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GV 빌런 고태경
내 꿈은 멋있는데 현실의 나는 후줄근하게 느껴지는 사람,
영화 한 번 찍어보겠다고 소동 피운 적 있는 사람,
빌런 좋아하는 사람(?)
에게 추천합니다.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와서 쓰기 시작한 가벼운 리뷰.
2년 전에 추천받았는데 이제야 읽어보았다.
연구 서적 읽기 싫어서 도망친 곳이 소설이라니, 무슨 인생을 사는 거야 나.
p.13
진부한 말이지만 영화는 너무나 돈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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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진부한 말인데 너무 맞는 말이다. 마치 1만 얼마 세 번 썼더니 5만 원, 10만 얼마 5번 썼더니 100만 원인 것처럼 뭐 조금 할 거 했는데 돈 쭉쭉 나가는 현장. 내 작품(이라고 하니 너무 민망하지만 내가 연출한 건 맞으니까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네)을 마지막으로 했던 게 7년은 더 된 일이라 가물가물하다만 조금이라도 아껴보겠다고 온갖 노력을 했었던 기억은 남아있다. 진짜 아무것도 없는 수준의 단편 현장인데도 백 단위는 우습게 들었었지.
p.60
관심의 공산주의가 필요하다. 관심의 재분배, 최소생계 유지처럼 최소관심 유지가 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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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하나도 못 받아서 외로운 사람이 있다는 건 관심을 너무 많이 받아서 괴로운 사람도 있다. 요새 모 아이돌이 유튜버 등으로부터 루머와 악플로 저격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관심을 내가 다 받은 것처럼 피로감을 느꼈다. 80억 지구인들의 관심을 그러모아서 모두에게 똑떨어지게 균등하게 나눠 줄 수 있다면 전 세계의 행복도가 최상으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단편 하나 겨우 완성한 나도, 기생충으로 칸을 간 봉준호도 똑같이 인정받는 세상, 아름답지 않은가.
p.102
“재능이니 뭐니 하는 건 이십 대에나 하는 거 아냐? 그냥 하는 거지. 이 나이 되니까, 재능 있다던 사람들 그만두고 재능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성공하는 것도 다 지켜봤어. 꾸준히 계속하는 의지야말로 진짜 재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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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고 또 선망하기도 하는 이슬아 작가가 ‘재능과 반복’이라는 칼럼에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이 말을 보고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특기를 갖고 싶어 했으나 무엇 하나 콕 집어 내보일 수 없던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았거든. ‘너, 그렇게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재능인 거다’하고.
그 뒤로 꾸준함은 나의 소소한 자부심이 되었다. 그냥 좀 실력이 잘 안 늘어도 ‘뭐 어때,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다 보면 특기는 아니어도 장기는 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장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친구가 나를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꾸준히 하는 걸 제일 잘하는 이라고 칭찬해 줄 때 보람찬 마음이 들었었다. 그게 보인다니 아주 뿌듯하잖아.
아무리 멋진 꿈을 가지고 있더라도 현실이 요렇게 밖에 안 되는 게 애석함을 넘어 처참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해보는 수밖에는 없잖아. 그래서 나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깔끔하게 놓아줄 수 있었다. 영화를 찍는 건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재능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지. 여전히 연출이 멋져 보이지만 그 때문에 내가 초라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내가 줄 수 있는 마음을 다 주었기에 아쉬움이 짙지는 않다. 종종 올라오는 아쉬움은 내게 아직 남아있는 애정이다. 영화는 여전히 좋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든 멋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