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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직장인 스토리 #03. 중년 남자에게 일과 직장

(이미지출처: unsplash)


"저는 놀이터라고 생각해요. 항상 나한테 즐거움을 주고 늘 새로운 거였거든요.
늘 남들이 안했던 일들을 제가 해왔기 때문에 항상 저는 제일 먼저 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늘 새로운 걸 한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당연히 후회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안 했으면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돼 있을 거예요.
후회도 있지만, 그게 또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거니까.” 

중년 남자들은 신입사원 때 ‘10년 후에 뭐될래?’, ‘20년 후에 뭐댈래?’ 라고 물어보면 ‘부장이요, 임원이요’ 대답하던 사람들이다. 내가 몸담은 직장을 평생직장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부지런히 일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다 문득 지나간 직장생활을 돌아보며 그때 왜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마흔 살 이전까지 앞만 보고 달렸던 세대

이들도 마흔 살 무렵까지는 앞만 보고 달렸다. 이때까지 인생은 마치 잘 닦여진 도로처럼 곧게 뻗은 길이라 생각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면 성공은 뒤따라 올 거라 믿었다. 그래서 더 빨리, 더 많이, 더 열심히 일했다. 남보다 앞서 나아가기 위해, 동료들 이상으로 인정받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달렸다. 회사에도 헌신하고 상사에게도 충성을 다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 때는 왜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당시는 하는 일에 매진했고 그 자체가 즐거움이라 생각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행동에는 개인의 특성보다 그를 둘러싼 상황과 배경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이들이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렸던 데에는 다 그럴만한 상황이 있었던 거다. 


현재 한국사회 중년 직장인들은 1960년대에 태어나서 현재 중년에 이른, 소위 386세대다. 이들은 후진국에서 태어났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부분의 사회생활을 보냈고, 현재는 선진국에서 중년을 보내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성장과 성취를 경험했고 그래서 이들의 자부심 또한 남다르다. 이들은 모두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며 개인보다는 국가와 사회의 발전이 우선해야 함을 학습하며 자랐다. 학급당 학생수가 가장 많던, 과밀학습이라 불리던 시절에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100만 명이 넘는 수험생이 경쟁하는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어야 했다. 또한 이들은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면서 6.10 민주항쟁과 6.29 선언, 동서냉전 종식 등의 여러 정치적 사건을 경험했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은 높은 민주주의 의식과 사회의 소외된 약자를 이해할 수 있는 세대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이 유년시절에 학습한 가족주의와 가부장적 권위주의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집단공동체를 우선시하고, 나이나 지위 같은 서열과 권위 그리고 의무와 복종을 학습했다. 그래서 군대의 선임은 십 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선임이고, 입사 선배는 퇴직 이후에도 여전히 선배다. 나이를 먹어도 선배가 후배들에게 술도 사고 밥도 사야 체면이 선다. 


집단공동체에서 희생하고 성장했던 남자들

회사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영리하게 활용했다. 그 결과 공동체의식과 집단주의적 행위는 회사라는 조직사회에서 절정을 이룬다. 즉 정규직과 평생직장이라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맨’, ‘○○인’처럼 조직에 대한 소속감과 일체감을 갖도록 적극적으로 상황을 조성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요구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건, 마치 학창시절에 공부하는 거랑 비슷했던 것 같아요.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잖아요. 그래야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선생님도 좋아하시고.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건 줄 알았어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 상사한데 인정을 받겠다, 승진을 빨리 하겠다, 이런 동기도 있었지만, 일은 당연히 열심히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의 중년 남자들은 회사에 대한 자발적 충성심과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이렇게 가지게 되었다. 


동료 그리고 선후배 사이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기업에서 인간관계는 집단공동체의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이 집단공동체는 정서적 유대감, 동질성, 일체감 같은 심리적 연대감을 가진 확대된 가족의식을 반영한다. 즉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며 정을 쌓는 것이 필요하고, 그 결과 남과 우리를 구분 짓고, 남과 구분된 우리의 결속을 강화했다. 그래서 함께 일하고, 함께 밥 먹고, 퇴근 후에도 함께 어울렸다. 또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고, 그런 희생을 묵묵히 참고 견뎠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주말이면 동료 자녀의 돌잔치에 의무방어 치르듯 참석해야 했고, 신혼부부들에겐 통과의례처럼 집들이라는 과제가 부여됐다. 봄가을이면 워크숍을 빙자한 야유회나 1박 2일 MT 같은 집단 활동도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심리는 공과 사의 구분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조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만들고 확대하려고 노력했다. 조직 내에서 학연, 지연과 같은 연고주의가 만연하고, 누가 누구와 친한지가 인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저녁에 술 먹고 사람들 많이 만나고, 거기서 내가 열외가 되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고 그런 게 있었지요.” 

집단공동체의 일원으로 생존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은 회식과 음주문화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지금도 일부 유지되고 있지만, 당시는 회식자리에 끼지 못하고, 음주문화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소위 직장 내 ‘왕따’가 되기 십상이었다. 


폭탄주를 말아 술잔을 돌리고, 파도도 탄다. 부어라 마셔라 원샷을 강요했다. 술을 그 정도 먹어서는 안취한다거나, 술은 원래 취하는 거지만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고, 마시다 보면 주량도 일취월장하는 것이라며 강요했다. 한국의 직장에서 회식과 음주문화는 상사와 부하, 선배와 후배 직원의 수직적인 관계를 재확인하는 자리이자 동료들간의 유대감과 일체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술자리의 모든 구성원들은 술에 취해야 했다. 술에 취해서 서로 흐트러진 모습을 공유함으로써 소위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함께 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강한 배타성을 가졌다. 인사는 저녁 술자리에서 결정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과장된 것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인간관계가 절대적인 조직문화에서는 그 관계망에 들어가지 못하면 소외되고 낙오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만 하는 모임과 만남이 점점 많아졌다. 이게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결합하면, 어느 정도 개인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되고, 조직에 모든 것을 바치게 된다. 


하지만 운 좋게도 당시 한국 경제는 고도성장했고, 이들에게는 충성의 대가로 달콤한 결과도 따라왔다. 회사도 성장했고, 회사의 성장과 함께 나도 승진했고, 월급봉투도 두꺼워졌다. 그 과정에서 성취감도 맛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회사에 대한 충성이 곧 나에 대한 충성이었다. 


또한 직장은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직장은 아침에 눈 뜨면 가야할 곳이다. 그곳에 가면 내 역할과 일이 기다리고 있다. 또 늘 보던 익숙한 얼굴들도 당연히 만난다. 직장은 규칙적인 일상을 제공하고 그것을 통해 안정감을 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상생활의 영역이다. 


지금 바로 휴대전화의 전화번호에서 회사와 관련된 사람들을 빼고 나면 몇 개가 남는지 세어 보시라. 물고기가 물의 소중함을 알 수 없듯이, 중년 남자들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직장은 그들 삶에서 분명한 중심축이다. 


중년 남자들에게 직장은 가장으로서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가장으로서 존재가치를 드러내는 도구이기도 하다. 특히 가부장적 사고를 가진 한국의 많은 중년 남자들은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 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역할로 여긴다. 

그래서 직장에서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고사직을 받았는데, 혼자였으면 그렇게 고민을 안했을 거예요.
그런데 처자식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들은 많은 돈을 벌어 올 때 권위를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 이는 곧 남자가 돈을 제대로 못 벌면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못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확대된다. 중년 남자들에게 일과 직장은 가장으로서 역할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도구인 셈이다. 


이러다 보니 중년 남자들에게 일과 직장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 이상이다. 또 집단공동체와 집단주의 가치를 지닌 이 남자들에게 직장에서의 성공은 곧 인생의 성공인 셈이다. 이들에게 일이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심리적 만족감의 대상이다. 일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성취감은 자신의 심리적 만족감을 높인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승진은 조직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고, 상사들에게 자신이 더 중요하고 유능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는 공식적인 인정이자 보상이다. 그래서 명함은 그 인정과 보상을 세상에 드러내는 상징물인 셈이다. 그들에게 명함은 자신의 얼굴이자 정체성이다. 단지 어느 회사의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와 성취 그리고 인정과 보상이 담긴 ‘자기 자신’인 셈이다. 


이들에게 일과 직장은 자신의 인생이고,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나는 일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태도가 이들 인생에 빛이자 어둠을 잉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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