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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유나 Feb 18. 2018

그러나 그들의 시간은 끝났다

새로운 날이 지평선에 있다

얼마 전 중단발로 잘랐던 머리를 좀 더 짧게 자르려고 미용실로 향했다. 미용실 대기시간 킬링타임에는 또 잡지만 한 게 없어서 몇 권 가져다 놓고 쭉쭉 훑어보고 있는데 눈을 확 사로잡는 기사가 있었다. 오프라 윈프리의 2018 골든글러브 ‘세실B.드밀 상’ 수상소감과 미국 헐리우드의 #me too 운동. 미국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여배우들의 폭로는 이미 수개월 전 뉴스를 통해 접했던 내용이었다. 2018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참석한 여배우들은 다 같이 블랙 드레스를 입고 더 이상 이런 문제를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임을 세상에 천명했다. 이미 좀 지난 이 기사가 지금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me too 운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멋진 드레스에 필요한 1순위는 당당한 애티튜드"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서지현 검사와 손석희 앵커의 인터뷰.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며 꿋꿋이 이야기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눈빛에 가슴이 저려왔다. 그녀가 느꼈을 수치심과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당한 사람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이미 지난 일을 왜 지금에서야 끄집어내는 거냐는 공감 능력과 역지사지 능력이 결여된 모자란 사람들은 부디 제발 딸이 없어야 하고 손녀도 없어야 하고 누나도 여동생도 없어야 한다. 지금 없다면 앞으로도 없어야 한다. 엄마가 없이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테니 그건 어쩔 수 없겠고.


그래서 권인숙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 위원장에게 더 큰 기대를 갖게 된다. 적어도 이 사안에 대해 그녀에게는 누구보다도 큰 공감 능력이 있을 테니까. 다른 이슈들에 밀려 지금 헤드라인 뉴스에서 잠시 사라졌을 뿐. 우리나라의 #me too 운동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본인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여성들이 이제 더 이상 절대 약한 존재가 아니므로.




목소리가 큰 남자 직원한테는 방을 따로 만들어줘야겠다고 했으면서 목소리가 큰 나에게는 성격이 너무 강하다고 한 그 사람들이. 여자가 왜 치마를 안 입고 바지만 입냐던 그 사람들이. 레이디 퍼스트보다는 노약자 배려가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자리에 앉지 않겠다는 내 팔을 강하게 잡아당기던 그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살 뻔했다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 덕분에 그리고 곳곳에서 이어지는 용기 있는 여성들의 폭로 덕분에 이제서야 나는 목소리가 크고 바지가 편하고 나를 잡아당기는 그 손을 뿌리치고 끝내 앉지 않았던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한다. 할 말이 있어서 할 말을 하는 거고 지하철 출퇴근 길에 치마를 신경 쓰기가 싫어서 바지를 입는 거고 내 다리가 더 튼튼하니까 서있겠다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게 맞다고 할 수는 없는 세상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틀리지는 않았다.




오프라 윈프리의 2018 골든글러브 ‘세실B.드밀 상’ 수상소감 전문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 글의 제목과 부제목은 그녀의 수상소감 중 일부다. "진실을 당당히 말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말한 그녀는 지금 미국 차기 대선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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