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주차] 입덧을 피하는 방법, 한식 파인다이닝

음식임신일기

by 솜대리




야심차게 입덧을 피하는 방법이라고 했지만 이 말은 엄밀히 말하면 틀렸다. 주제를 축약하며 제목을 짓다 너무 과감해졌다. 입덧은 감히 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겪으면 겪을수록 발버둥 치면 칠수록 입덧의 강력함과 잔혹함을 느낀다. 이 이야기는 입덧에도 불구하고 한식 파인다이닝을 어떻게든 즐겨보자고 발버둥 친, (입덧이 오기 전까지는) 먹는 낙으로 살아온 한 임산부의 고군분투기다.


가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간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식 파인다이닝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파인다이닝 하면 한식 보단 양식이었다. 가끔 있는 기회니 가능한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파인다이닝을 몇 번 다녀보고, 우리나라에도 점차 한식 파인다이닝을 하는 레스토랑이 늘면서 관심이 갔다. 호기심에 한 번 한식 파인다이닝을 가보았고, 그 이후에는 한식 파인다이닝에 푹 빠졌다.


한식 파인다이닝에서는 음식을 보다 더 깊게 즐길 수 있다. 한식은 친숙하다 보니 셰프가 그 음식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그 변화가 맛에 어떤 차이를 줬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양식 파인다이닝에서 푸아그라 요리를 먹는다고 하자. 맛있게는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의 우리나라 사람에게 푸아그라는 낯선 식재료다. 보통은 그 푸아그라 요리만의 특성이나 장단점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하지만 트러플 콩국수를 먹는다고 해보자. 우리는 콩국수에 대한 기본적인 맛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트러플의 향이 콩국수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콩물의 맛과 식감이 일반적인 콩국수와 어떻게 다른지 느낄 수 있다. 내게는 음식에 대해 생각하는 그 과정이 마치 음식을 고민하고 준비한 셰프와 소통하는 과정처럼 느껴져 무척 즐겁다.


IMG_0322.JPG 트러플 콩국수. 부드러운 콩국물과 트러플의 부드러운 맛과 풍미가 잘 어울렸다.


그래서 권우중 셰프의 The good chef 프로그램을 내내 벼르고 있었다. 권우중 셰프는 미슐랭 2 스타를 받은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권숙수의 오너 셰프다. 한식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식재료와 새로운 요리법으로 멋진 음식들을 탄생시키는, 내가 참 좋아하는 셰프다. 그리고 The good chef는 KBS에서 진행되는 이벤트성 디너로, 유명 셰프를 초대해 디너를 선보이며 요리 시연과 대담까지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권우중 셰프를 초청할 계획이라는 얘기를 듣고 작년 말부터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목 빠지게 기다리던 공지가 드디어 되었다. 마침 결혼기념일 날이었다. 결혼기념일 식사 겸으로 방문하면 딱 되겠다 싶었다. 앞뒤가 잘 맞는 느낌이었다. 단 한 가지, 임신 초기라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공지가 났을 때는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직후였다. 그땐 아직 몸의 변화가 없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향후 컨디션이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와인 페어링(각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함께 제공하는 것)을 할 수 없는 것도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신청을 했다.


IMG_0310.JPG The good chef 권우중 셰프 편의 프로그램 표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컨디션이 점차 안 좋아졌다. 쉽게 피곤해졌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숨이 막혔다. 입덧도 점차 심해지고 있었다. 좋아하는 화덕 피자집에 갔다가 피자는 손도 못 대고 나온 적도 있었다. 행사가 가까워질수록 걱정이 커졌다. 음식을 먹는 것도, 사람 많은 곳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도 엄두가 안 났다. 심지어 당일에는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낼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 감행하기로 했다. 못 먹으면 남편이 더 많이 먹고, 정 피곤하면 중간에 나오면 되었다. 포기할 순 없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의자가 좀 딱딱했지만 코트를 깔고 앉으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코스는 대게전으로 시작했다. 대게전을 먹기 직전에 셰프의 간단한 요리 시연이 있어서 음식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대게살은 직접 쪄낸 후 손으로 일일이 발라냈고, 맛과 식감을 더해주는 배추도 진액이 나지 말라고 살짝 데쳐내서 썼다고 한다. 생강의 향은 쓰되 전체적인 맛을 해치지 않게 생강채는 물에 헹궈서 넣었고, 전을 뭉쳐주는 역할을 하는 계란은 대게의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해 흰자만 썼다고 한다. 소스, 가니쉬(고명), 조리법에도 엄청난 노력들이 들어가 있었다.


IMG_0313.JPG 첫 번째 요리 대게전. 맛과 향이 부드러웠던 대게전은 식감까지 녹아내렸다.


하지만, 나는 음식의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한쪽만 먹고 나머지 한쪽은 남편에게 넘겼다. 거슬리는 냄새가 있는 것도, 맛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권숙수에서 대게전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굉장히 맛있게 먹었다. 맛을 잘 느낄 수 없었고, 먹히지가 않았다. 그 이후의 메뉴들도 마찬가지였다. 와인을 함께 하지 않아 입이 꺼끌한가 싶어 탄산수를 곁들여봤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먹을 수 있는 게 어디냐 싶었다. 입덧이 더 심했더라면 여기 앉아있지도 못했다. 그래도 컨디션이 좋은 축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즐길 수 있을 만큼만 즐기자!' 싶었다. 그때부터 부담 없이 음식을 받았다.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으면서도 음식에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맛은 좀 못 느꼈을지 몰라도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코스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음식 하나하나의 맛은 덜 느꼈지만 그래서 오히려 코스 전체의 흐름을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 대게전의 부드러운 맛과 식감으로 시작한 코스는, 부드러움을 테마로 유지했다. 하지만 조금씩 변주를 주어 지루하지 않게 했다. 두 번째 요리 트러플 콩국수에서는 아삭한 감자가, 세 번째 요리 전복구이에선 진한 간장 소스와 곁들인 감태죽의 씁쓸함이 포인트가 되었다. 두 번째에서는 작은 가니쉬로, 세 번째에서는 소스와 곁들임 음식으로 변화의 범주를 점차 키워 나가더니 메인 요리에선 감칠맛이 폭발했다. 잘 구운 채끝 구이만 해도 강력한 데 거기에 감칠맛 넘치는 흑임자 두부장과 식혜소스를 곁들였다. 강렬함은 디저트까지 이어졌다. 계피와 생강을 활용한 디저트는 강한 감칠맛을 더 강하게 눌러 내렸다. 멋진 구성이었다. 요즘의 한식은 달고 매움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번 코스는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한식의 맛을 잘 보여주었다.


IMG_0316.JPG 세 번째 요리 전복구이. 접시를 흔들면 전복이 그 두세 배의 진폭으로 부르르 떨릴 만큼 부드럽게 익었다.
IMG_0323.JPG 메인 요리 채끝 구이


입덧이 심해지면서 나는 많이 침체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모든 엄마가 겪어내는 일이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모두가 해낸다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 거였다. 벌써부터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해낼지 갑갑했다. 하지만 조금은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뭘 좀 먹었더니 긍정적이 되었다. 역시 사람은 잘 먹어야 하나보다.) 입덧을 하다가도 가끔은 덜한 때가 있고, 맛은 못 느껴도 새로운 방식으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볕 드는 구석은 있다. 가끔만 볕이 들면 나머지는 시간이 도와주지 않을까.


IMG_0325.JPG 디저트 계강바. 전통 떡인 계강떡을 변형한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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