가 나왔는데 어떤 남자가 어슬렁 어슬렁 다가오더니 이것저것 묻는다. 분명 술취한 사람이었다. 보드카국 사람들이라 그런지 술취한 사람 무섭다. 잔뜩 경계했는데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첫 번째로 긴장했던 기억. 그리고 나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130여일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되게 아리송한 기억인거 같다. 계속해서 한 자리에 눕거나 일어나거나 다리를 뻗거나 사람들 눈치를 보는 일을 3일 정도 했다. 그리고 이르쿠츠크에 내렸다. 요즘 부쩍 이르쿠츠크 생각이 많이 난다. 한 2시간을 걸어 다운타운에 갔던 기억. 민들레씨가 엄청 날려서 숨쉬기 힘들었고 비둘기가 너무 많던 기억. 비둘기는 이제 적응좀 될만한데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그래도 비둘기에 대한 깊은 연구성과 하나가 있는데 보통 고양이가 많은 동네에는 비둘기가 없다. 없다기보다는 땅 위에 감히 돌아다닐 수가 없다. 그리스 크레타 섬이었나? 고양이가 잔뜩 움크리고 있는 거다. 뭐하는거지 하고 생각했는데 전방 10미터 앞에 있는 비둘기를 잡아먹으려고 한껏 다리에 힘을주고 있었다. 그 때부터 나는 확신하기 시작했다. 고양이와 비둘기는 공생할 수 없다. 다시 러시아로 넘어와서. 앞으로 이런식의 글 진행은 많을 것이다. 한창 어떤 도시 이야기하다가 뜬금없는 주제로 넘어갔다가 다시 그 동네로 돌아오거나 갑자기 말도 안되는 도시로 넘어가는 일들. 다시한번 구차하게 설명하지만 이것은 의식의 흐름기법이다. 문체 없고 논리 없고 형식 없다. 그래도 100퍼센트 의식의 흐름기법이라고는 할 수 없고 느야 어느 정도 선에서 그렇다는 거다. 따지지 마라. 어차피 아무도 안 읽을거니까.
횡단열차 타고 있었나? 횡단열차에서는 우리가 계획했던거를 그래도 거의 실현하는 장소였다. 일기 자주 썼고 성경도 일고 큐티도 했다. 그걸 나중에 목사님한테 자랑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이었는지. 나의 큐티책은 처음에 보조가방에 들고다니다가 무거워서 큰 가방으로 옮겼다. 깊숙이 처박아 놨던 뜻이다.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면 무슬림 국가에서 위험할 것 같아 그냥 성경 어플만 가지고 다닐거라는 소망을 비웃었는데 내 성경책은 지금 메인배낭 안에 깊숙이 처박혀 있다. 역시 인간은 이렇다.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나중에 깨닫는다. 다시 횡단열차로. 그냥 횡단열차의 삶이라는 것이 비슷한 패턴의 무한 반복이다. 자다가 일어나서 책읽고 밥먹고 월리를 찾아라 하고 빙고하고 하우스 오브 카드 보고 그러다가 자다가 무서운 러시아 언니오빠들 경계하다가 내린다. 아 그러고보니 횡단열차 얘기할 차례가 아니고 이르쿠츠크 이야기할 차례였구나. 그래 맞아 이르쿠츠크. 처음이자 유이하게 카우치서핑이 성공했던 도시. 이제 이름도 생각안나는데 얼굴을 분명히 기억이 난다. 틸다 스윈튼을 닮았던 에반게리아?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네팔과 힌두를 인도의 명상과 음악을 좋아하던 히피스타일의 여자였으나 애가 둘이나 있었다. 남편은 한번도 못본걸 보니 남편이랑 이혼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애가 둘이나 있어서 오오 했었고 보통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았고 역시나 담배를 태웠다. 담배. 러시아 사람들의 첫 번째 이미지가 담배였는데 다시 횡단열차로 넘어가자면 열차가 멈출때마다 너나할 것 없이 다들 뛰쳐나가 담배를 피웠다. 물론 열차 안에서도 피웠는데 형식적으로나마 담배는 열차에서 금지되어 있어서 열차와 열차 사이에서 덜컹덜컹 거리는 곳에서만 담배를 피웠지만 그 냄새는 당연히 객실로 들어왔다. 우리 6인실에 엄마랑 아들이 같이 탄 적이 있었는데 그 모자도 어김없이 내리자마자 맞담배를 피우길래 이상하게 생각했다. 대체 이 나라는 몇 살부터 담배를 피울 수 있는거지? 생각해보면 겨울에 오지게 추울 것인데 담배라도 한 모금 안 빨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린정. 아무튼 다시 이르쿠츠크로 돌아오면 그 에반게리아인가 하는 여자의 집에서 한 3 4 일 머물렀던 기억이 나고, 바이칼 호수에 갔다왔던 기억.
바이칼 호수의 명물은 오물이라는 물고기였는데 이름이 오물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먹고 싶지 않지만 오지게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걸 영상으로 찍어서 인스타에 올렸는데 내 손이 자꾸 오물을 가려서 누가 댓글로 내 손 짜르고 싶다고 한 니 손 짜르고 싶다. 암튼 오물 먹었고 또 하나 기억나는게 숙소의 고양이가 참새 물고 지나가는거 봤다. 끔찍했고 밤에 별은 잘 안 보였는데 오지게 추웠던 기억 나고 6월인데도 추웠는데 기어코 호수에 들어가서 덜덜 떨었지 그 영상에서 소망이 “으 추워 그만찍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대사는 후에도 심심할 때 계속 반복한다. 이 글은 지금 모로코 페즈라는 도시 다운타운 호스텔에서 쓰고 있는데 쓰는 순간 크로에이시아에서 온 두명의 게스트가 왔다. 무섭다. 내가 잘못 알아들어서 러시아? 했다가 크로에이시라고 정정하며 크로캅! 한다. 나는 멋쩍게 다리 하나를 올려서 킥을 하는 모습을 취했다. 그렇지 크로캅은 입식타격의 대가지. 물론 크로캅 경기 한번도 제대로 본 적 없음. 다시 이르쿠츠크로 글이 더럽게 길어지지만 만족스럽다. 멋진 글 한 줄을 쓰기보다 똥싸는 글 10장을 쓰련다. 어디까지 썼지? 바이칼 호수. 추웠고 돌아오는 길이 무서웠다. 버스기사가 운전을 엄청 터프하게 해서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고 거기에다 비까지 매섭게 왔다. 이르쿠츠크 호스트에게 졸라 맛없는 찜닭과 계란찜을 대접했다. 아마 그녀는 생각했겠지 한국사람들은 이렇게 맛없는 것을 먹고 산다고? 그리고 또 다시 시베리아 횡단열차. 횡단열차는 시즌1을 반복하는 것. 한가지 소소한 사건은 너무 더워서 소망한테 500원짜리 콜라 하나만 사자고 애원했는데 매몰차게 거절했다. 우리의 여행은 계속되야 한다며. 다시 지금 글 쓰고 있는 호스텔 이야기 하자면 크로캅국의 두명의 여행자와 여기 호스텔 주인과 약간 마찰이 있다. 대충 보니까 유로에 대한 환전 문제인거 같은데 유로 환율을 너무 적게 쳐주는게 문제인거 같다. 여기 집주인 약간 웃긴게 어제만 해도 무슬리을 나한테 전도하면서 평화를 나눠주는 것이 자기의 미션이라고 했는데 오늘은 환율 때문에 싸운다. 물론 그럴 수 있지만 약간 어제의 진정성이 쫌 떨어지는 느낌? 괜찮아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지. 그런데 심각하다 굉장히 불쾌해 하는 느낌. 이러다가 크로캅처럼 발로 한 대 차는거 아닌지.
횡단열차 얘기 건너뛰고 모스크바로. 모스크바는 의외로 맘에 들었던 도시? 아니 우리 여행의 첫 번째 수도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신기했던. 역시나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기찻길 건너기. 한 10줄 정도 되는 기찻길을 눈치보면서 건너야 했다. 나는 스릴을 느꼈는데 소망은 무서워했고 나는 기찻길보다 기찻길 위에 앉아있던 새가 더 무서웠다. 까마귀 과의 새였는데 유럽은 대체로 새가 많다. 비둘기, 까마귀, 기러기 등등 새가 많은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새는 로테르담에서 만난 기러기였는데 어떤 꼬마 아이가 프렌치후라이를 먹으면서 지나가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