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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준 Aug 14. 2024

공화당의 마음

<트위스터스>


이 영화는 공화당원의 마음을 그리고 있다. 컨트리 음악이 흐를 때 폭풍으로 돌진하는 이가 여성이라는 점, 그 여성이 세계를 구한 후에 두 명의 꽃미남이 달려온다는 점, 주인공의 친구 중에 근육질 여성과 지혜로운 흑인 남성이 있다는 점으로 약간의 변주를 주었지만, 이야기의 저류에는 공화당적 세계관의 원형이라 할 법한 것이 흐르고 있다.


첫째, 세계는 항구적인 위험 상태다. <트위스터스>에선 어디에서나 토네이도가 찾아온다. 극 중에서 기상 경보가 나오긴 하는데 이러한 경고는 오직 관객에게만 전해지는 것 같다. 케이트(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보기 싫다는 듯이 TV를 끈다. 토네이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을 텐데도 사람들은 로데오 경기를 보거나, 야구를 하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 다시 말해 <트위스터스>의 세계에서 위험은 예측되거나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른다는 면에서 세계는 항시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리 아이삭 청 감독이 힘을 주어 찍었을 법한 장면에서도 이러한 발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극의 배경은 사람들이 최신 아이폰 모델을 쓰는 시기인데, 극장에선 고전영화 <프랑켄슈타인>이 상영 중이다. 실재 세계에선 토네이도라는 괴물이, 상징 세계에선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이 날뛰고 있다. 그런데 감당할 만한 위험(프랑켄슈타인)은 예측하지 못한 진짜 위험(토네이도)에 의해 말 그대로 찢겨버린다. 위험을 다룰 수 있다는 인간의 환상(영화)은 현실의 위험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둘째, 신뢰할 건 개인뿐이다. 경찰이나 소방관은 폭풍우가 휩쓴 후에나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짧게. 아니면 화면에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의 직감에 따라 토네이도에 대응한다.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토네이도가 아닐 거라고 판단하거나, 개개인이 알아서 도피한다. 여기에 매뉴얼이나 시스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몇몇 영웅들뿐이다. 가령, ‘토네이도 카우보이’ 같은 이들 말이다. 결국 태풍을 잠재우는 것도 케이트라는 개인이다.


셋째, 집단, 구조, 시스템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스톰파’는 소위 명문대 타이틀로 무장한 집단이지만 이들은 사리사욕에만 밝을 뿐이다. 사실 지식 면에서도 토네이도 카우보이가 더 낫다. 카우보이들은 대학에 박제된 지식이 아니라, 현장의 살아있는 지혜를 얻은 이들이다. 제각각 ‘미국적’인 옷을 입은 토네이도 카우보이는 스톰파의 유니폼을 비웃는다. (청바지, 큰 버클이 달린 가죽 벨트, 웨스턴 부츠 역시 기성품이다. 그런데 왜 이러한 것들은 개성이나 자유를 상징하는 걸까. 그것들도 다른 버전의 유니폼이지 않은가.)


엔딩에서도 시스템의 한심한 모습이 강조된다. 공항의 주차 관리 요원은 말 그대로 사회 구조의 효과다. 그의 행동은 한 개인의 움직임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운동이다. 그는 스스로 원해서 주차 딱지를 끊는 게 아니다. 구조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불법 주차를 단속하는 것이다. 요원은 타일러에게 계속 차를 빼라고 한다. 이때 타일러는 드릴을 뚫어 차를 땅에 박아버린다! 그리고 멋지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사랑을 찾아간다. 이때 카메라가 바라보는 것은 걸리적거리는 시스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상적인 미국인의 표상이다.


실현 가능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세계에는 분명 어떠한 매력이 있다. 시스템이란 개인의 선의를 합하고 거기서 악의를 제한 후에 그것을 보편화하는 지난한 작업을 요구한다. 복잡한 일이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개인의 마음이 왜곡되거나 부패할 수도 있다. 하비(앤서니 라모스)는 한동안 시스템, 즉 스톰파의 탐욕에서 허우적댔다. 종국에는 개인의 양심에 따라 케이트와 함께 하긴 하지만. 각 개인의 선택에는 합리와 선의가 서려 있으니, 간섭하지 않고 놔두면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발상에는 낙천적이고 간소한 데서 오는 산뜻함이 있다.


물론 다들 알 것이다. 이러한 발상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실제 삶에서 우리 대부분은 케이트가 아니라 폭풍우에 날아가는 이름 없는 자에 가깝다. 현실의 인생에서 영향력 있는 이들은 극 중 인물들처럼 굿즈(티셔츠와 텀블러)를 팔긴 하는데, 목숨을 걸고 인명을 구조하진 않는다. 그래서 시스템이 필요하다, 라고 적다가 마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케이트가 새겨진 티셔츠가 사고 싶어졌기에. 그러한 이들이 나타나 우리 사회를 싹 다 정리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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