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임신일기
우즈베키스탄에 홀로 여행을 갔다가 심하게 앓았던 적이 있다. 어찌나 심하게 앓았던지 병원도 못 가서 호텔을 통해 의사 왕진을 요청할 정도였다. 타지에서 홀로 끙끙 앓는 내가 불쌍했던지 나이 많은 호텔 여주인이 식사를 챙겨주었다. 하얗게 끓인 죽이었다. 아파서 정신없고 감동에 겨운 와중에도 이 머나먼 땅에서도 아플 때는 흰 죽을 먹는다는 게 신기했다. 인도에서도 같은 경험을 했다. 남인도의 한 시골 마을이었는데 아픈 어머니를 위해 흰 죽을 끓이는 현지인을 보면서 신기했던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죽은 세계 각지에서 아주 보편적인 음식이었다. 생각해보면 죽은 쌀과 물만 있으면 만들 수 있고 조리법도 복잡하지 않으니, 쌀이 나는 국가에서는 죽이라는 음식을 생각해 내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다. 실제로 쌀이 나는 거의 모든 국가에는 죽이 있으며, 특히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에서는 아주 보편적인 음식이다. 우리나라에도 전복죽, 소고기죽 등 다양한 죽 종류가 있듯 외국에도 국가마다 쓰는 부재료나 향신료는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 재료는 쌀과 물로 동일하다. 소화가 잘되고 부담이 없어 죽을 먹는 어느 나라에서나 아침식사나 환자식으로 주로 먹는다.
며칠 동안 죽만 먹었더니 괜히 위와 같은 죽에 대한 이런저런 기억이 떠올랐다. 배탈 때문에 며칠 동안 꼼짝없이 죽만 먹고 있다. 한동안 입덧 때문에 매운 음식, 밀가루 음식 등을 많이 먹었더니 그만 배탈이 났다. 자극적인 음식 위주로 먹긴 했지만 탈이 날 정도는 아니었는데, 임신을 하니 장도 약해진 모양이다. 밥조차 부담스러우니 죽 밖에 먹을 게 없다. 배탈은 났지, 죽만 먹지, 기운이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덧 때문에 쌀로 만든 음식은 엄두도 못 냈다. 쿰쿰한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배탈이 나면서 입덧은 조금 나아져서, 좀 거북하긴 했지만 죽을 먹을 수 있었다. 아니었으면 배탈에 입덧에 진퇴양난일 뻔했다.
실은 죽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게 있어 죽과 아픔의 연결고리가 너무 강한 탓이다. 어려서부터 아프면 죽을 먹었더니, 나와 죽과 아픔의 관계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 개와 종과 밥의 관계처럼 되고 말았다. 개한테 밥을 줄 때마다 종을 치면 나중에는 종만 쳐도 개가 침을 흘리듯, 나도 아플 때마다 죽을 먹으니 나중에는 죽만 먹어도 마치 아픈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죽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아플 때뿐만 아니라 힘들거나 지칠 때에도 죽이 생각난다. 죽이 주는 힘 때문이다. 그 힘은 죽을 끓이는 순간부터 생긴다.
죽을 끓이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쌀밥을 쓰는 방식과 생쌀을 쓰는 방식이다. 쌀밥을 쓰면 이미 조리된 쌀밥에 물을 넣어 끓이기만 하면 돼서 쉽고 빠르지만 상대적으로 맛이 떨어진다. 생쌀을 쓰면 그 반대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번거롭지만 그만큼 더 맛있다. 우리 집은 항상 생쌀로 죽을 끓였는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생쌀을 물에 불렸다가,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생쌀을 달달 볶는다. 생쌀이 하얗게 익어가면 물을 넣고 쌀알이 푹 익을 때까지 끓인다. 쌀이 솥 바닥에 눌어붙을 수 있으니 끓는 내내 저어줘야 한다. 쌀알이 뭉그러질 때 즈음이 되면, 참기름과 소금 간을 조금 해서 먹는다.
방법은 어렵지 않지만 참 번거롭다. 게다가 죽을 끓이는 사람은 보통 죽을 먹지 않는다. 자기가 먹지도 않을 음식을 뜨거운 김을 쐬어가며 애써 끓이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위해 그렇게 애써줬다는 사실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 따뜻함은 죽을 먹으면 더더욱 배가된다. 갓 만든 죽을 한 숟갈 떠 넣으면, 따뜻한 죽의 기운이 온몸에 쭈욱 퍼진다. 죽의 묵직한 따뜻함은 마치 내 몸속의 에너지와 기운처럼 느껴진다. 죽을 끓이는 과정에서 느낀 따뜻함과 몸속으로 들어온 따뜻한 기운 때문에 죽을 먹으면 힘이 난다.
요즘, 그 힘이 필요했다. 배탈이 나지 않았더라도 죽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겨우 10주 차인데 벌써 지쳐버렸다. 입덧도 힘들고, 하루에 12시간을 자도 일상생활이 안될 만큼 졸렸다. 수시로 출혈이 있어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있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 힘들었다. 시작부터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나가나 싶었다. 출산과 육아, 앞으로는 더 힘들 텐데. 그 와중에 배탈까지 나니 울고 싶었다.
다행히 죽이 위력을 발휘했다. 죽을 먹으니 이번에도 따뜻해졌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반짝 힘이 나는 것도 같다. 죽의 따뜻한 기운 덕에 생긴 가짜 힘은 금세 사라지지만 그래도 감사함이 남는다. 죽을 끓여준 가족들에 감사하고, 잠시라도 기운 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잠깐잠깐 힘을 내다보면 결국엔 정말 힘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괜찮을 것이다. 다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