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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씨 Mar 18. 2020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태재' 작가님의 에세이 스탠드 <내 귀에 들어온 말>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 제일 먼저 자기소개서 라는 것을 쓴다. 그 안에는 ‘취미’라고 적힌 칸이 있는데 대부분 독서, 운동, 영화관람으로 채워지곤 했다. 그 작은 칸에 지원동기 만큼이나 오랜 생각이 머무르게 된 날, 취미의 사전적 정의를 검색해 보았다.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좋아서 즐겨 하는 일’


가만, 나한테 그러한 일이 있던가?


“나 다솜이 따라할 수 있어” 대학교 1학년 때 룸메이트들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는 동작을 했다. 모든 일과가 끝나 방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몇시간이고 누워서 영상을 보던 나. 누가 시킨 건 아니었지만 그날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다 봐야만 마음 놓고 하루를 마무리 할 수있었다. 집이었으면 허구한날 티비를 본다며 등짝스매싱을 맞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다행히 내가 있는 곳은 서울의 한 기숙사였고, 룸메이트들은 누워있는 날 보며 ‘아 잘 쉬고 있구나’ 생각해주었다.  


그때부터 였을까, 자연스레 그 작은 칸은 ‘드라마 보기, 예능 모아보기’ 라는 글자들로 채워졌다. 가장 최근 이력서에 적힌 단어는 ‘나영석PD 프로그램 정주행’.  하지만 곧 큰 변수가 생기게 되었는데 바로 이 취미가 업이 되었다는 것이다. 영상들을 보며 감탄하고 공유하는 일은 그저 계산되지 않은 나만의 휴식이었는데 이것들이 업무로 바뀌면서 모든 것을 계산적으로 계획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 소중한 취미는 더이상 좋아서 즐겨하는 일이 될 수 없었다.


내가 하는 일에 쉽게 참견하지 못하는, 평가 내릴 수 없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루는 같이 영상을 만들던 친구가 필름카메라를 가져왔다. 필름이 내손에서 스르륵 감기던 순간, 여름에 났던 찰칵 소리가 겨울에 흐릿한 사진이 되어 돌아온 그 순간, 이제는 내가 누워있지 않아도 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찍고 바로 볼 수 있는 카메라는 소위 말해 ‘고나리’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구도는 이렇게 찍어야 해” , “조리개를 이렇게 맞춰야지”. 어려운단어들을 나열하며 보정을 듬뿍하는 그런 사진들. 그런데 필름카메라는 초점이 나가면 나간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그냥 내가 찍고 마음에 들면 그만이었다.


결과물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것, 찍는 그 행위 자체로 만족감을 가져다 주는 것. 필름카메라는 그렇게 내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연날리기 연습을 하고 있는 아이
페스티벌 속 팔자 좋은 신발들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지 3년이 되어가지만 누군가 자세한 사용법을 물어오면 이론적인 설명을 덧붙이지 못한다. 필름사진으로 사진전을 열었지만 어떤 카메라가 좋은지, 어떤 필름이 좋은지 추천해달라는 말이 제일 어렵다.


그냥 앞으로도 나는 별생각없이 셔터를 누를 것이고, 담고 싶은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길테니까.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필름사진과 함께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fal7_sxv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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