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의 감상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 마케터, 이승희 님의 강연에 다녀왔다. (동서식품에서 T.O.P 살롱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운 좋게 참석하게 되었다!) 주제는 '마케터 이승희와 함께하는 기록&글쓰기'.
나름 폭풍 기록러로써, 기록한 것을 어디에 어떻게 정리하고 콘텐츠화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많았기 때문에 참여 전부터 많이 기대했다.
강연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건 발표 그 자체였다. 탄탄한 구성을 보면 분명 사전에 잘 준비된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웠다. 몇 달 전 나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내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불과 10분 간의 발표였지만 쉽지 않았다. 회사에서 평소 프레젠테이션을 할 일이 많았고, 나름 준비도 열심히 했지만 힘들었다. 긴장도 많이 했고 남 앞에서 내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반면 승희님은 청산유수였다. 말만 청산유수가 아니고 스토리도 탄탄했다. 경험도 콘텐츠도 풍부했다. 강의 중 승희님이 '창의력은 스퀴즈 아웃(짜내기)이 아니라 스필 오버(흘러 넘침)가 되어야 한다.'라는 박웅현 님의 말을 인용했는데 나는 승희님 강의를 보면서 스필 오버를 느꼈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건 승희님의 에너지였다. 승희님은 배민 서비스 초기부터 팬이었다고 한다. 블로그, 페이스북 등 온라인에서 열심히 배민의 팬임을 증명하다가 결국 배민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온라인 마케터로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 후 3년 간은 하던 블로그도 중단하고 야근을 밥 먹듯 하다가 종양까지 걸렸다고. 병가를 내고 마케터로서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기 위해 기록을 시작한 것이 3년간 지속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은 10개의 sns 계정을 운영하고 2권의 책까지 출간했다. SNS와 출간 외에도 남의 집 프로젝트(집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프로그램), 목요일의 글쓰기 등 많은 사이드 프로젝트도 운영하고 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며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만 해도 시간이 빠듯하다 생각했는데, 승희님은 콘텐츠를 산출물화하고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하고 있었다. 에너지가 대단했다. 특히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벌이는 건 진짜 에너지다. 그래설까. 같은 직장인인데도 마치 생기 넘치는 학생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젊은 에너지를 그렇게 뿜을 수 있다는 게 멋져 보였다.
강연을 보고 더 많이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도 크고 기록도 꾸준히 하지만 정작 콘텐츠는 적다. 가능한 좋은 콘텐츠를 내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는 게 조심스러웠고, 글을 써도 섣불리 내보이기를 꺼렸다. 내놓지 않은 기록은 기록으로 그치거나, 기록 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승희님은 달랐다. 소소한 생각, 감상까지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삭제하지 않았다. 심지어 전 남자 친구와의 얘기도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아카이브라는 것이다.
사실 이 얘기는 남편이 자주 했었다. 내가 칼럼을 발행하기 시작했을 즈음 남편도 투자 블로그를 시작했다. 나는 그간 정기 간행물 형식으로 칼럼이나 브런치만 꾸준히 발행하고, 이런저런 기록을 하는 네이버 블로그는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칼럼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 확고한 개인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는 없다. 반면 남편은 꾸준히 하고 싶은 얘기, 남기고 싶은 기록을 블로그에 남겼다. 기사를 스크랩하고 감상 한두 줄만 남기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결과, 남편은 이웃이 수 천명에 달하는 꽤 인기 있는 블로거가 되었다. 남편은 계속 나한테 일단은 쓰라고 했고, 최근에는 남편을 보며 느낀 바가 있어 나도 다시 꾸준히 SNS를 해보려고 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승희님을 만나니, 그런 마음이 더 확고해졌다. 물론 재미있게 편하게 글을 쓰는 게 내 스타일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 조금은 방향을 틀어보려고 한다. 좋은 때, 좋은 강연을 만났다.
+) 그런 의미에서 '어떤 날의 감상' 매거진 시작! (기존에 음식 관련 감상 위주로 남기던 '내가 좋아하는 것들' 개편) 음식 관련 내용만 올리는 브런치에 내 다른 감상이나 영감(?)을 기록해도 될까 고민했지만, 어제의 기억이 남았을 때 서둘러 시도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