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73일 차
문득 자연사 박물관을 한 번도 애 없이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거기야 말로 유모차 밀고 산책 나가고 빵 사러 가는 우리 동네인데. 그래서 오늘 아이 낮잠 시간에 후다닥 다녀왔다.
일반 전시관 중에는 공룡 화석이 있는 공룡관이 유명하지만, 거긴 아이랑 하도 자주 가서 혼자 차분하게 본대도 새롭지 않을 것 같았다. 나보다 훨씬 자연사 박물관을 많이 가본 남편에게 물어보니, 자기라면 인류관을 간다기에 나도 그리로 향했다.
자연사 박물관은 워낙 인종 차별 논란이 많았던 곳이다. 애초에 설립자나 초기 운영자들이 위대한 백인이 (미개한 사람들로부터) 멋진 자연을 보존해 내야 한다는 이념을 가지고 있었고, 올해까지도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에 대한 전시관이 있었다.
그래서 인류관도 차별적인 내용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그런 논란 이후에 세워진 전시관이라 그런지 굉장히 조심하는 기색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호모 사피엔스고 피부색이 다른 건 햇빛에 적응하는 과정이었음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었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대해 특별하지 않은 것도 강조하고 있었고. 그런 조심하는 기색을 읽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재밌었다
(이런 내용은 뉴욕 박물관 수업에서 배웠다. 며칠 전 MET에 갔을 때도, 굉장히 간결하게 적혀있던 작품 라벨들이 설명조로 바뀐 걸 보며 ‘관리자가 바뀌면서 라벨 형식도 바꾼다더니 벌써 다 해놨네’ 하면서 흥미로워했었다. 만삭에 학점도 넘치는데 굳이 들을 필요가 있을까 고민하다 들었는데 듣길 잘했다. 덕분에 박물관에 가는 게 더 즐거워졌다.)
물론 전시도 알찼다. 원숭이류와 인간을 비교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인간은 엄지가 더 발달해서 물건을 잘 잡는다 등등), 인류의 조상들의 소개하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 하면 뼈 모형도 전시해 놓고 피부까지 재현한 모형도 함께 놓고 설명도 알차게 되어 있어 좋았다.
시간만 있으면 자연사 박물관 도장 깨기를 하려고 했는데 못했다. 딸내미도 올여름부터는 여기 서머캠프 갈 수 있는 나이인데 ㅎㅎ 아쉬운 걸 생각 안 하려 해도 자꾸 생각난다.
전시관 앞에는 (몰랐지만 유명하다는) 종이접기 오나먼트들이 달린 크리스마스트리도 전시되어 있었다. 공룡 화석, 날 다람쥐 등등 오만 동물 모형이 달려있는데 진짜 볼만했다. 연휴 때 딸내미를 데리고 이거라도 한 번 더 보러 올 거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