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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Dec 01. 2017

외국에서 한국어가 들리면 긴장하는 나, 비정상인가요.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때만 그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

written by 집순이


아빠는 나와 보이스톡을 하던 중에 한국인 여행자들이 해외에 좀 있느냐 물었다. 아빠, 엄마, 남동생이 스페인에서 우리와 합류해 함께 여행하기 몇 주 전의 통화였다. 내가 태어날 때쯤 홍콩 출장 두 번 갔던 것이 아빠의 해외 경험 전부였으니 한국 밖에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돌아다니는지 가늠이 잘 안 되셨겠지. 내가 "많어. 엄청 많어." 대답하자, "그래? 밖에서 한국인 만나면 반갑지?" 들뜬 목소리로 또 한 번 물으셨다. 아, 그 목소리가 너무 천진난만하고 의심이라곤 한 치도 없어서 순간적으로 아빠가 원하는 대답 나올 뻔했잖아.

마침 와이파이가 버벅대 드라마틱하게도 그 순간 통화가 끊겨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아빠는 브런치의 존재를 모르시지만 이 지면을 통해 아빠에게 구구절절이 대답을 해드린다면,

아빠딸은 주변에서 한국어가 들릴 때 우선 경계부터 하는 이상한 한국인입니다.

왜냐하면 이 여행 중에 내게 상처나 불편함을 끼친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죠.

 

창연이 이미 지난 브런치 글에서 썼던 이집트 다합의 이십 대 무리들. 네 명이 한 팀이었던 걔네들은 우리더러 미니버스 한 대를 셰어 해서 공항부터 다합까지 같이 이동하는 게 어떻겠냐 먼저 제안했다. 하지만 일이 생각대로 잘 안 풀려 택시 두 대를 3:3으로 나눠 타고 이동하게 생기자, "그런데요. 우리는 네 명이 한 택시 타면 더 싸니까"라며 곧바로 택시를 잡아 타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 말을 하던 여자애와 그 뒤에 서서 땅만 쳐다보던 남녀 세 명이-그게 몰염치한 행동, 무매너 말투라는 걸 인식은 하는 아이들인 것 같다-그림 같이 머릿속에 딱 박혀버렸다. 그 아이들이 그런 행동으로 아낀 돈은 한 사람당 2,300원 꼴이었다. 우리가 손해 본 비용은 한 사람당 그것의 두 배. 택시비를 9천 원이나 더 내게 생긴 게 열 받긴 해도 우리 형편상 9천 원이 거대한 돈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 맴이 찢어졌었지. 장기여행이란 누구에게나 재정적으로 부대끼는 일. 그렇다고 , 이런 말 하는 내가 참 민망한데요, 미안한데요, 라는 기색 단 하나 없이 2,300원 챙겨가는 장기 여행자는 그 이후로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아주 무례한 경우였다.

"우리는 네 명이 한 택시 타면 더 싸니까".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잘 알아들어 더 상처받은 말이었다. 그들이 영어권 사람들만 됐어도 "창연아 이거 내가 이해한 그 상황 맞어? 되게 황당하다." 대놓고 앞에서 한국어로 섭섭해했을 텐데. 그런데 나도 한국어 쓰고 그들도 한국어 쓰니까 도리어 그들 앞에선 아ㅡ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침묵했고 창연은 그러시라고, "어쩔 수 없죠" 했다.("어쩔 수 없죠"는 영어로 뭘까? 영어권 사람에겐 어떻게 서운한 티를 내야 할까?)


다른 지역 호스텔에서 만났던 한국인 여행자들도 그들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곤 우리가 직감적으로 그들을 피해 다녔다는 정도. 세 명의 20대 남녀가 한 팀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돈 문제에 있어 나머지 둘에게 제법 깐깐하게 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네가 나 대신 내줬던 돈, 얼마였지? 내가 얼마 줘야 되지?"라는 옆 사람의 질문에 그는 얼마얼마라면서, "그때(돈 낸 당시의) 날짜 환율로 계산해서 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크으. 날짜별 환율까지 계산해서 돈 줘야 하는 사람과 여행이라니. 상상만으로도 피로함이 몰려왔다.(아니나 달라, 깐깐하게 군 사람이 화장실 가자마자 나머지 두 사람의 구시렁이 시작됐다. 저 사람 좀 그렇지, 좀 별로야, 블라블라블라.)

그런 말들이 하나하나 들린다는 게 이렇게 피곤할지 몰랐다. 다 들린다. 나는 멀리 떨어진 소파에서 핸드폰으로 딴짓하며 놀고 있었는데도 다 들렸다. 한국어는 아무 노력 안 해도 다 들린다. 다 이해(해석)된다. 지하철이나 버스 뒷좌석에서 "아니 세상에나 말이야, 그 여편네 하는 짓 보고 있으면," 블라블라 떠드는 사람들의 잡담이 귀에 피곤하게 꽂히는 것과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피곤하다.


그렇다면 내가 못 알아듣는 언어로 떠드는 사람들의 잡담은? 우선 공공장소에서의 외국인들 성량 자체가 그리 크지 않고(중국인 단체 관광객 제외/그렇지만 소수의 중국인은 또 제외. 다른 사람들 배려하면서 조용조용히 얘기하는 중국인들 간혹 있음)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하는 잡담은 확실히 귀가 덜 피로하다. 백색소음 같달까. 예전에 두브로브니크 버스터미널에 앉아 슈퍼에서 사 온 재료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는데 바로 옆자리에 앉은 한국 여자애 둘이 계속 "아 배고파. 아 배고파. 아 배고파. 아 배고파." 중얼거리는 바람에 나보고 샌드위치를 나눠 달라는 건지, 냄새나니까 먹지 말라는 건지 신경 쓰여 혼났다. 전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걔네들의 다른 대화도 들렸는데 위생관념에 대한 얘기라 남이 먹다가 건넨 음식은 절대 먹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심지어 나는 그 샌드위치가 너무 크고 배불러서 나중엔 버리고 싶었는데 계속해서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얘기하는 걔네들이 신경 쓰여 차마 쓰레기통에 못 버리고 억지로 끝까지 꾸역꾸역 먹었다.. 아 나도 정말 이상한 애야. 피곤해.


대체 사람들은 자기 말이 남에게 다 들릴 걸 알면서도 어째서 이런 말 저런 말을 쉽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누군가에게 팁을 주는 경우가 생기는데, 상대방이 팁을 요구하든 여행자가 맘이 동해 자발적으로 팁을 주든 어쨌든 팁이란 +a의 개념이므로 난 안 줄랜다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어떤 투어에서 나와 창연은 고가의 투어비를 지불했고 투어 막판에 가이드가 혹시 팁을 줄 사람이 있으면 여기에 넣어 달라며 사람들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봉투는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옮겨 다녔다. 그날 가이드는 아주 훌륭했으나 우리는 이미 지불된 돈만으로도 부담감이 왕왕 남아있던 터라 잠시 고민하다가 봉투를 패스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에게 봉투를 받은 여행자는 (하필) 한국인이었는데, 그 사람은 봉투에 돈을 넣으면서 "이럴 거면 각자 직접 주는 게 낫지 않나." 혼잣말을 했다. 그때의 민망함. 그 똑똑히 들리는 한국어는 비수였다. 아, 나는 왜 한국어를 이다지도 잘 알아들어서. 독일인이 독일어로 말했으면 못 알아듣고 이집트 사람이 아랍어로 얘기했어도 못 알아듣고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갔을 텐데. 내가 한 단어도 못 알아들어서 기분 나쁠 수도 없었던 말들, 상황들 이제까지 쎄고 쎘겠지. 그런데 한국인만 만나면 그중 절반과는 꼭 이런 상황이 생긴다.


가끔 길거리에서 우리에게 "한국인이세요? 우와, 오랜만에 한국어 들으니까 너무 반갑네요."라며 다가오는 한국인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이해해주길 바란다. 나는 너무 무서운 것이다. 내가 한국어를 잘 해서. 한국어를 잘 알아들어서. 이런 나, 비정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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