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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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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Nov 11. 2023

온 가족 링컨센터 공연

미국생활 71일 차


온 가족이 링컨센터로 공연을 보러 갔다. 'Sound of (Black) Music'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영화 Sound of Music에 나오는 곡들을 전자 음악과 가스펠로 변형해 공연했다.



링컨센터는 대중적인 공연을 원하는 금액만 지불하면 볼 수 있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티켓 당 35불이 참고 금액이지만 최소 금액이 5불이라 양질의 공연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다. 나도 겨울 공연을 몇 개 신청해 뒀는데, 이번에는 아는 언니가 못 가게 되었다고 표를 넘겨줘서 예상보다 일찍 경험할 수 있었다.


집에서 저녁을 일찍 챙겨 먹고 딸내미와 남편과 나섰다. 밤의 링컨센터는 아름다웠다. 건물마다 불이 예쁘게 밝혀져 있고 광장 가운데는 분수도 운영 중이었다. 딸내미는 분수를 보자마자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분수 보고 들뜬 아이를 어떻게 데리고 들어가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시간 맞춰 아이에게 화장실 신호가 온 덕에 공연 시간에 맞춰 건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는 분수를 보자마자 달려갔다


꽤 자주 미국 사람들 보다 한국 사람들이 시간을 잘 지킨다는 생각을 하는데, 공연장에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7시 공연인데 7시 15분이 되어서야 공연을 시작했다. 전에 센트럴파크 드론쇼 때도 그랬지만, 링컨센터 공연이 이럴 줄은 몰랐다. 공연이 예상보다 늦게 시작돼도 아무도 당황하지도 않았고, 당연하게 사람들은 늦게 들어왔다. 아이는 지겨울 법도 했지만, 다행히 바로 뒷자리에 만 2살 아이가 엄마랑 앉아 있어서 아이는 공연 시작할 때까지 그 아이랑 잘 놀았다.


6시 55분 쯤에도 자리가 거의 비어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지막 2곡 외에는 공연을 잘 못 봤다. 아이는 공연이 시작되고도 계속 뒷자리의 아이와 놀고 싶어 했고 (소리를 내는 건 아니지만 자꾸 뒤를 보고 앉는다던지) 남편은 그런 아이에게 화가 났다. 아이를 잘 꼬셔서 공연을 보게 하려니 잠이 들려했고, 자려는 걸 깨웠더니 다시 뒤를 돌아 놀고 싶어 했다. 안 되겠어서 내보낼까 하는 시점에 남편이 아이에게 버럭 했다. 아이는 풀이 죽어서 공연을 바라보다가 화장실을 가겠다며 나갔다.


이번에야 아이가 흥미 없어했지만,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갈 때마다 아빠한테 혼이 나면 새로운 환경에 가는 걸 안 좋아할까 봐 걱정이다. 뉴욕에 오고 나서 마트만 가면 혼이 나서 (복잡한 마트에서 다른 사람이 지나가려는데 본의 아니게 길을 막고 서 있거나, 지나가다 다른 사람과 살짝 부딪힐 뻔 해도 혼이 난다.) 아이는 마트에 가는 걸 싫어하게 되었다. 내 생각에는 남편의 기준이 높은 것 같은데, 남편은 그러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고 하니 어째야 하나 싶다. (남편이 보기에는 내가 너무 허용적일 거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다른 엄마들 얘기를 들어봐도 얘는 또래에 비해 진짜 얌전하다.) 정말 아이를 혼자 데리고 다녀야 할까.


어쨌거나 아이가 나가고 마지막 2곡은 잘 들었다. 전혀 공연에 집중하지 못하겠고 대체 왜 여기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던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고 나는 남았기 때문이다. 공연 자체는 좋았다. 에델바이스를 소울 넘치는 흑인 남자분의 목소리로 들으니 감상이 남달랐다. 특히 첫 몇 구절은 알 수 없는 (아마 그분 모국의) 언어로 불렀는데,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더 구슬픈 느낌도 있고 와닿는 느낌도 있었다. 소울 넘치고 흥 넘치게 부른 마지막 곡 'So long, farewell'도 위트 있고 좋았고.


안녕! 잠깐 들었지만 좋았던 공연!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설계한 것도 흥미로웠다. 음악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수어 서비스도 제공했다. '모두'가 대상이니 당연히 아이들도 많이 왔다. 딸내미 보다 더 어린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조금 다른 종류의 공연들을 딸내미를 데리고 가볼까 싶다.


나오니 건물 앞 계단에서 남편과 아이가 신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도 분수에서 잠깐이나마 신나게 놀았다. 그래, 어디서든 잘 놀았으니 되었다. 아이와 가는 장소의 종류도, 남편과의 동반 관련해서도, 계속 이런저런 시도를 해봐야지.


링컨 센터 다른 건물 앞. 여긴 진짜 밤에 와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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