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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Nov 10. 2017

EP15. 어쩌면 여행중 가장 완벽했던 하루

라고 말한 날

WRITTEN BY 지랄방구


어쩌면 여행중 가장 완벽했던 하루였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한 날. 일기를 꼭 써야지 생각했는데 백팩이 멀어 여기다 이렇게 적는다. 자전거를 빌려 생태공원부터 해변까지 달렸다. 공원에 소망이 만능 스카프를 깔고 눕는다. 그늘과 햇볕 경계에 누웠다가 시간이 지나 그늘이 커지니까 조금씩 앞으로 옮기다가 이러다 우리 호수에 빠지겠다며 꺄르르. 싸온 바게트에 쨈을 발라먹고 가져온 책을 읽는다. 드디어 돈키호테를 다읽은 소망. 스스로 대견스러워 한다. 그러면서도 돈키호테 마지막 부분에는 내용과 상관없는 동화들이 나온다며 되게 지루하다고 재잘재잘. 특유의 재잘거림이 좋다. 물론 나도 한 재잘하지. 나는 이번주부터 하우스 오브 카드 소설을 시작했다. 소설이 드라마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배경이 영국이라는 점이다. 읽으면서 영국 정치체계가 궁금해졌다. 시작부분이 영국총선인데 총리도 지역구가 있다고 나온다. 흥미롭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문재인이 부산 사상구 의원을 하면서 국가원수를 하는 셈. 최대한 케빈스페이시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며 책을 읽고있는데 쉽지 않다. 그의 성추행 스캔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커플셀카

따뜻한 햇볕에서 누워 책을 읽다가 일어나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발렌시아의 가장 사랑스러운 공간은 올드타운 성벽 너머에 조성된 공원이다. 서쪽 끝에는 제법 규모있는 동물원이 있고 서쪽에서 시작해서 동쪽 해변으로 마치는 코스가 행복한 오늘의 핵심이었다. 동물원 관련해서 재밌는건 이 곳 사람들이 동물원을 Zoo라고 표현하지 않고 Biopark라고 말하는거다. 소망이 찾아봤는데 이 동물원은 동물들을 어떤 벽이 쳐진 케이지에 가두기 보다는 꽤 넓은 땅에 다양한 동물들이 함께 살게 한단다. 동물원과 사파리의 중간쯤일까. 알쓸신잡에서 동물원을 통해 아이들이 동물을 만나는 것에 대한 갑론을박을 들었던게 생각이 났다. 알쓸신잡 시즌2 에피소드1만 봤는데 시즌1에 비해 확실히 흥미가 떨어졌다. 기시감, 신선도, 캐릭터의 약함을 들어 프로그램을 비판했는데 소망너는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시청자일거라고 핀잔을 준다. 늦기전에 과학관으로 페달을 밟는다.

세상은 발가락양말을 신어본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뉜다

생태공원에서 과학관까지 자전거로 한 30분 정도 밟았다. 한국 사람들이 쓴 리뷰에 발렌시아 과학관 별거 없다고 했는데 우리는 가자마자 입을 헤에 벌렸다. 입장료가 조금 비싼거 같아 내부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건물 외벽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물길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경탄했다. 군데군데 어른 허벅지 정도 되는 높이의 물들이 햇볕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는데 아마 이 도시의 햇볕이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기에 물이 아름다운게 아닐까 하고 말했다. 주중인데도 이 과학관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느껴지면서도 한편 바르셀로나에서 발렌시아로 오면서 만난 블라블라카 드라이버의 말도 생각났다. 스페인은 실업률이 20%야 그리스 포르투갈 다음으로 유럽에서 제일 높지. 암튼 발렌시아 과학관은 긍국의 추천을 드린다. 우리같이 돈없는 여행자라면 밖에서 햇볕만 받는 것도 좋을듯.

내가 여기 기획자라면 이 곳에서 RC보트 대회를 하겠어! 라고 말하고 나서 '이미 그런거 다 했겠지' 생각하고 약간 우울해졌다.


행복한 오늘의 정점은 발렌시아 해변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항구를 지나니까 저 멀리 바다가 끝도없이 펼쳐져 있다. 발레리아해라고 불리는 바다였고 이 해변도 어떤 이름이 있었는데 잘 모르겠다. 중요하지 않다. 이 해변이 다른 해변하고 다른 점은 크게 두가지였는데 첫번째는 내가 경험한 어떤해변보다 모래사장이 넓다. 바다가 보이는 지점부터 파도가 치는 곳까지 탁 트여있는 시야.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에 자리깔고 앉은 사람들, 럭비하는 남자들, 뛰어다니는 강아지들, 저 멀리 파도타는 서퍼들. 또 한가지 이 바다 만의 매력은 고운 모래다. 모래사장이 넓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모래입자가 세상 작았다. 모래를 쥐어서 바람에 날려봤는데 사하라의 모래정도 입자여서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모래로 거대한 성을 만드는 예술가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우리는 파도를 따라 걸으며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 하고 김건모의 당신만이를 불렀다. 노래를 시작하자 소망이 급하게 영상을 찍었는데 녹화가 안됐다. 우리만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해야지. 바다는 정말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우리가 이 여행에서 만난 바다들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아이슬란드의 블랙샌드 비치,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 코토르의 코토르베이, 그리스의 지중해, 터키 페티예 해변, 이집트의 홍해, 모로코의 미를레프트. 하나같이 다양하고 아름답다. 해변마다 파도의 크기도 다르고 모래의 입자도 다르고 소리도 풍경도 다르다. 지구의 70퍼센트가 바다라는데 볼때마다 경이롭고 바다는 결코 다 거기서 거기이지 않다.

아니야! 이 사진 아니야!!

엄청난 것들을 보지 않았어도 엄청나게 맘에 들었던 하루. 어떻게 하루하루가 매일매일 맘에 들으랴. 인생은 길고 우리 여행은 고작 일년이다. 아마 돌아갈거다. 그 나라로 그 일상으로. 그래도 이 날은 기억이 희미해지는 날까지 계속 남았으면 좋겠다. 오늘 본것들 오늘 잡은 소망이 손 오늘 굴렸던 자전거 페달소리 그리고 오늘 맡았던 바다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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