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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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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Nov 09. 2023

뉴올리언스 여행 2일 차

미국생활 68일 차



오늘은 뉴올리언스 도심을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우선 톰소여와 허클베리핀의 미시시피강부터. 어렸을 때 '톰소여의 모험' 책과 공연을 보면서 모험을 꿈꾸던 바로 그곳이었다. 생각보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ㅎㅎ 좀 덜 번잡한 한강변 같기도 하고.



남편과 한강 얘기를 하면서, 여기는 왜 다리가 하나밖에 없을까 통행량이 적을까, 그럼 강 건너 저 쪽은 집 값이 엄청 싸겠나라는 대화를 했다. 어렸을 때 '톰소여의 모험' 공연을 보고 나서 엄마한테 '나도 모험할래!'라고 했더니 엄마가 '현실에선 모험을 떠나면 살아 돌아오기 힘들어'라고 했었는데,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나 보다. ㅎㅎ


딸이 배를 타보고 싶다고 해서 페리를 타기로 했다. 유람선은 비싸지만, 강을 오가는 대중교통인 페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중교통 패스로도 탈 수 있어서 그걸 타고 강을 왕복했다. 사실 별 건 아니었는데, 아이는 함께 배를 타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우리도 페리를 탄 덕에 강을 더 구경할 수 있었는데, 엄청난 크기의 화물선이 오가는 게 신기했다. 강이 내륙 물류 운송의 수단으로 쓰인다는 걸 교과서에서만 배웠지 진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저 허연게 다 화물선이다!


페리에서 내려서는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이름은 무려 Mother's restaurant, 엄마 식당이었다. 세계 최고의 햄을 판다고 쓰여 있었고 이른 점심시간에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뉴올리언스 음식을 먹으러 왔지만 세계 최고의 햄을 놓칠 수는 없었다. 세계 최고의 햄과 여러 가지 사이드, 쉬림프 크레올을 시켰다. 아무리 수제 햄이라도 맛있게 먹은 기억이 거의 없어서 기대를 안 했는데, 대놓고 세계 최고의 햄이라고 써 붙인 햄은 다르긴 달랐다. 적당히 짜고 도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히 질감이 있어서 좋았다. 딸내미도 잘 먹었다.


왼쪽 아래가 햄. ‘엄마’의 햄이라 그런가 ㅎㅎ


쉬림프 크레올은 양파, 셀러리, 피망 조합 (이 조합을 여기서는 holy trinity라고 부른다. 웬만한 음식에는 이 세 가지 재료가 다 들어간다.)에 토마토가 더해진 새우 수프 + 밥이었다. 통통하고 쫄깃한 새우가 씹히는데 적당히 신맛이 있고 감칠맛도 있었다. 남편이 좋아했다 ㅎㅎ 사이드로 먹은 음식들도 다 좋았다. 특히 남부에서 많이 먹는  grits는 옥수수가루로 만든 끈적한 죽인데, 옥수수 가루가 굵게 갈려서 조금 식감이 있으면서도 아주 연한 옥수수 향이 좋았다.  (햄에 각종 향신료가 섞인 음식들을 먹었는데도) 전반적으로 자극적이지 않고 집밥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만족!


호텔에 돌아가 아이를 잠시 재우고 뉴올리언스의 대표 카페, 카페 드 몽드를 갔다. 여긴 치커리 뿌리를 볶아 원두와 함께 갈아 낸 커피와 베녯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베녯은 달콤하고 밀도 있는 도넛, 어제 먹은 곳이 훨씬 나았다. 치커리 뿌리 커피는 라테로 먹으니 보통 커피와 차이가 별로 없었고, 블랙으로 먹었을 때도 쌉쌀한 맛이 나서 미국에서 흔히 먹는 물 같은 드립커피보다 훨씬 나았다. 참고로 치커리 커피는 블루보틀에서도 팔아서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다.


서둘러 사진을 찍는데 고새 침투하는 딸내미 손 ㅎㅎ


카페 드 몽드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나 호객이 많았다. 어떤 풍선 만드는 아저씨는 자꾸 우리 딸에게 풍선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는데, 내가 됐다고 몇 번 얘기해도 아저씨는 다가오고 딸내미는 하겠다고 그 아저씨한테 끄덕끄덕 하고. 결국 하나를 강매당했다. ㅎㅎ 이런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어른들끼리 여행 다닐 때는 겪지 않았던 일들을 많이 겪는다. 부부싸움도 그렇고 ㅎㅎ


결국 풍선을 사서 신난 딸내미 ㅎㅎ


남편은 첫째 날부터 조금 불편한 기색을 비쳤다. 날씨가 좋은 뉴올리언스는 우리가 사는 뉴욕보다 노숙자가 많았다. 아이가 라이브 공연을 보고 싶어 할 때, 나는 그런 아이를 신기해하며 같이 음악을 즐기는 한편 남편은 아이의 청력과 담배 냄새 등을 걱정했다. 첫날은 그냥 조금 걱정을 하나보다 정도였는데 둘째 날부터는 점점 불편한 기색이 커졌다. 페리를 타러 갈 때에도 2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며 불평했다. 나는 20분 동안 강변에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결과적으로 아이도 잘 있었고 나랑 달리 여행을 딱히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아이 데리고 새로운 장소에 가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이, 날 따라와 준 걸 잘 알아서 나도 잘 어르며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뉴올리언스는 아무래도 너무 난이도가 높은 선택지였나 보다. 남편은 엉뚱한 데서 터졌고, 나는 나 나름대로 열심히 참고 어르고 다니는데 정말 뜬금없이 화내는 남편에게 토라졌다. 이때부터 우리는 만 하루 동안 서먹하게 지냈다. ㅎㅎ 아이가 없을 때는 없었던 일이다.


그 와중에 우리는 나름 번갈아가며 프리저베이션홀이라는 유명 재즈 공연장에서 공연도 봤다. 우리가 본 공연의 밴드 멤버들은 다 할아버지들이었다. 남편은 재즈곡 중간의 자율 연주마저 정형화된 것 같았다고 박제된 느낌이 들었다고 했지만, 나는 수백 번 연주를 해서 자율 연주가 몸에 배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연장 자체도 굉장히 작고 옛날식으로 꾸며둬서 좋았다.


너무 멋진 분위기!


하루종일 남편의 심기를 살피다가 결국에는 터져서 정신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밥도 공연도 어제보다 더 제대로 경험해 볼 수 있었던 하루라 여행 자체는 좋았다.. ㅎㅎ 나는 미국에 있을 때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잘 고민해 봐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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