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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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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Nov 10. 2023

뉴올리언스 3, 4일 차 + 일상 복귀

미국생활 69-70일 차



3일 차에는 스왐프(늪) 투어를 갔다. 준비를 하나도 안 하고 온 여행이라 오기 전까지는 이 근처에 늪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아이가 공항에서 팸플릿을 보고 가고 싶대서 급하게 예약했다. 요즘 누가 공항에 비치한 팸플릿을 보고 투어를 가나 싶었는데 우리 가족이 그러고 있었다. 전에는 단지 우리가 타깃 고객군이 아니었던 거다. 확실히 우리 삶이 달라졌다.


시내 집결지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여를 갔다. 여긴 팁 문화가 있어서 그런지, 버스 기사 아저씨 옆에는 팁 상자가 잘 보이게 비치되어 있었고 기사 아저씨가 가는 길을 가이드를 했다. 별게 없는데도 여긴 공동묘지, 여긴 성 모양으로 지은 집, 이 동네 사람들이 대부분 가는 병원 하면서 열심히 설명을 했다. 아이랑 나란히 가느라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이런 식으로 동네 사람에게 동네 가이드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싶었다. 이런 건 팁 문화의 이점인 것 같다.


아저씨가 카메라 꼭 미리 준비했다가 얼른 찍으라고 해서 찍은 공동묘지 ㅎㅎ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늪지대가 펼쳐졌다. 큰 나무들이 가지를 바닥으로 드리우고 있었다. 늪은 처음이라 나무 모양부터가 신기했다. 투어는 20명 정도 씩 한 배에 타서 늪지대를 돌아다니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늪지대 자체가 신기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광경!


나무가 우거져 있고, 거북이나 악어들이 햇빛에 등껍질을 말리고 있고, 너구리들이 돌아다니고, 집들이 물가에 있었다. 사람도 공격한다는 커다란 새들이 날아다녔고, 물뱀의 분홍빛 알들이 나무줄기에 붙어 있었다. 16년 전에 사막 투어를 갔을 때 이후로는 이렇게 새로운 생태계에 들어온 적이 없어서 새롭고 좋았다.


둥둥 떠가는 악어, 보이긴 하려나 ㅎㅎ


팸플릿이나 웹사이트에는 거의 악어 투어 인양 광고를 해놨는데, 악어는 새끼 악어 밖에 못 봤다. 우리는 투어 내내 더웠지만 변온동물인 악어에게는 추운 날씨라고 했다. 이런 날씨에는 악어들은 주로 자기 둥지에 들어가 있고 잘 움직이지 않는단다. 그리고 큰 악어들은 배 진동에 민감해서, 배들이 안 다니는 곳에 있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아이는 악어를 잔뜩 기대했다가 기대만큼 악어를 못 본대다 더워서 그런지 늘어져 있었지만, 남편과 나는 그래도 구경을 잘했다.


먹이 얻어 먹으러 쫓아오는 너구리는 실컷 봤다. 너구리 투어인줄 ㅎㅎ


투어를 마치고는 다시 시내로 가서 어제 갔던 식당에 또 갔다. 해산물 검보, 잠발라야, 후라이드 치킨 (어린이식)을 시켰다. 검보와 잠발라야는 각각 진한 해산물 육수에 요리한 파에야, 찐한 토마토소스의 감칠맛 폭발하는 리조토 느낌으로 맛있었고, 어린이식인 후라이드 치킨은 어린이식인데도 반죽에 향신료를 잔뜩 넣어 아이는 속살과 감자튀김만 먹었다.


여기 음식은 다 감칠맛 폭발이라 맛있다. 폭풍같은 속도로 감튀를 집은 오동통한 딸내미 손 ㅎㅎ


어제 서로 화났던 감정이 남아 있어 내내 서먹했는데, 간신히 참고 남편에게 손을 내밀어 보았다가 거절당했다. 내내 똥 씹은 표정이라 쉬라고 호텔로 보내고 나는 아이와 뮤지컬 레전드 파크라는 곳에 갔다. 이것도 대충 공연을 많이 하는 공원이라고만 알고 갔는데, 알고 보니 한 카페에서 유명하는 야외 정원이었다.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라이브 음악을 배경으로 아이와 재밌게 놀았다. 종이접기도 하고, 찰흙도 하고, 정원 구경도 하고. 거기서 1시간 반 넘게 놀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이 걱정하는 것에 비해 아이와 나는 너무 즐겁게 다른 사람에게 폐 안 끼치고 잘 놀고 있었다...ㅎㅎ


의외로 아이랑 놀기 좋았던 뮤지컬 레전드 파크!


그리고는 로열스트리트로 넘어가서 기념품 가게에도 들어갔다. 남편은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면 아이에게 어떤 물건도 손도 못 대게 하는데, 나는 물건을 드는 정도가 아니면 용인하면서 잘 살피고 있으니 아이도 알아서 조심하며 구경했다. ㅎㅎ 아이가 사고 싶어 하는 건 많았지만 (잘 안 사주는 걸 아니, 아이도 항상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이건 오늘 안 살 거지? 나 생일 때 사줘, 까먹지 마' 하고 얘기한다. 내 눈에 아이는 다른 어떤 애들보다 순한 것 같은데 남편의 기준이 높다. ㅎㅎ) 잘 얼러서 특산품 디저트를 하나 사주고, 남편이 곧 친구 집에 갈 예정이라 가져갈 초콜릿도 하나 샀다. 이 와중에도 남편이 선물할 초콜릿을 사다니 참내. ㅎㅎ


이런 소품샵들이 많았다!


그러고는 남편을 만났다.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사실 중간에 남편이 더 잘못한 일이 있었지만 사과를 요구하고 나도 넘어가는 식으로 억지로 화해를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첫날 저녁에는 내가 바를 갔으니 마지막 날인 오늘은 남편이 나가라고 했는데 딱히 그러고 싶지 않대서 혼자 또 나가서 음악을 듣다 왔다. 한번 더 권하고 싶었지만, 내 호의를 호의가 아닌 강요로 받아들일 것 같아서 말았다.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건 참 어렵다. 결과적으로 나는 덕분에 밴드 공연을 한번 더 즐길 수 있었다.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바에 가서 한 시간쯤 한 밴드의 공연을 즐겼다. ㅎㅎ 밴드의 음악이 좋아서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려고 보니, 보컬은 객원 멤버였다. 보컬의 인스타를 보니 요가도 하고 가방도 만들며 자유롭게 사는 것 같았다. 복장부터가 치마를 3개나 입고 힙색을 맨 특이한 복장이었다. 나와 너무 다른 삶이 흥미로웠다.


안녕 뉴올리언스 ㅠㅠ


이 사람도 그렇고 밴드 멤버들도 그렇고 우리와는 라이프 스타일이 많이 다를 것 같다. 생활시간도 그렇고 일의 형식도 그렇고. 잠깐 관광객으로서의 경험이지만, 여기는 밴드나 바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서 그들을 인지하는 나의 시선도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우리 같은 직장인의 삶이 보통이고 밴드를 하는 사람들은 '소수'인데, 잠깐의 경험이지만 여기 뉴올리언스에서는 밴드가 너무 많아서 그들이 소수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이 된다. 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사실 미국에 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미국은 '다른 사람들'이 많고, 그 다름이 너무나도 다양해서, 내가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 한국에서 딱히 다른 사람과 달라질까 봐 불안해하거나 부담감을 느낀 적은 없는데, 여기 와서 몰랐던 한국에서의 부담감을 새삼 느끼게 됐다.


다음날은 별다른 일정 없이 아침을 먹고 바로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전날 밤 비행기를 탈까 하다가 아이가 피곤할까 봐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예약을 했는데, 나도 하룻밤이라도 더 즐기고 좋았다. 시차가 있어 돌아오니 거의 저녁때가 다 되었다. 남편과 아이 저녁만 챙겨놓고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미뤄둔 숙제가 산더미 같아서 사실 오는 비행기에서도 나는 내내 과제를 했다. 학교에 가서 조모임 2개와 또 다른 숙제를 하나 마친 후 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과제와 조모임 덕분에 모드 전환을 빠르게 했다.


힝 ㅠㅠ



다름을 많이 경험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도시의 날씨도 문화도 달랐고, 같이 여행한 남편과의 다름도 새삼 느끼고 ㅎㅎ 그래도 다름을 느끼고 새로운 감상을 하는 것도 여행의 묘미겠지 ㅠㅠ 어제 일기에도 썼지만 앞으로의 가족 여행을 어떨지 고민 좀 해봐야겠다.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걸 부담스러워하고 여행도 딱히 원하지 않는다. 같은 뉴욕이라도 아이와 다니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 놀이터에서는 원도 한도 없이 잘 놀아주지만. 반면 나는 내가 어려서 부모님과 많이 다닌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아이와 많이 다니고 싶다. 아이도 충분히 잘 따라오는 것 같고. 서로 생각이 너무 다른데, 타협점을 찾기가 어렵다. 이 평행선이 어떻게 정리가 될지 나도 궁금하다.




* 어제 일기는 다툼 얘기를 자제하고 그래도 좋았던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려고 애썼는데, 그랬더니 너무 감정이 왜곡되는 것 같아 오늘은 풀어 버렸다. 남편의 사전 허가를 득했다 (ㅋㅋ) 이런건 또 쿨하다. 사실 이런 다툼이 있는 것도 둘이 진짜로 공동 육아를 하는 덕분인 걸 알고 있다. 감사한 부분도 많다.


* * 남편의 얘기가 궁금한 분은 남편의 블로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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