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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직장인 스토리 #05.퇴직 통보 받았습니다(2)

한국 사회 중년 임원들은 어떻게 조직을 떠나고, 어떻게 적응하는가

50대 직장인 스토리 #05.퇴직 통보 받았습니다(1)

불안 초조했다 분노하고 좌절
대부분의 퇴직자가 겪는 심리
길게는 2년도 가는 이런 혼란
자기답게 사는 법 먼저 배워야


퇴직 이후 나타나는 심리 변화 

  어느 날 느닷없이 닥친 퇴직을 경험한 중년들은 대부분 유사한 심리적 경험을 했다. 모두들 '나는 특별한 경우'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이들은 퇴직 후 인지적 마비, 정당화, 의기소침, 불안·초조, 분노, 좌절, 패배감, 수용, 희망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심리적 변화과정을 거친다. 


  첫 단계는 인지적 마비다. 인지적 마비는 퇴직한 첫날 아침 갈 곳이 없어진 낯선 경험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진 일상 속에서, 존재감이 사라져 텅 비어 버린 시간을 보내면서 극심한 충격에 휩싸여 머리가 멍해지는 듯한 인지적 마비 상태를 경험한다. 이어 시간이 흐르면서 '그동안 고생했으니 잠시 쉬어간다'와 같은 정당화와 이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무 할 일 없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고 창피하며 의기소침해진다.


  반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재취업이나 창업을 시도하지만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힌다. 이러한 반복된 실패는 초조함을 더하고 그런 초조함은 '조직을 위해 내 청춘을 바쳤는데 그놈들이 나를…' 과 같은 분노를 야기한다. "은퇴해서 한 1년 반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돼요. 자기가 좋았을 때를 회상하면서, 직장 생활에서 승승장구할 때, 자꾸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거죠." (대기업 상무 E씨)



  이러한 과정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2년 이상 지속된다. 그리고 정말 중대한 기로는 퇴직 이후 2~3년의 시간이 경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 시기에 좌절하고 패배감에 빠지는지, 아니면 서서히 혼란을 극복하고 수용과 희망의 단계로 나아가는지 갈림길에 서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자기답게 사는 법을 이해하고 배우는지 여부다. 자기 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잘했던 것, 좋아했던 것 등을 찾아 열심히 그것을 추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이 열릴 때까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계속 두드리는 거죠." (대기업 상무 F씨)


  당장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고 애쓰고, 상당한 인내심과 겸손함으로 하나의 열정으로 성숙해질 때까지 꾸준히 해보는 게 중요하다. 자기답게 사는 법은 단순히 말이나 생각으로 찾아지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이 보는 퇴직 후 적응 

  심리학자 입장에서 퇴직 후 적응을 위해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을 제시하자면, 이 모든 일에는 시간의 시련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 잃어버린 명함과 역할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퇴직자의 삶은 기본적으로 불안을 동반한다. 그래서 불안정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안고 살아갈 수 있는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은 어쩔 수 없이 최소한 2년 이상, 적어도 3∼4년의 물리적인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조급함을 조절해 나가는 것이 출발점이다.


  또 새로운 타이틀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낯설지만 스스로 삶의 의미를 자문하고, 새로운 자극을 위한 에너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인생의 전환점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등 새로운 후반전의 길목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활동 또는 내가 선택한 활동들을 탐색해야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역할과 정체성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내가 누구인데'라는 쓸데없는 자만심과 허영심을 버려야 한다. 과거 자신의 명함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현재 내가 혼자 힘으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스스로 세상에 증명해야 한다. 퇴직과 더불어 경기의 규칙도 바뀌었다. 세상 인심이 그렇다. 겸손한 마음으로 새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잠시 걸음 멈추고 더 성찰해야
쓸데없는 자만 허영심 버리고
또 다른 역할 정체성 만들어야
배우자와의 좋은 관계도 필수


  배우자와의 좋은 관계도 행복한 퇴직 생활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60년에 걸친 종단 연구를 집대성한 하버드 그랜트 연구에서도 중년 이후 삶에서 정신 건강의 제1 지표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였는데, 여기서 핵심은 그 숫자 안에 배우자가 포함돼 있는지였다. 중년기 이후 배우자와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평소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아내에게 자신의 상황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 이러한 배경이 있어야만,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큰 결정을 서로 믿으면서 할 수 있게 된다.


  퇴직했다고 위축되지 말고 꾸준히 사람을 만나고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다. '남자는 길을 잃었을 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사회언어학자 데버라 태넌의 말이다. 퇴직자들은 자신의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점점 더 높은 자기만의 벽을 쌓고 숨는다. 힘들고 외로울 때 혼자 있고 싶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누군가 함께 해야만 해법이 보인다는 무수한 심리학 연구 결과들이 있다. 그리고 기꺼이 도움을 청할 용기도 필요하다. 행복은 어디서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의 문제라고 하지 않았나. 걸어가야 할 길은 아직도 정말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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