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내가 서툴러서 힘들었지만, 유달리 방어적이거나 감정적인 분들을 만나면 더 힘들었어. 프로젝트에 이슈가 생겼는데 공유도 안 해주고 연락도 안 받는 경우도 있고, 자기가 잘 못해놓고 은근슬쩍 내 잘 못으로 떠넘기는 경우도 있었고, 이슈를 만든 건 그쪽인데 오히려 나한테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지.
근데 있잖아. 그런 상황에서 느낀 건 더 열심히 말해야 한다는 거였어. 처음에는 말을 조금 조심해야 하나 싶었어. 어려운 말은 돌려서 하고, 모여서 얘기할 자리는 만들되 내 발언은 줄이고. 그런데 그런 태도는 당장 눈에 보이는 갈등을 조금 미룰 뿐 일하는 데 딱히 도움이 되지 않더라고. 결국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데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지 않으면 일이 잘 되지 않아. 모르면 모른다, 도움이 필요하면 필요하다 탁 털어놓고 얘기해야 풀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어.
그건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였어. 말을 할까 말까 고민되었을 때는 나는 항상 하는 편이 나았어. 결혼을 한 직후에는 시댁과의 관계가 참 조심스러웠어. 너희 할머니, 할아버지는 좋은 분이지만 고부간의 긴장관계는 어쩔 수 없었어. 하지만 관계가 조금 익숙해지고 마음에 담아둔 말들을 하고 나니, 그때는 어려워도 전반적으로는 훨씬 좋아졌어.
하고 싶은 말을 담아둬서 갑갑하나, 말을 하고 후회하나, 내내 신경 쓰이고 서로 불편한 건 마찬가지야. 하지만 말을 하고 나면 갈등이 있을지언정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게 되지. 그리고 서로가 하는 생각을 안다는 건 갈등이 풀릴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아, 물론 묻어두는 게 나은 것도 있지. 너의 판단이야. 바꿔야겠다고 생각해서 말할 건지, 이 정도는 묻는 게 낫다 해서 니 머릿속에서도 잊을지. )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라고 하잖아. 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말은 조심해서 하라는 말이 많지만, 나는 말은 하는 편이 나았어.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내가 한국, 그리고 여성이라는 집단에 동시에 속해 있기 때문일 거야. (아마 네가 아들이었다면 이번 편은 쓰지 않았을 수도 있어.)
세계 여러 사람들과 일해 보면 한국인들이 정말 말이 적다는 걸 알 수 있어. 말은 제일 적고 일은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회의할 때는 (언어의 장벽과 관련 없이) 말이 적은 사람에 속하게 되는 것 같아.
게다가 여자는 아직까지, 남자들보다는 평균적으로 앞에 나서 말하는 경우가 적은 것 같아. 말을 할 때도 좀 더 수동적으로, 돌려서 하는 경우가 많고. 몇 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Lean In이라는 책에서도 저자가 '당당하게 테이블에 앉아라'라고 했었지. 내가 일할 때도 보면 회의석상에서 항상 여자들은 테이블보다는 뒤에 여분으로 놓인 의자에 앉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이런 상황에 놓인 우리가 말을 '충분히' 하기란 쉽지 않아. 오히려 충분히 말하는 사람은 '기가 세다', '욕심이 많다' 등등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 십상이지. 적어도 엄마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그래.
너의 지금에서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졌든 아니든, 기표 사이에서 기의는 원래 미끄러지는 것이든 아니든,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렴 하렴.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격려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