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 어떤 때는 나 빼고 가족 전부가 죽는 꿈을 꿔서 울다가 깨기도 하고, 내가 없어지고 말 꺼라는 생각에 겁에 질려 울기도 했어. 그때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은데, 너희 외할머니는 한동안 두고 보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계속 그러면 정신병원에 보낼 거야'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어. 실제로 그럴리는 만무했겠지만 어린애한테는 그 협박이 먹혀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억지로 마음속 깊이 묻어뒀었어.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생각하는 걸 잘 감출 수 없어서 '정신병원에' 가지 않기 위해서는 실제로 생각하지 않아야 했거든 ㅎㅎ
그렇게 죽음에 대한 생각은 내 마음속 깊이 묻혀 있었어. 아주 행복하거나 슬플 때 죽음이 문득문득 다시 떠오르긴 했어. 이렇게 행복한데 죽으면 이 기억조차 다 사라지는 건가, 이렇게 슬플 때 사라지면 다 없어지는 건가 하고.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그리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죽는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너무 공포스러워서 다시 억지로 저 깊은 곳에 밀어 넣곤 했어.
내가 사라질 거라는 걸 인정할 수 없었어
그런데 얼마 전 하버드 교수가 쓴 ESG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책을 읽다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만났어. 과학적으로 자연 속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다. 자신은 불교 신자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더 깊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자신이 더더욱 ESG(지속 가능 경영)에 관심을 두는 것 같다. 이런 짧은 이야기였어.
ESG에 대해 공부하려고 읽은 책에서 잠깐 언급된 부분인데, 그 부분이 엄청 강렬하게 다가왔어. 그 부분을 읽는데 갑자기 우리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건 - 그러니까 죽는 건 -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인정하게 되었어.
ESG가 부상한 배경과, ESG의 개요에 대해 이해하기 좋은 책이긴 한데... 네가 이 글을 볼 때쯤이면 Out dated 되었을 수도 있겠다 ㅎㅎ
왜,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갑자기 마음으로 와닿을 때가 있잖아. 그때도 그랬던 것 같아.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건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그 생각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어. 죽음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고, 그러니까 슬프고 아쉽더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라고.
며칠간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 드디어 인정하게 된 나의 죽음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생긴 수많은 질문에 스스로의 답을 내놓기 위해서 며칠의 시간이 필요했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건 여전히 힘들었어. 하지만 어느 정도 수용을 한 후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게 전보다는 덜 힘들기도 했고, 그즈음 읽은 책에서 마침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음을 수용해야 한다.'는 몽테뉴의 말을 접하고 그의 지지를 받으면서 생각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단다.
(너랑 놀아주고, 너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너를 재우면서 머릿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미안하다 ㅎㅎ)
내 글에서 몇 번 인용했던 책이지. 요즘 너무 베스트셀러라 오히려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굉장히 좋았어. 부제 그대로의 책이야.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가장 큰 질문은 이거였어.
결국 모두 죽고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는 건 받아들였어. 내 기억, 인연 등등 모든 게 사라져 버린다는 걸 인정했어. 나뿐 만이 아니라 모두가 죽을 거야.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어. 그러다 언젠가는 인류가 쌓아온 모든 게 사라지겠지.
그런데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열심히 살까? 뭘 위해 노력하는 걸까?
내 답은 이거였어.
세상을 떠 다니던 원자들이 엄청난 확률로 만나 '나'가 되었어. 엄청난 확률을 거쳐 얻게 된 삶이야. 그렇다면 기왕 이렇게 살게 된 거, 주어진 시간 동안 최대한 누리며 사는 게 좋지 않을까?
나뿐만 아니야. 다른 모든 사람들도 나와 동일하게 엄청난 확률로 이 삶을 얻었어. 그렇다면 그들이, 그리고 앞으로 올 세대가 최대한 자신의 삶을 누리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
며칠 간의 고민으로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어.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고, 너무 낭만적인 생각일 수도 있고, 어디선가 접했던 생각들을 무의식 중에 기억하고 있다가 군데군데 이은 것일 수도 있어. 나중에는 종교가 생겨서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 생각이 내가 난생처음 죽음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두려움을 마주하며 생각해서 얻은 결론이라는 거지.
내 삶에 닥칠 일에 대해 두려워하고 부정하고만 있다가, 용기 내 마주하고 내 나름의 정리를 하고 나니 어딘가 모르게 든든해. 삶의 기준이 하나 세워진 느낌이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건 아주 두렵지만 동시에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 너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 언젠가 너와 이런 대화도 나눠보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