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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직장인 스토리 #02.중년 직장인의 자화상

(이미지출처: unsplash)


“요즘 친구들하고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가 ‘언제까지 버틸래?’ 거든요. 옛날 같으면 한 시간이면 끝날 일이 반나절씩 걸린다거나, 전반적으로 업무수행 능력이 예전만 못한데 55세까지 다니고 60세 정년까지 버틴다고 버텨질까, 고민이지요.” 


“사실은 공식적인 권위가 없어졌기 때문에 후배들 입장에서는 무시해도 상관이 없는 거예요. 무시했을 때 약간의 리스크만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저 인간이 위에 누구랑 친해서 뭔 소리를 해서 나한테 피해가 돌아오지 않을까?‘ 약간의 리스크만 있는 거지. 그래서 서로 조심한다는 것뿐이죠."


조직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남자들

중년 남자들은 자신이 조직의 중심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있음을 느끼면서 뭔가 빼앗기고 잃어버린 느낌, 무시당하는 느낌, 쓸모없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업무 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걸 실감하면서 자신감도 잃어간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는데, 내 인생 이게 다인가?’ 허무하기도 하다. 이들을 더 불안하게 하는 건 퇴직한 후 특별한 일거리 없이 시간을 보내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선배들이다.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여기에 열심히 일한들 진급이 되거나 보직을 받을 것 같지도 않다. 사실 직장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는 승진과 돈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이런 기회들이 점차 사라진다. “우리보다 4~5살, 심지어 10살 어린 직원들이 파트장이 되고, 팀장, 임원 레벨이 되고 있으니까 더 올라갈 수가 없죠.” 기업들이 변화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한다거나 역동적이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젊은 리더들을 발탁하면서 차례차례 순서를 기다리던 50대들이 줄줄이 승진에서 소외되고 있다. 


 ‘직장생활 얼마 안 남았다’ 생각되니 자꾸 의욕이 떨어진다.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나갈 때까지라도 뭔가 열심히 찾아내고 새롭게 하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러나 어쩌랴.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이 안가고, 몸이 따르지 않는 것을. 이런 무력감과 귀차니즘은 임금피크에 들어가면 절정에 이른다.

 “임피에 들어가면 진급될 일도 없고, 어차피 직장생활 얼마 안 남았는데, 자꾸 귀찮아지니까, 아~요정도만 해야 되겠네...라는 생각이 들죠.” “그냥 버티는 거죠. 한 달 버티면 월급 나오는데, 어디 가서 이 월급 받겠어요.” 


이런 과정에서 간혹 후배들 눈치도 보이고 자격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 선배 일은 제대로 하나?’ ‘제대로 판단은 했나?’ 후배들이 이런 걸 의심하지 않을까 신경 쓰이기도 한다. 특히 월급루팡 같이 기성세대를 비하하는 말들을 들을 때면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다. 사실 이들 남자들도 할 말이 많다. 시키면 시키는 데로 묵묵히 참고 일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후배들 밥 사주고 술 사주며 나름 신경 쓰고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회사도 후배도 자신들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우리 입장에서는 서글픈 일이죠. 애물단지 취급받는 것 같아
자존감이 땅에 떨어진 느낌이에요.” 


때로는 경험이 방해가 되기도 해

이들의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이미 생각이 굳어 있고, 이런 생각이 잘 바뀌지 않아 적응력도 떨어진다고 느낀다. 이들도 과거에는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때로는 상대와 다퉈가면서까지 답을 찾아가곤 했었다. 그만큼 열정도 있었고, 생각도 유연하고 개방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몇 마디 서론만 들어도 머릿속에 결론이 떠오른다. ‘이건 답이 없겠네’, ‘이건 이렇게 하면 되겠네’라는 답이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오랜 직장 생활과 사회 생활 그리고 많은 업무 경험이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게 하고, 빠르게 결론을 내리게 한다. 


“얼마 전에 자산운영위원회의 전문성이 어떤지 확인해 달라고 후배가 들고 왔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하루 이틀 검토해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니거든요. 그걸 아니까 ‘그런 거 아니야, 그거 안돼’라고 했더니, 그 후배는 ‘저 선배 뭐냐, 귀찮다고 안 하려고 하냐?’ 뭐 이러는 거죠. 내가 그간의 경험을 가지고 상황판단을 해보니까 그렇게 안 해도 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됐어’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그걸 경험해보지 않은 후배들 입장에서는 ‘저 선배 귀찮으니까 안 하려고 뺀질거리는구나’ 이렇게 되는 거죠."


그걸 경험해보지 않은 후배들 입장에서는
‘저 선배 귀찮으니까 안 하려고 뺀질거리는구나’ 이렇게 되는 거죠.


이들은 업무능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고, 중요도나 가능성 측면에서 ‘왜 쓸데없는 걸 왜 저렇게 하지?’ 싶은 생각 때문에 ‘된다’ ‘안된다’ 판단을 하는 건데, 이런 과정에서 일을 안 하려고 떠넘기고 회피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며 억울해한다. 


문제는 이런 다양한 경험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거다. 세상에 대한 관심도 줄고, 호기심도 줄어든다. 더 큰 문제는 이미 결론이 정해지다보니 다른 사람 이야기가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내 의견과 다른 사람을 만나면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도대체 생각이라는 게 있는 건가?’ 싶은 마음에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토론을 해서 뭔가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귀찮고 힘들다. ‘이걸 그냥 원만히 끝낼까, 말까’, ‘어느 정도 수준에서 결론을 내릴까’, ‘어떻게 타협을 할까’라는 생각 때문에 토론을 하고 답을 찾겠다고 덤비지는 않게 된다. 


기억력도 예전만 못하다. 새로운 업무든, 새로운 지침이든, 기억도 잘 안 되고 활용하는 것도 부담이 있다. 그렇다고 매번 모른다고 하자니 자존심 상하고, 후배들 붙들고 자꾸 물어보기도 미안하다. 시간이 갈수록 비교되고 위축된다. “제가 요즘 확실하게 느끼는 게, ‘나이가 들면 집에 가야 되는 게 맞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할 일이 없어요. 직원들이 저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훨씬 더 잘 하더라고요. 그게 피부로 확실히 느껴지거든요.” 어느 순간 정신적으로나 인지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자꾸 제한이 되는 것 같다.


사실 회사도 중년의 직원들에 대해 양가적인 관점을 가진다. 이들은 열심히 일하고, 회사를 위해 희생도 할 줄 아는 신뢰할만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높은 임금에 비해 생산성은 떨어진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회사들은 여차하면 이들에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직무를 맡기면서 ‘어디 한 번 버텨봐라’는 식으로 내몰기도 한다.


 “예를 들어 평생 해왔던 일을 하면서 그 부서에서 사원 역할을 할래,
아니면 전혀 모르는 부서에 가서 새로운 업무를 할래, 선택의 기로에 서는 거지요. 나이가 먹으면 사소한 상황 변동에 대한 충격파가 커지거든요.” 


회사는 이들에게 굴욕을 참고 견디던지 아니면 나가서 고생을 하던지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당하는 본인도 괴롭고 그것을 보고 있는 후배도 모두 지옥이다. 그래서 중년 남자들은 특별한 바람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갖는다. 


임금피크에 들어가면 자존심을 더 상하게 만든다. 중요한 업무에서 배제시키거나, 급여가 줄어드는 만큼 근무시간을 단축시키기도 한다. 물론 중요하고 어려운 일을 하지 않거나 근무시간이 단축되면서 몸이 편해지고 여가 시간이 늘어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만큼 조직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잉여인력 같은 존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몸이 편한 것 이상으로 자존감이 무너지고 마음에 상처가 된다.

이렇게 일도 재미없고, 제대로 된 역할도 주어지지 않으니 회사생활도 재미없다. 그리고 생활이 전체적으로 무기력해지고 느슨해진다. 뭐라도 새로 시작해보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별로 자극도 없고 에너지도 부족하다. 뭔가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과 걱정만 남는다. 마음이 찜찜하다. 


우리는 스스로 전력투구한 것을 인생에서 돌려 받는다

우리는 스스로 전력투구한 것을 인생에서 돌려받는다. 많은 중년 남자들이 보직 박탈이나 임금피크를 대충 일하기와 저성과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사용한다. 그러면서 정년까지 조용히 지내다가 정년 이후에 새 삶을 만들겠다는 은밀한 꿈을 꾼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개인의 전투력이 약화되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 동력을 상실한다. 심리학자가 볼 때 재직 중에 한번 풀어진 인생의 근육이 정년 이후 다시 만들어지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회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계속 움직여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전력투구한 것을 인생에서 돌려받는다. 


지금이야말로 지혜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정해진 미래’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서 이 길을 걸어간 선배들을 만나 최근 어떻게 지내시는지 알아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그 선배의 삶이 짠하다면 나 또한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선배가 잘 살고 계신다면 그 비결이 무엇인지 귀담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회사를 우리에게 일거리를 주는 고객이라고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만으로도 일과 회사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잠시 그동안 나의 직장생활을 돌아보자. 회사가 급여를 주면서 일을 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무소속 상태로 자기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리고 자기 실력에 따라 흥하거나 망하는 초소형사업가로서의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 좋은 싫든 거부할 수 없는 추세다. 여러 분야에서 쌓은 업무 경험은 초소형사업가로서의 앞날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려면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피해자 심리는 위험하다. 그렇게 마음먹으면 긍정적인 변화 가능성을 봉쇄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가 나를 알아주지 않은 것이고, 따라서 내 잘못은 없으니까, 나는 피해자이고, 내가 바뀔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피해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미래의 불편함에 대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재의 불편함을 자처해야 한다. 좋은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일수록, 연봉, 학력, 명함 빼고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 보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 지금 매일의 일상을 좀 더 충실하게 채워 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 당신은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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