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메 아욘 전시 @대림미술관, 환상 속을 걷다

어떤 날의 감상

by 솜대리




가끔 시야가 확 넓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하이메 아욘 전시는 드물게 그런 느낌을 받았던 미술/ 디자인 전시였다. 어쩌면 내가 너무 이 분야에 문외한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모양도 색깔도 틀에 박히지 않은 하이메 아욘의 세계는 환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의 세계가 너무 자유롭고 다채로워서, 상대적으로 내가 있던 세상이 무채색으로 느껴졌다.


하이메 아욘이 자신의 꿈을 주제로 그런 그림


하이메 아욘은 스페인의 산업 디자이너다. 가구나 소품 디자인 작업을 많이 해왔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형태와 화려한 색감의 오브제들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하이메 아욘 전시의 포스터. 사진에서 하이메 아욘이 직접 모델이 되었다.


전시에 가기 전에는 그에 대해 전혀 몰랐다. 미리 그의 작품 사진이나 인터뷰를 조금 찾아봤지만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보는 그의 작품들은 독특하다 뿐이지 큰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전시에서 보는 작품들은 확실히 색깔이나 존재감면에서 생동감이 넘쳐 훨씬 좋았다. 그리고 사실 나는 그의 주요 작품인 소품과 가구들보다는 그의 그림들이 좋았다. 자신의 꿈이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있었다. 나도 똑같이 꿈을 꾸고 생각을 하는데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신기할 따름이었다.


소스병 뒤의 그림은 소스병을 디자인하기까지 다양한 생각을 스케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오브제 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거대한 체스 모형들이었다. 사람 크기로 만들 체스 모형들이 체스판처럼 생긴 전시장 안에 서 있었다. 체스판 위에서 모형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서있자니, 마치 내가 체스 말이 된 느낌이었다. 체스 모형에는 바퀴가 달려 있어, 다른 나라에서는 사람이 상대편 체스 말이 되어 이 모형들과 체스를 하는 체험형 전시도 진행되었다고 한다. 대림미술관 전시는 워낙 사람이 몰리는 데다, 아직 우리나라 전시 문화가 체험형 전시를 쉽게 할 만큼 성숙하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아쉬웠다. 우리나라에서도 체험형 전시가 좀 더 많아지는 날이 오겠지.


킹과 퀸은 남자 키, 비솝 등은 여자 키와 비슷하다.

모든 작품이 인상 깊었던 건 아니다. 많은 오브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아래 사진의 오브제, 본본 트레져는 크리스털을 정교하게 가공한 오브제 안에 빨간 크리스털을 넣은 작품이다. 그 옆에 '네 안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봐'라는 코멘트가 달려 있었는데 나로서는 잘 와 닿지 않았다.


작품 본본 트레져와 그에 대한 설명



하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전시였다. 나와 너무 다른 세계에 잠시 다녀온 느낌이었다. 가끔은 흥미 분야가 아니라도 기웃거릴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취향, 내 관심사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대학생 때, 그리고 사회 초년생 때는 닥치는 대로 경험하고자 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뭐에 관심 있는지도 확실히 모르던 때라 무조건 다 경험하고 보자는 주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내 취향과 색깔이 생기고, 가보지 않아도 내가 좋아할 만한 건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시간과 자원을 아낄 수 있어서 확실히 경제적이긴 하지만,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것만 할 시간도 부족하긴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낯선 분야를 기웃거리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어떻게 옥석을 가려내며, 얼마나 자주 기웃거리느냐 라는 방법론적인 문제는 남지만.


하이메 아욘의 말. 음식에 관심이 많은 나라 그런지, 이 문구가 유달리 인상 깊었다. 어떤 분야든 원리는 다 통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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