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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Sep 28. 2017

EP11.아직 우리 사이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사이와 사이 사이에 사이

WRITTEN BY 지랄방구


불이 꺼진 카이로 어느 호스텔 6인 도미토리에서 쓴다. 다합과 카이로. 같은 이집트지만 모든 것이 달랐다. 여행을 다니며 도시를 비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늘 그렇듯 새롭게 만난 도시는 전 도시를 향한 아직 채 식지 못한 애정 때문인지 쉽게 정이가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처음 만나는 이 도시 사람들이 짐을 들어주겠다고 달려온다. 선의를 행한 후 당연스레 돈을 요구한다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선행학습한 나는 눈빛에서부터 그들을 경계한다. 매일 아침 우리에게 먼저 "안녕하세요!" 라고 말하던 다합 다이빙센터 압둘라의 건강한 미소와 "나는 노스코리언이야 김정은이 내 친구지!"하며 나와 농담 따먹던 팟히의 익살을 생각하니 이 도시 사람들 얼굴 하나하나가 내게는 너무 낯설고 불쾌하고 경계하게 된다. 아직 우리 사이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집트 다합에서 중국인과 오스트레일리언을 도촬하는 한국인

기차표를 사기 위해 지하철을 타려고 내려가는 길. 지하철 역에서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이집트 지명을 더듬더듬 거리는 사이 한 이집션이 와서 말한다. "무엇을 찾고 있니?" 나는 화들짝 놀라며 "노!노!" 하고 손을 내젖는다.  한껏 방어하는 자세, 공격적인 눈빛, 불쾌해하는 표정, 잔뜩예민한 말투. "아니 아니 너희들이 해매고 있는 것 같아서 도움을 주려는 거야" 내 자세,눈빛,표정,태도를 읽었을까 그는 최대한 미소를 짓고 손을 내저으며 나를 안심시킨다. 그는 온 몸으로 '얼마나 많은 이집션들이 관광객들에게 불쾌한 행동을 하는지 알아 근데 나는 정말로 너희들을 도우려는 거야' 라고 표현하는 듯 했다. 그와 나의 텐션을 순간 포착한 아내가 "우리 람세스 기차역 가려고 하는데 어디서 내려야할지 모르겠어서" 하고 그와 나 사이를 중재한다. "아 람세스 기차역은 알 슈하다역이랑 가까워 이집트에 온걸 환영해!" 그러더니 휙 하고 사라진다. 그는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한 댓가로 돈을 요구하지도, 우리의 주의를 끌며 소매치기를 시도하지도 않았다. 선의로 길을 알려준 댓가로 경멸하는 이방인의 눈빛을 한몸에 받았음에도 성질 내지 않고 웃으며 이 도시에서 나를 불쾌하게 한 모든 이들을 대신해서 사과하겠다는 듯이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멋쩍었다. 초등학교때 알림장을 가방속에 넣어놓고는 못찾고 짝꿍한테 니가 가져갔지 하고 눈을 흘기다가 이내 진실을 알게 된 그날처럼. 나는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한참을 멀어저가는 그를 되돌아보며 그에게 보낸 내 태도를 곱씹었다.

집주인 압달라. 오르카(다이빙센터) 압달라의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쉽다

그렇게 도착한 기차역.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 가는 1등석 기차표는 130파운드(한화 약 8000원)였다. 창구에 서니 역무원이 외국인은 1번창구로 가라고 한다. 1번창구에 가니 외국인은 안전상 침대칸밖에 살수 없다고 한다. 침대칸의 가격은 1인 100달러. 이건 너무 비싸잖아! 라고 말하니 1번창구남은 슬쩍 이렇게 말한다. "이거는 불법이긴 한데 내가 내 친구 통해서 1등석 티켓 사줄수 있어 한명당 400파운드(24000원)에..." 외국인을 배껴먹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말도 안되는 논리로 침대칸을 팔려고 하더니 선심쓰는 척 기존 티켓의 3배를 뻔뻔하게 요구한다. 불과 30분전 착한 이집션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찝찝해 있던 내게 차가운 물한바가지 끼얹듯 현실로 돌아온다. 그래 여기는 카이로다! 사기꾼과 삐끼로 가득한 곳! 정신바짝!

귀여운척이 아닙니다. 다이빙에서 살아돌아온 후입니다.

여행은 가끔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지긋지긋하다가도 사람들에게 위로받는다. 이기적인 여행자와 친절한 시민 사이, 돈밖에 모르는 현지인과 진심으로 환영해준 호스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린 계속해서 여행한다. 그리고 나는 아주 천박한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하다가 자책하고 또 의심하다가 감사해하며 마음의 문을 닫고 나를 꺼내놓지 않는다. 가끔 "내가 그렇게 한심스럽게 생각하던 누군가의 인생이 문득 내가 걷고 있는 낯선 이 이방도시의 길앞에 펼쳐지고 있음을 느껴지는 순간순간' 나는 오늘처럼 그 얼굴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잠못이룬다.


함두렐라. 메이야메이야. 꼴로따맘.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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