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272일 차
미국 졸업식은 (1) Class Day (단과대 졸업식)과 (2) Graduation (대학 전체 졸업식)으로 나뉜다. 미국 학생들은 각각 무대로 나가서 학장에게 학위를 수여받는 (1)을 더 중시하는 것 같지만, 한국 대학의 졸업식이나 우리가 유튜브로 보는 졸업식 영상은 대개 (2)다. 그리고 이번에 컬럼비아에서 취소한 행사도 (2)고. 그 유명한 컬럼비아 Graduation의 ‘Empire State of Mind’ 떼창도 경험하고 싶었고, 유명 인사의 졸업 연설도 듣고 싶었는데 못내 아쉬웠다.
취소된 행사를 두고 학부모 반대 서명 운동이 있을 만큼 반향이 있었다. 대학에선 그걸 의식해서인지 Convocation이라 지칭한 학생들 행사를 벌였다. Graduation이 취소된 지 며칠 후, Graduation 날짜가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공지된 이 행사는 학생에 의한 행사고 음악, 춤 등이 포함된 행사라고 했다.
졸업식을 할 수 있도록 시위대를 체포하고 나선, 졸업식은 취소하고, 총장이나 고위직들은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끼리의 행사는 진행한다니. 그야말로 아무 말이나 하면서 그때 그때 상황만 기피하는 게 눈에 뻔했다. ㅎㅎ 상황을 겪으면 겪을수록 우리나라만 이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안심해야 할지 이곳도 이런 상황이란 데 절망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 가는 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차피 캠퍼스 바로 앞에 사니 한번 가보는데, 진짜 개판이었다. 지금 캠퍼스 게이트가 한정적으로 오픈된 상태고, 어느 문이 개방된다고 행사 공지에 쓰여 있었는데 막상 개방된 문은 공지와 달랐다. 헷갈려서 닫힌 문 앞의 시큐리티에게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었더니 눈도 안 마주치고 말도 안 하고 방향만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가리킨 곳은 캠퍼스 입구가 아니라 저널리즘 스쿨 Class day 입구였다. 두 번을 더 헛걸음하고 간신히 찾은 입구에서는 이번에는 저널리즘 스쿨 Class Day를 가는 듯한 가족들이 어안이 벙벙하게 서 있었고, 시큐리티는 어디로 가라고 혹은 모른다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은 여기 못 들어가니까 가라고 짜증만 내고 있었다.
들어가서는 더 난리였다. 이번 행사는 취소된 Graduation을 신청했더라도 다시 신청하라고 해서 신청하고 컨펌 넘버를 받았는데, 입장할 땐 취소된 Graduation 행사의 입장 QR코드를 달라고 했다. 다들 한 달도 더 전에 받은 코드를 찾느라고 패닉인데, 직원들은 또 QR 리더기가 작동 안 하니 잘 줄 서서 기다리라고 짜증 내고. 이건 행사가 아니라 시큐리티와 직원들의 짜증판이었다. ㅎㅎ
간신히 들어가 보니 나는 모르지만 아이들은 아는 듯한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행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우연히 만난 동기에게 물어보니 아침에 교수도 아니고 직원이 하나 나와서 그냥 오프닝 문구를 했고, 그 이후로는 가수들이 몇 나왔다고 했다. 동네 축제보다 허접한 느낌이었다. 졸업생들만 입장이 된다더니 어떤 동기는 착각해서 부모님을 모시고 들어왔다. 워낙 공지가 시시 때때로 바뀌니 시큐리티들도 헷갈렸나 보다.
전날 밤에 또 추가된 공지 중에는 블록 파티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캠퍼스 옆 한 street의 차량진입을 막고 푸드 트럭들을 모았다는 것이다. 구경삼아 가봤더니 음악이 나오고 길 옆에 푸드 트럭들이 수도 없이 늘어섰다. 그리고 그 모든 음식들이 공짜였다. 여기는 물가가 비싸 그런지 무료 음식에 사람들이 우리나라 보다 더 반갑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민심 돌리기 차원에서 마련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대학 입장에서는 갑자기 공지하면 참석자도 많지 않아, 졸업식 때 전체 학생과 손님들에게 간단히 케이터링 하는 것보단 적게 먹혔을 것이다. 나도 다른 이들도 그 자리에서 먹고 몇 개 더 받아 싸가고 했다.
잘 먹었다. 잘 먹기는 했는데, 못내 못마땅하다. 요즘 학교에 프로 불편러가 된 것 같아 좀 그렇지만, 학교가 나를 이렇게 만든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