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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Apr 08. 2024

워싱턴 DC 벚꽃 달리기 (벚꽃 없음 주의)_24040

미국여행 234일 차




와 난 미국 와서 그렇게 사람 많이 모인 건 처음 봤다. 달리기 참여할 때 추첨을 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신청하는구나 싶긴 했지만, 30분에 걸쳐서 여러 코스에 출전하는 사람들이 출발하는데 한 줄에 20명은 설 만한 넓이의 시작점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달려 나갔다.


아직 시작점까지 삼백미터는 족히  남았는데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우리는 예약을 뒤늦게 해서 경기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호텔을 잡았는데도 아침에 로비에 대회 번호표를 붙인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길거리에는 더 했고. 우리는 아이가 있어서 우버를 타고 갔는데 10불이면 가는 거리가 24불이나 들기도 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축제 분위기가 물씬했고, 오늘 오랜만에 날씨도 좋았다. 아침 7시까지는 대회장에 오느라 바빴고, 남편은 막판에 준비 운동 대신 아이를 안고 시작점으로 달려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남편과 남편 친구의 출발을 응원하고 나서도 아이는 15분은 펜스에 붙어 달리기 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원래는 추워서 20분 거리의 카페라도 가야 하나 싶었는데, 날이 포근해서 시작점인 워싱턴 기념탑 옆에서 종이도 접고 뒹굴거리며 놀았다.


저 자리서 한 시간 가까이 뒹굴뒹굴


10마일 짜리라 남편은 1시간 11분 정도 후에 들어왔다. 예상 도착 시점 5분 전에는 결승점으로 이동했는데, 5분 차이가 생각보다 엄청 큰걸 알 수 있었다 ㅋㅋ 남편도 상위 10% 정도 성적은 되는 것 같은데, 5분 앞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사회자가 이름도 불러줄 정도로 드물었다. 별로 힘들어 보이지도 않고 기계처럼 훅훅 뛰어 들어왔다.


남편은 어제도 유모차 끌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아침에도 애를 안고 뛰더니, 평소보다 성적이 안 나온 것 같았다. 이럴 줄 알고 안 와도 된다고 한 건가 ㅋㅋ 그래도 사람이 이렇게 많은 대회는 처음이라 또 배운 게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애 데리고 일박 이일로 멀리 따라와서 아침부터 움직이는 게 버겁긴 했지만, 남편이 달리기 대회를 참여하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게 처음이고 그걸 아이한테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


아이 덕분에 우리가 좋은 추억도 많이 쌓았다. 아빠가 올 때가 되었다고 하자 까치발을 들고 펜스 너머로 어떻게든 눈을 내밀려고 노력하거나, 펜스 앞의 현수막을 살짝 밀어 그 틈으로 어떻게든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가끔 기억날 것 같다. (결국 내가 들어서 보여줘야 했지만 ㅎㅎ) 아빠가 들어와서 한숨 돌린 후 먹을 걸 찾자, 방금 자기가 먹고 싶어 꺼내든 견과류를 아빠에게 먼저 내밀던 모습을 아빠는 못 잊을 것 같다.


아빠가 보고 싶은 어린이 ㅎㅎ


경기장 주변이 벚꽃 명소였는데, 인근 거리의 연방 정부 건물들에 미국과 일본 국기들이 함께 내 걸려 있었다. 벚꽃들 자체도 1912년 일본에서 선물 받은 거라더니, 이 시즌마다 일본과의 친교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모양이었다. 어제 내셔널 갤러리 앞에서도 미국인들과 일본인들이 함께 일본 전통 북 치기(?) 공연을 함께 하더니. 미국과 일본이 엄청난 우방이라는 걸 새삼 실감하는 계기였다. 이 축제에 참여하는 이 많은 인파들도 같은 걸 느끼겠지. 문화의 힘을 실감하는 계기였다.


공연하는 사람들이 다들 엄청 즐거워 보여서 또 인상 깊었다


벚꽃이 폈으면 진짜 예뻤을 것 같았다. 엄청 큰 호수 변에 오래된 큰 벚꽃 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드문드문 전통적인 양식으로 지은 하얀색 건물들(링컨 기념관 등등)이 보였다. 여의도 벚꽃 뷰랑 비슷할 것 같았다 ㅋㅋ 아쉬워하는 내게 남편이 ‘나중에 여의도 벚꽃을  보면 되지’라고 했다. 번잡한데 절대 안 가는 남편이 과연… 일부러 여기 포스팅에 그 말을 남겨둔다. 꼭 가는 거다 ㅋㅋ 아무튼 벚꽃은 없지만 벚꽃 축제라 사람들은 득실득실했고, 사람들은 벚꽃 대신 튤립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ㅎㅎ 단체로 기후 변화에 당했다. 뭐 우리가 원인 제공자니 할 말은 없다. ㅠㅠ ㅎㅎ


대회를 마치고는 호텔에 들러 씻고 체크아웃 후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조지타운 근처에 있었는데, 의외로 그쪽이 가볼 만했다. 조지타운에서 일하는 남편 친구 아내에 따르면, 거기가 전통적으로 올드 머니들이 사는 동네로 동네가 워낙 예뻐서 방문객이 많은데 사는 사람들의 반대로 지하철도 못 들어서고 있다고 (!!) 했다. 지하철이 들어서면 방문자들이 더 많아질 거라고 반대한다고. (!!!)


이런 집이나 상가들이 이어져 있다


지하철이 들어서는 걸 반대할 만큼의 부자 동네라 그런지 엄청 깔끔하고 예뻤다. 프린스턴도 참 고풍스럽고 깔끔하고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도 그곳이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작은 유럽식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고 당연히 조경도 잘되어 있었다. 강을 접하고 있어서 오히려 더 예쁘기도 했다. 관광하러 올 생각은 못했을 것 같은데, 로컬 덕분에 구경 잘했다.


이런 강변에 접해있고


식당은 Founding farmers라고 팜투테이블 (농장 직송 재료를 사용하는 것)로 유명한 곳이었다. 주말브런치는 뷔페식으로 운영한다고 하고 있었다. 뷔페를 딱히 선호하지 않는 나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메뉴가 한정적이고 맛도 다 평균 이상은 됐다. 통유리에 강이 보이는 뷰도 좋았고. 인기 있을 법했다.


분위기 좋고


돌아오는 데는 차가 더 막혀서 4시간이 꼬박 걸렸다. 동영상을 많이 보여주긴 했지만, 졸기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 아이는 잘 와주었다. 비록 벚꽃은 못 봤지만 소중한 추억들도 쌓고, 저번에 못 가본 장소들과 맛집들도 가보고 즐거웠다. 이제 DC는 다시 안 가도 될 것 같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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