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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유나 Jan 20. 2016

행복

2백만원짜리 명품구두에는 없어도 2천원짜리 양말에는 있을수 있는

코트를 꺼내 입을 계절이 왔다. 부츠를 꺼내 신을 계절이기도 하다. 겨울에는 스타킹보다는 양말을 신고 다니는데, 작년까지 몇 년 간 신던 검정색 양말들은 이제 닳을 대로 닳았다. 좀 질리기도 하고. 새 양말을 사러 회사 근처 지하철역에 있는 지하상가를 샅샅이 훑어보고 다녔더니 발목까지 올라오는 알록달록한 양말을 천 원에 파는 가게가 있다. 웬만하면 천오백 원씩은 받는데, 천 원에 판다. 계속 장사를 할 것 같진 않고 금세 또 다른 가게로 바뀔 것 같은 느낌에 열 켤레를 사들고 집에 와서 엄마 앞에 펼쳐보였다.


"엄마, 나 양말  사 왔는데, 이거 한 켤레에 천원이야, 근데 괜찮지? 천 원치고?"

"괜찮네, 동네에서 사려면 이천 원은 줘야 될 것 같은데"


그다음날 저녁, 걷어놓은 빨래가 거실에 아직 쌓여있고 지난주 김장의 피로를 이겨내지 못한 엄마는 나를 기다리다 소파에서 쪽잠을 자고 있다. 졸음에 취해있는 엄마를 방으로 들여보내고 바닥에 쌓여있던 빨래를 정리했다. 솔직히 평소 같으면 피곤하다고 본체만체하고서는 텔레비전이나 봤을 건데, 이왕 보는 텔레비전 빨래라도 개면서 보자 싶어서 쌓여있던 빨래 더미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차곡차곡 정리하던 빨래들 속에 엄마 양말이 꽤 많이 있었다. 멀쩡한 거라곤 하나도 없었다. 발목이 다 늘어나서 보나 마나 신고 다니다 보면 신발 속에서 반쯤은 벗겨지게 생긴 양말들이 대부분이었다. 양말 몇 켤레 얼마나 한다고... 발목이 다 늘어나고 뒤축이 다 닳은 양말들을 또 신으려고 빨아놨다.


다음 날 퇴근하는 길에 다시 양말가게에 들러서 엄마 양말이랑 남동생 양말을 다섯 켤레씩 더  사 왔다. 여자용 얇은 양말은 천 원인데, 남자용 두꺼운 스포츠 양말은 이천 원. 그렇게 양말 만오천 원어치를 사들고 집으로 와서 엄마 앞에 또  펼쳐 보이고 있는데 퇴근하신 아빠가 어오셨다. 남자용 양말을 발견하시고는 입이 귀에 걸리도록 좋아하신다. 이런 검은색 두꺼운 양말이 꼭 필요하셨다면서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넥타이를 좋아하셔서 어버이날이랑 생신 때는 꼭 넥타이를 선물하는데  그때보다도 이천 원짜리 양말 다섯 켤레에 더 좋아하신다. 엄마가 내 허벅지를 지그시 누르며 먼저 말을 꺼낸다.


"딸이 당신 준다고  사 온 거야"


멀리 있지도 않고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다 막상. 되게 별거 아닐 수도 있다. 행복_이라는거.


그다음날, 엄마 양말 아빠 양말 남동생 양말 다섯 켤레씩 더 사들고 퇴근했다. 이제 양말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낡은 양말은 다 버리고 새 양말로 올 겨울 따뜻할 거다. 따뜻할 것 같다.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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