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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유나 Feb 10. 2018

같이의 가치

2018년 평창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너무나도 힘든 하루였다. 의사결정권자의 결정 없이는 해결되지도 않을 회사 일들로 마음이 심란한 하루였고 다른 사람들과의 신경전으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도 한 그런 하루. 더군다나 갑자기 우리 팀과 점심식사를 하시겠다는 사장님과의 점심식사 자리까지. 젊은이들이 본인 할 일이나 할 것이지 촛불집회에 그렇게 몰려나간다고 손가락질을 하시며 열변을 토하시던 사장님의 오늘 주제는 평창올림픽. 문재인 대통령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김정은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다며. 만경봉호가 온 건 기름 받아가고 그 배에 비트코인으로 번 돈 실어가려고 온 거라며 열변을 토하시는데 왜 하필 사장님 앉으신 자리가 내 바로 앞자리란 말인가.


그나저나 북한이 만경봉호 기름 안 받기로 한 뉴스는 보셨으려나 모르겠다. 카카오톡으로 받으시는 가짜 뉴스 말고 그런 뉴스를 좀 보셔야 할 텐데.


아침도 못 먹고 출근했는데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더니 오후에도 정신이 멍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요거트에 치즈에 초코우유까지 온갖 것들로 당 충전을 했는데 빈 속에 들이킨 초코우유가 말썽이었나 보다. 금요일 퇴근시간 2호선 서초역은 플랫폼까지 초만원에 그나마 역으로 들어오는 지하철들도 당연히 만원이었다. 기운은 없고 속은 불편하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택시를 타려고 올라갔다가 꽉꽉 밀려있는 반포대로의 위엄에 포기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예술의 전당을 지나 사당역 방면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구토 증상이 올라와서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버스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앞문으로 뛰어내렸다. 그래 역시 초코우유가 문제였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기운이 쫙 빠져서 멍하니 서있는데 뒤에서 크락션 소리가 들린다. 날 내려준 버스가 아직 출발을 안 하고 그대로 서있다. 앞문이 열려있는 채로.


“죄송해요. 저는 당연히 그냥 가셨을 줄 알고..”

“여기는 정류장 아니라 그냥 가면 차도 없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빈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데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 그 누구도 나에게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쳐다보면 내가 민망해할까 봐 그런지 다들 앞만 보고 앉아계신다. 아, 그래도 아직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구나. 세상은 이렇게 함께 살아가는 거구나. 하루 종일 너무나도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갑자기 편안해졌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위로를 받았다.

 


험난했던 퇴근길 끝에 도착한 집. 배는 너무 고픈데 도저히 뭘 먹진 못하겠고 기운 없이 누워서 엄마랑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봤다. 너무나도 멋진 개막식 공연들에 감탄에 감탄을 하며 보고 있는데 드디어 대망의 성화 점화 순간이 다가왔다. 전이경 선수, 박인비 선수, 안정환 선수에게 성화가 전달되더니 성화대 밑에 서있는 두 명에게 성화가 다가간다. 자막이 나오기 전에는 누군지 모르겠던 그 두 사람은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의 정수현, 박종아 선수였다. 벌떡 일어나 앉을 수밖에 없었다. 세 번의 시도 끝에 다른 나라들 보기에 민망하게 개최하는 올림픽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번 올림픽이 나에게 이런 큰 울림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손을 맞잡고 함께 성화를 들고 밝은 빛으로 밝혀진 계단을 올라간다. 씩씩하게 환한 얼굴로.


두 사람이 올라간 계단의 끝에는 김연아 선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의 피겨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만 같은 짧지만 고결한 그녀의 스케이팅. 벤쿠버올림픽 최정상의 모습으로만 기억될 수도 있었던 그녀는 후배들을 위해 소치올림픽에 한 번 더 출전했고 국민들 모두 납득할 수 없었던 은메달을 받았다. 하지만 시상대에서의 그녀는 누구보다 기품이 있었다. 오히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안절부절한 모습을 보였던 건 금메달리스트 소트니코바였다. 그리고 4년 후 그녀는 평화의 여신과 같은 모습으로 평창올림픽의 성화를 밝혔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개최하는 올림픽.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그녀의 개회선언을 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세 번의 시도 끝에 2010년이 아닌 2014년도 아닌 2018년에 평창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것도 어쩌면 우리는 알 수 없는 하늘의 뜻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냉전의 시대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1984년 LA올림픽을 지나 1988년 마침내 서울올림픽에서 전 세계가 하나가 되었듯이. 이제 2018년 평창올림픽을 통해 냉전시대의 마지막 산물인 한반도 분단의 문제가 해결되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손을 맞잡은 정수현, 박종아 선수와 김연아 선수의 모습에서 나는 그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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