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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준 Dec 10. 2021

생각과는 다른 답이 나올 때

<돈 룩 업>



수학 시험과 관련된 몇 가지 요령이 있다. 모범생이라면 도무지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날 경우, 포기하고 다른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요령이라면 요령이다.


문제는 나 같은 경우다. 전부 다 모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죽으란 법은 없어서 여기에도 팁은 있다. 가령, 주관식 답을 찍을 때는 -1, 0, 1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 이는 혈액형이나 MBTI 같아서, 여러 사람이 그렇다고 하더라, 이상의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인간은 뭐라도 믿고 싶은 법. 답을 알지 못하는 수험생은 결국 -1, 0, 1 중 하나를 택한다.


편의점의 1+1처럼, 앞의 요령에서 딸려오는 것도 있다. 이번에는 자기가 푼 주관식 답에 확신이 없는 경우다. 바로, 생각보다 큰 수가 나올 때는 자릿수를 줄이라는 것. 중, 고등학교 때의 수학 성적은 기억나지 않지만, 10을 1로, 20을 2로 줄였던 순간만은 또렷하다. 세상살이가 고만고만하니 답도 고만고만하다 믿은 걸까.


<돈 룩 업>은 생각보다 큰 수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천문학과 대학원생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와 담당 교수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진실과 마주친다. 에베레스트만한 혜성이 지구로 달려들고 있고, 가만있다가는 인류가 멸망한다는 사실이다.


대응을 위해서 둘은 대통령(메릴 스트립)을 찾지만, 대통령과 비서실장(이자 대통령의 아들[조나 힐])은 중대한 정치적 현안-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이 젊었을 적 누드 모델이었다는 스캔들-때문에 이 사실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진리의 사도들은 언론을 찾는다. 운 좋게 인기 프로그램 ‘더 데일리 립’에 출연하지만, 진행자인 브리(케이트 블란쳇)와 잭(타일러 페리)은 불편한 진실을 유쾌한 클리셰로 풀어낼 뿐이다. 혜성이 다가온다는 박사의 말에 진행자가 묻는다. “혜성이 얼마나 큰가요? 제 전처의 집도 박살낼 수 있나요?”


‘우리는 죽는다’는 검증된 사실. 정치인은 사실을 밀치고 권력을 끌어들이고, 언론인은 진실을 가장해 인기를 탐한다.  위에서 소개하진 않았지만, “사업가”란 말을 싫어하는 자칭 “진화”의 선봉장, 스티브 잡스와 일런 머스크를 섞어놓은 듯한 자본가는 진리를 돈으로 환전한다. 여기까지가 풀 수 없는 문제를 놔두고, 자기가 풀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하는 모범생의 사례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검증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밈’으로 받아들인다. 너무 큰 답은 불편하다. 10도 아니고, 20도 아니고, 100 이상이라고? 그럴 리가. 우리는 사실을 잘게 쪼개, 금세 소화되어 사라질 짤방으로 바꾼다. 너무 작아 속이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밈을 택한 이들은 끝도 없이 밈을 탐한다. 공허하니 말이다.


물론 밈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진리는 감당이 안 되고 그런 김에 밈으로 도망왔습니다, 라는 실토는 서글프니까. 한국에선 ‘관상 is 사이언스’라는 명제가 근거로 제시되고, 영화에선 ‘광기는 눈에서부터’라는 이유가 덧붙는다.


영화는 136분 동안 진리의 소화 과정을 비춘다(영화에선 비서실장이 “일단 기다리면서 이해하자[digest it]”고 말한다). 과학자를 통해 진리에 매혹된 이를, 정치인과 언론인과 자본가를 통해 진리를 왜곡해 세계를 망가뜨리는 이를, 우리의 모습을 통해 진리를 비틀어 낄낄대거나 화내거나 싸우는 이를, 비서실장을 통해서 유사-진리(곧 오실 엄마와 버킨백)를 진리로 신봉하는 이를 보인다.


영화가 끝날 무렵엔 후반 20분 가량을 덜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는데, 엔딩 장면과 쿠키 영상이 이를 보상한다. 직접적인 대사를 조금은 걷어내면 어땠을까 싶다가도, 말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마음이 있어야 이런 작품이 나온다 생각하니, 그것도 괜찮았다.


<빅쇼트>에선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고, “뭔가를 확실하게 안다는 착각 때문"이라고 말했던 아담 맥케이. <돈 룩 업>에선 알려고 하지 않는 의지, 철저하게 모르는 채 지내려는 모습을 다룬다. 두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삶이 답이란 걸 알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사람의 모양을 그리고 있으니까. 때론 -1, 0, 1 외에도 답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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