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이야기의 조건

어떤 날의 감상

by 솜대리




아무리 믿을만한 사람에게 추천받거나 신중하게 골라도,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두 권 연속으로 정말 좋은 책을 만났다.


한 권은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라는 책이다. 권위 있는 뇌과학자가 뇌종양에 걸리고 그 영향으로 극심한 정신질환을 겪다가 극적으로 회복한 이야기다. 저자는 심지어 염색약을 바른 채로 조깅을 나가 그 염색약이 전신에 흘러내리는데, 그 모습을 스스로 보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이 정도의 정신질환을 겪고 정상상태로 돌아오는 일은 드물다. 때문에 저자가 얘기하는 당시의 본인의 감정과 인지상태는 매우 흥미롭다. 게다가 저자가 뇌과학자인 덕에, 뇌와 정신질환에 대한 보다 깊은 이야기도 덧붙여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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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 권은 '힐빌리의 노래'다. 힐빌리란 백인 저소득 계층을 뜻하는 단어인데, 전형적인 힐빌리 가족에서 자라난 저자가 백인 주류사회에 편입한 과정을 그린다. (마약중독자 어머니와 셀 수 없이 많은 새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저자는 예일대 로스쿨을 나와 법원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실리콘밸리에서 자기 회사를 운영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가족, 나아가 자신이 속했던 힐빌리들의 세상에 대해 세세하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힐빌리들이 얼마나 주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멀어지고 있는지, 미국의 저소득층 지원 정책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감이 있는지도 서술한다. 힐빌리들은 트럼프의 주요 지지 계층으로 손꼽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그들이 어떻게 트럼프를 지지하게 되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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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과 미국 저소득층, 두 책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책을 돌아보니 좋다고 생각한 이유가 비슷했다. 우선 누구나 관심 있을 법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정신질환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노환이나 질환을 통해 누구나 당면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미국 저소득 계층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당선 이후 계속 화젯거리가 되어왔고, 우리 사회에서도 저소득층과 그들에 대한 복지 정책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두 번째는 그 이야기를 가장 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저자만큼 심각한 이상을 겪고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게다가 저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기까지 하다. 힐빌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힐빌리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할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저자처럼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이끌어나가는 주류사회의 일원이 된 힐빌리는 거의 전무하다. 그의 집안이나 출신 동네에서는 일반 대학을 나온 사람도 거의 없다. 저자 그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극복해 보았고 또 주류사회의 분위기도 알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누구나 관심을 가질법한 주제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니, 강렬할 수밖에 없다.


두 개의 강렬한 이야기들을 접하고 나서 독자로써는 무척 행복했지만, 동시에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평범한 집안에서 무던하게 자라 소시민으로 살고 있다. 앞으로도 강렬한 이야기가 될 엄청난 경험을 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떤 작가는 책을 찍을 때마다 자신의 글이 그 책을 찍느라 희생된 나무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아직 나무를 해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소비시킨 만큼의 의미를 주어야 할 것이다. 강렬한 경험에서 기인한 이야기의 힘이 없다면, 이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할 텐데, 내게 그만한 힘이 있을까? 있게 될 수 있을까? 오로지 확실한 건,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뿐이다. 쓸 수밖에 없으니 쓰기 위해선 더 열심히 써야 한다. 지금 내겐 그 수밖에 없다.




+) 두 책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서평은, 보다 편하게 올리고 싶은 글들을 올리고 있는 나의 네이버 블로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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