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56일 차
드디어 추수감사절 당일. 딸내미 친구 파이퍼네에 초대받아 3시쯤 그 집으로 갔다. 우리 말고도 한 커플, 한 가족이 더 와서 진짜 명절같이 북적북적했다.
놀다가 먹다가 놀다가 디저트 먹다가 놀다가 하면서 장장 4시간 반을 놀았다. 둘째까지 데리고 갔는데 그렇게 오래 잘 놀고 올 줄 몰랐다. 첫째는 파이퍼랑 노느라고 먹을 때 말고는 보이지도 않았고 ㅋㅋ
작년에도 추수감사절에 다른 집에 초대받았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민 1세대 가정이었고 이번에는 미국 미국인 가정이라 그런지, 올해 먹은 추수감사절 음식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가족에서 전해 내려온 레시피로 만든 음식이 많았다. 예를 들어 크랜베리 소스는 요새 시판을 많이 먹는데, 그건 물컹하고 달기만 해서 나는 별로 안 좋아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파이퍼 친가의 레시피로 신선한 크랜베리를 다지고 오렌지류와 섞어서 아삭하고 상큼했다.
스터핑도 요새는 빵에 육수에 채소 다진걸 터키에 넣지도 않고 따로 구워 딱히 별 맛이 없는데, 다른 집에서 해 가지고 온 이번 스터핑은 콘브레드를 넣어서 부서지는 식감이 좋았고.
빵이나 주스도 각각 파이퍼의 외가와 친가에서 전해져 오는 레시피라는데, 그렇게 대대로 전해지는 레시피는 대대로 전해지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미국에 온 후로는 유독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어려웠다. 영어는 둘째 치더라도, 나는 여기 사람들이 아는 문화적 맥락이나 사회적 이슈를 모를 때가 많다.
그런데 나도 이제 여기 생활이 좀 돼서 그런지, 그런 부분에서 좀 나아진 느낌이 들었다. 연예인이나 이북 플랫폼 얘기를 하는데 내가 아는 얘기여서 함께 대화하는 게 훨씬 수월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도 미국 뉴스나 유명 소셜 미디어 계정은 챙겨봐야겠다 싶었다.
늘어져서 배부르게 잘 먹고 놀고 나니 명절을 보낸 느낌이었다.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명절을 보낸 느낌이라니. 진짜 잘 보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