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바로 서지 않으면 조직은 반드시 무너진다
스피드 스케이팅 팀추월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는 개인전 출전권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이해할 수 없는 행정 착오로 노선영 선수의 2018 평창 올림픽 출전은 무산될 뻔했다. 재작년 골육종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노선영 선수의 동생인 쇼트트랙 노진규 선수의 도움이었을까. 러시아 선수 2명의 출전이 무산되면서 노선영 선수는 본인의 마지막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고 동생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동생이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출전했을 자국에서의 올림픽. 국민들이 성원하고 있는 그 경기장에 서서 노선영 선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기적적으로 출전한 1500m 경기에서 그녀는 본인의 올림픽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얼마 후 진행된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팀추월 예선 경기. 내가 선수나 연맹 관계자였다고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그래서 모든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경기 운영에 최악의 결과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후 벌어진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인터뷰와 백철기 감독의 기자회견과 노선영 선수의 반박 인터뷰. 그 모든 사건들은 결국 청와대 국민청원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 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합니다”로 이어졌고 현재 기준 동의 60만 건을 넘어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논란이 된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인터뷰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두 선수 모두 응원해준 국민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민에게는 국가대표들을 응원할 의무가 없다. 국가대표에게는 국민들의 응원을 받을 권리도 없다. 국가대표는 당연히 실력을 기준으로 선발되어야 하겠지만 국민들이 국가대표를 응원하는 것은 단지 그들의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긍심과 긍지를 우리에게 보여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왜 청와대 국민청원에 “빙상연맹 적폐 청산”만이 아니라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 박탈”까지 포함되어 있는지 두 선수는 반드시 생각해 봐야만 한다.
백철기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이 응원 소리 때문에 코치진과 소통이 안 됐고 서로 거리가 벌어진 걸 예측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팀추월이 예선에서 탈락한 건 열심히 응원한 국민들 때문이라는 소리로 들린다. 비싼 돈 주고 경기장을 찾아 국가대표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한 국민들에게 이 무슨 막말이란 말인가. 그럼 은메달을 획득한 남자 팀추월은 국민들이 응원을 안 해줬다는 소린가. 남 탓도 정도가 있지.
스피드 스케이팅 마지막 종목인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 선수는 일본 선수에 이어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은메달 시상대에 섰다. 응원해준 관중들에게 큰 절을 하고 인터뷰에서는 죄송하다는 말만 남긴 김보름 선수는 아직 어리다. 앞 날이 많이 남은 그녀에게 이 번 일이 반드시 쓴 약이 되기를 바란다. 김보름 선수가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을 딴 것도 어쩌면 누군가의 큰 뜻이 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조금 더 살아본 입장에서 덧붙이자면 인간은 절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변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앞으로 국가대표로서의 김보름 선수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더 매서워질 것임은 본인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사태에 가장 근본적인 책임을 져야 할 빙상연맹. 마지막에 뒤쳐진 노선영 선수를 탓하면 국민들도 같이 노선영 선수를 탓할 거라는 아메바적인 생각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묻고 싶다. 올림픽이 끝났으니 지금의 시끄러운 얘기들도 잠잠해질 테고 국민들도 잊어버리겠지 라는 헛된 기대는 접어두시길. 동계올림픽마다 불거진 빙상연맹의 논란을 국민들은 아직 기억하고 있다. 앞으로 빙상연맹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국민청원에 대한 청와대의 답변에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