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중년 임원들은 어떻게 조직을 떠나고, 어떻게 적응하는가
"저녁에 집에 와서 아빠가 좀 쉬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될 거 같다 하니, 우리 딸내미가 막 울더라고요. '너 왜 우냐?' 그랬더니, '아빠가 퇴직하면 자기 학원을 못 다니느냐, 집 이사 가야 되냐'고 하더군요. 그 때가 제일 가슴 아프고 마음 아팠죠." (대기업 상무 B씨)
그동안 고생 많았네
"출장 갔다가 공항에 도착해서 전화기 켰는데 딱 전화가 오더라고요. 우리는 전달받으면 바로 그 시간부터 아웃이에요. 직원에게 그 자리에서 법인카드 꺼내주고…, 짐은 직원이 나중에 부쳐주더라고요. 많이들 그렇게 해요." (대기업 상무 A씨). 중년기에, 소위 우리가 회사에서 잘렸다고 표현하는, 갑작스럽고 강요된 퇴직 장면은 말 그대로 드라마틱하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순간적인 놀라움을 넘어 듣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지위·역할 한번에 잃어버리고
화려했던 인간 관계도 무너져
직장 성공만 보고 내달린 인생
명함의 상실은 정체성의 상실
처량하고 부끄러운 내 신세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나. 좋은 학벌에 좋은 직장에서 소위 잘나가던 사람일수록 갑작스러운 퇴직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30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통해 쟁취한, 성공과 성취의 상징인 지위와 역할을 잃어버렸다. 그 지위를 통해 누릴 수 있었던 자신감과 통제감 그리고 다양하고 화려한 인간관계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 과정에서 '막 화가 나고 밤에 자주 깨거나 울화통이 터져서 집에 있을 수 없는' 분노, 고통, 원망, 배신감을 경험한다.
또 이들에게 직장생활에서 성공이 유능함의 상징이었다면, 퇴직은 동전의 양면처럼 경쟁에서 패배와 무능함을 의미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괜찮은 삶을 살았음에도 강요된 퇴직 앞에서 이들은 한없이 수치스러워한다. 그 결과 십수 년을 함께 일했던 직원들조차 모르게 도망치듯 조직을 떠난다. 출근 시간 이후 아파트에서 만나는 주민의 시선에도 괜히 위축되고, 대낮 마트에서도 주변사람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낀다. 친한 친구, 심지어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에게도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자신의 초라해진 모습을 남에게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직장에서의 성공이 곧 인생의 성공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들에게 임원이란 아무나 될 수 없는, 선택 받은 자들의 몫으로 자부심의 근원이자 자신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정체성이기도 했다. 그런 그들에게 명함의 상실은 정체성의 상실, 곧 자기 자신의 상실을 의미했다.
그래서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그저 평범한 동네 아저씨가 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다가, 여기서 백팩 메고…. 남들이 나 보면 뭐라 그럴까, 참 처량한 거야." (중견기업 부사장 C씨). 퇴직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사건이다.
퇴직 이후 가정도 너무 낯선 공간으로 돌변한다. 남편과 아내 모두, 긴 시간 동안 하루 종일 부대껴 본 경험이 없었기에, 그 어색함이 민망하고 불편하다. 삼시 세끼 해결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무능한 남편을 둔 아내에게도, 그런 아내의 눈치를 봐야하는 남편에게도 이 상황은 쉽지 않다. 말은 쉬어도 된다고 하지만 행동이나 표정은 짜증나 보이는,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은 가족들의 작고 사소한 말과 행동에서도 서운함을 느낀다.
권토중래를 꿈꾸지만
퇴직자들의 가장 핵심적인 관심사이자 기대는 당연히 재취업이다. 과거만큼 높은 지위, 과거와 비슷한 안정적인 수입을 하루빨리 회복함으로써 나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주변에 증명하고 싶어 한다. "좋은 자리 구해서 보란 듯이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대기업 상무 C씨). 이들은 권토중래를 꿈꾸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잘나가던 과거의 나를 회복하고 싶어할수록 현실의 나는 초라해 보인다. 여전히 조직에 남아 그럴듯한 지위와 역할을 가진 동료들과도 비교된다. 그러나 이런 비교는 오히려 정확한 현실 인식과 현실 수용을 더 어렵게 만든다. "난 아직도 현역에 대한 의지도 있고, 여전히 기회가 있다고 보거든요." (대기업상무 D씨). 재취업 가능성이 희박한 현실을 고려할 때 퇴직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이들의 기대는 그저 선언적인 의지의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아울러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후배들이나 지인들에게 연락해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나를 피하는 건가? 그럴 리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치지만 그래도 망설여진다. 이들은 서서히 사회적 관계에서 소외당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피하고 숨으면서 결국 소외되고 만다. 퇴직은 이들을 소리 내 울지도 못하는 중 년 남성의 모습으로 남게 했다.
퇴직 후 심리적 변화와 적응 과정에 대한 스토리는 '퇴직 통보 받았습니다(#2)'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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