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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Nov 14. 2017

여행하는 지역의 사회 문제를 잠깐이나마 고민하는 것

스페인의 까딸루니아, 그라나다를 여행하며

written by 집순이


이 글을 쓰는 곳은 스페인의 그라나다. 석류라는 뜻. 네이버에선 '눈 덮힌 산맥'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라는 정보가 뜬다.


여행자인 나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조바심이 든다. 나는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외국인들을 어떻게 생각했더라. 그들이 여행을 온 것인지 일을 하러 온 것인지 모르겠던 이태원에선 어찌됐든 그들의 자유와 여유에 묻어가고 싶었는데. 어쨌든 나는 그들을 타자화 시켰구나.

발렌시아 프리 워킹 투어에서 만났던 이십대 중반의 한국 여자는 한때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를 연상시켰다. 동그란 체형과 굵은 테의 안경, 타인을 의식하는 게 눈에 드러나는 스타일의 키 작은 여자. 그녀는 스페인에서만 60일을 여행 할 계획이라고 했다. 스페인에 와보니 역시 유럽에서 일하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그녀.

순간, 스페인이 유럽 내 실업률 3위이고(그리스와 포르투칼에 이어) 실업률 20%라는 숫자가 먼저 떠오른 나는 그말을 차마 전하지 못해 입이 간지러웠는데 창연이 날름 그 얘길 꺼냈다. 그래도 그녀는 실망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창연이가 워낙 조그맣게 얘기해서 못 들은 걸까.

꼬박꼬박 씨에스타 시간을 지키고 일요일엔 대부분 일하지 않고 평일에도 저녁 8시만 되면 곳곳에 문 닫은 가게가 천지인 이 곳이 얼마나 노동자의 천국처럼 보였을까. 그렇다면 정반대편의 누군가에겐 밤 12시에도 꺼지지 않는 한국의 사무실 불빛들이 천국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젠장, 거기는 지옥인데. 지옥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활활 타오른다고 했다.

고양이로 태어났어야 했나. 최소한 귀엽기라도 했을 텐데.

스페인에 오기 전만 해도 창연과 나는 까딸루니아 독립을 응원했었다. 이건 밥그릇 싸움같은 경제 문제만이 아니라 몇 백년 동안 켜켜이 묵혀온 영토 문제와 문화, 언어권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알은 체를 하면서.

엄마아빠와 까딸루니아를 여행하기로 한 것이 걱정 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역사의 현장에 있고 싶다는 남동생의 허세 섞인 말에 나또한 은근히 기대했던 것이다.
바르셀로나 여행을 하면서 나와 창연이 어쩌면 언론의 수에 휘둘림 당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발렌시아까지 함께 했던 블라블라카 남자 운전수는 자신이 바르셀로나 시민이긴 하지만 독립은 반대한다고 했다.

남자는 지금도 열 개가 넘는 스페인의 지방자치보다 단 하나의 정부를 원했다. 꿀을 만드는 꽤 큰 기업에서 일한다는 그에게 까딸루니아 독립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해봤다. 그는 그렇잖아도 많은 기업들이 바르셀로나를 떠나고 있고, 이젠 바르셀로나의 경제도 예전만큼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런가. 그럼 결국 이건 경제 문제인 것일까. 그것보단 타자인 나에게 오픈된 정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이 그나마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타자인 우리끼리 아무리 토론하고 여러 매체에 올라온 기사들을 기웃대도 우리는 결국 이태원 피잣집에 들른 외국인 관광객 중 한두명. 그곳에서 들은 정보만으론 한 지역에 얽혀있는 수많은 이해관계를 다 이해할 수도, 정보를 파악할 수도 없겠지. 그럼에도 궁금은 하여 만나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 꼬박꼬박 물어는 보았다. "너는 까딸루니아 독립을 어떻게 생각하니?"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에게 누가 그 깊은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줄까마는, 그래도 물어는 봤다. 내가 밟는 이 땅과 사람들을 알고 싶으니까. 그런 건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의 6유로짜리 오디오 가이드에 나오지 않는다. 신문에도 나오지 않는다. 내 독해력이 좋아져 구글의 모든 텍스트들을 이해할 수 있기 전까진.

바르셀로나 시의회 앞에서, 박물관 리셉션에서 찍은 것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과 마주보는 알바이신 지구에는 동굴에 사는 집시들의 동네, 사크로몬테가 있다. 아마도 그라나다에서 제일 아름다운 뷰포인트를 가진 곳. 스페인 최후의 아랍 왕국이었던 그라나다를 정복한 스페인 왕은 무슬림과 유대인들을 몰아냈고 남아있던 무슬림 몇몇이 알바이신 지구에 살았다. 우리나라 지형으로 따지자면 산동네라고 말 할만 한 곳.

쫓겨난 사람들의 마을이 그라나다의 가장 아름다운 곳이 된 것은 아이러니.
사람들이(상대적으로)잘 모르는 전망대. 이 동네는 밤에 소매치기, 강도의 위험이 있다고 한다. 해 질 때쯤 하산했는데 동네가 스산해서 앞만 보고 마구 걸었다.

알함브라 궁과 성 니콜라스 전망대보다도 높은 곳에 위치한 작은 성당 앞의 턱에 앉아 그라나다를 내려다보았다.

이 바로 밑에 있는 바위 지형을 뚫고 만든 동굴집들이 신기했지만 사람들과 떨어지길 부러 선택한 누군가의 삶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사진 찍고 싶은 순간을 간신히 참아냈다. 우리의 여행이 누군가의 삶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길, 제발, 간절히 기도할 때가 있다. 내가 왔었다는 티도 안 내면서 여행하고 싶은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내가 이들의 삶을 신경쓰(는 척하)고 고민하는 건 그런 게 미안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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