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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Nov 28. 2017

EP17. 어쩌면 시리즈가 될지도 모를 스페인 여행기2

가족과 여행한다는 것

WRITTEN BY 지랄방구


스페인 똘레도였던 것 같다. 우리는 꼬마기차를 타고 똘레도 성을 한바퀴 돌았다. 꼬마기차는 올드타운을 떠나, 깎여진 절벽위에 화려하게 빛나는 성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우리를 잠깐 내려줬다. 때마침 지는 해가 산 허리에 걸려 노랗고 빨갛게 고성(古城)이 물든다. 우리는 저 멀리 성을 등지고 셀카봉으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도 찍고 뒤집어서도 찍고 지나가는 외국인한테 부탁해서도 찍고 버스는 떠나야 하는데 우리는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나 아내 장인어른 장모님 그리고 처남. 혼자 혹은 둘이 여기저기서 한 씬이라도 놓칠세라 연신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도 왔었으면...'


아버님 보물 1호는 어머님, 2호는 소망이, 3호는 셀카봉


이내 머리를 흔든다. 벌써 눈에 선하다. 체중 때문에 살짝 다리를 저는 엄마. 그 엄마한테 걸러지지 않은 차가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아빠. 불편해하는 며느리들과 제발 그렇게 말하지 좀 말라고 성질내는 나. 언제였을까 우리가족이 마지막으로 여행을 갔던게. 초등학교 3학년 때 경포대로 갔던 기억외에 여행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빠는 교회 중등부 교사를 20년을 넘게 하셨다. 어렸을적 아버지는 나를 중등부 수련회에 곧 잘 데려가셨다. 당신 휴가의 대부분을 중등부 수련회에 쓰는게 나름의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셨다. 초딩의 나는 그 수련회가 너무 가기 싫어, 태풍이 불던 수련회 아침 모두가 좋은 날씨를 위해 기도할 때 나도 눈을 꼭 감고 기도했었다 '하나님 제발 이대로 쭈욱'. 교회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나보다 나이많은 누나 형들이 하는 수련회에 따라가는게 그렇게도 싫었다. 티비도 없고 게임도 없고 친구도 없는 그 곳에 아빠만 있었다. 뭐가 없어서 싫었던 건지 그가 있어서 싫었던 건지...아무튼 싫었다.


고딩이 되고는 우리 상황은 180도 바꼈다. 아버지는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는 나와 형을 늘 걱정했다. 형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청소년기의 나는 아버지가 싫어 도망치듯 교회에서 살았던 것 같다. 교회에서는 누구에게든 자상하고 가정에서는 세상 누구보다 실망스러웠던 아빠를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결국 당신을 피해 도망간 곳이 교회였다니. 내 인생에 중요한 시점에서는 늘 그렇듯 상상력이 부족하고, 용기가 없었다. 교회에서 자란 내가 도망갈 곳이 교회 뿐이었던게 지금 생각하니 너무 슬픈 일이었다. 역사는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남긴다.

스페인 사람들은 누 캄프라고 말하면 못 알아 듣는다. 캠프 누 아니 캠 누라고 해야 함.

삼팔선으로 나뉘어진 한반도처럼 적당한 거리를 통해 평화를 꾀했던 우리는 이제 함께하는 여행을 상상하기 어색해진 사이가 돼버렸다. 세계여행을 떠난 후 아버지는 내가 아는 지인들 중에 꾸준하게 얼른 돌아오라고 카톡을 보내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 때마다 난 별다른 설명 없이 '걱정마세요. 때되면 갑니다' 하고 긴 대화를 사전에 차단했다. 여행을 시작하며 장인 장모님께 혹시 스페인으로 오시면 어떠시겠냐고 여쭤봤을때 밝게 빛나는 눈으로 신나하셨다. 반면 며느리가 조심스레 시어머님께 저희 여행 중에 두 분 오시면 어떠실까 여쭈었을때 그냥 너희 둘이 건강히 다녀오라고 하셨다. 대놓고 내색할수는 없지만 크게 기뻐할 수도 없는. 두분께 우리의 여행은 아직까지도 마뜩찮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엄마도 잡채랑 열무김치랑 진미채 볶음 싸와!!!!!

그런 두 분이신데, 똘레도의 지는 해가 나를 감상적으로 만들어서인지, 그냥 이제는 철이 좀 든 것인지 두 분과 여행을 한번 갔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왜였을까? 되게 복잡한 감정이었다. 철이 들었거나 샘이 난건 아니었다. 그냥 가족과의 여행은 어쩌면 누구나 한번쯤은 거쳐가야하는 코스같은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너무나 앞이 뻔히 보이는 여행. 여행을 도무지 왜 가는 거냐고 투덜대실꺼고, 비꼬실거고, 아니꼬와하실건데 나는 왜 가족여행에 대해 생각하는 것일까? 스페인에 오셨던 처가식구들과의 여행은 대체로 좋았지만 힘든 부분도 많았다. 여행 속도가 맞지 않거나, 여행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도 해서. 불만이 있거나 서운해도 부모님이라서, 말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가족이라서힘들었고 가족이라서 좋았다. 결국 우린 여행을 했다. 그런거다. 함께 지내면서 힘들어하는 것을 참거나 결국에는 터져버리거나 분위기가 어색해지기도 하겠지만 결국 함께 가는 일. 함께 숙소를 찾아다니고 서로 눈치를 보고 고집을 부리는 일. 그게 가족여행인 것 같다. 아직도 상상하면 끔찍한게 가족여행이지만 이번에는 나도 용기를 내어 그라나다에서 아버지께 보내는 엽서에 이렇게 썼다.


(...전략)

이 곳 저 곳을 다니다보면 여기는 우리 가족들이랑 와도 참 좋겠구나 생각하는 곳들이 있답니다. 아버지 좀 더 여유로워지시고 조카들 더 크면 우리도 좋은 곳으로 같이 여행가요.

조금만 더 세계를 경험하고 가겠습니다. 돌아가면 이 못난 탕자를 위해 돼지를 잡고 잔치를 열어 주세요.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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