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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직장인 스토리 #04. 남자에게도 갱년기가(1)

(이미지출처: unsplash)


“두세 해 전에 친구 부친상 조문을 갔는데, 장례식장 한 쪽에 머리가 희끗한 동네 아저씨들 한 무리가 있는 거예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전부 고등학교 동창들이더라고요.
순간 저 ‘아저씨들’이 동창들이라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세월이 정말 빠르다.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면서, 가장이자 직장인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그 덕분에 직업세계에서 어느 정도 경험과 성과도 쌓았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여전히 아쉽고 후회되는 일도 많다. 열심히 살다보면 잘 되겠지, 높은 자리까지 승진도 하고 성공도 하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더 여유 있고, 풍요로울 거라 기대도 했다. 그런데 여전히 채우지 못한 게 너무 많다. 내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그다지 여유도 없다. 딱히 내세울 만큼 뭔가 이룬 것도 없다. 그래도 ‘열심히, 부지런히 살았다‘ 그 정도다. 


더 서글픈 건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 ’나‘는 없었다. 


“하고 싶은 거 물어보면 금방 안 떠올라요. 사라져 버린 거죠. 그게 되게 슬퍼요.” 


일찍 퇴근 하고 시간 여유가 생겨도, 주말에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겨도 막상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다. 삶이 허무하고 우울하기도 하다. 


남자에게도 갱년기가 온다

형운: 오늘은 새벽에 5시 반에 깼어. 전에는 한 번 깨도 다시 자는데, 요즘은 한 번 깨면 다시 잠을 못들어.

영목: 잠이 일찍 깨는 건 확실한 거 같아. 젊을 때는 술을 진짜 많이 마시면 출근도 못하고 엉망이 되는데, 오십 지나고 나서는 술을 아무리 많이 먹더라도 일정한 시간에 눈이 떠져. 

영운: 그리고 자고 일어나도 몸이 맨날 찌뿌듯해, 몸이 개운하지 않고 무거워.

형운: 노안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짜증나는 일이야. 책을 봐도 금방 집중력이 떨어져 버리고,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도 노안으로 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애. 당장 오늘만 해도 모니터 모델명을 봐야 되는데, 이게 안보이니까, 안경을 벗고 그걸 이래 들어 올려서 봐야 돼. 그럴 때 서글프고 불편하고. 노안수술도 깎는 거라 부담스럽고 불안하지.

보근: 나는 아예 스마트폰으로 찍어. 그걸 확대해서 봐. 

영운: 내 머리카락 빠진 거 봐라. 머리카락에 힘도 없고, 머리 감으면 한주먹씩 빠지고. 우리가 나이를 많이 먹은 거지. 옛날로 따지면 노년을 향해서 달리는 나이지.


어느새 중년이 된 친구들의 푸념이다. 여성은 호르몬 변화가 일어나는 폐경기가 있는 반면에 남자들은 호르몬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 중년을 경험하는 시기에 개인차가 심하다. 또한 여성처럼 전형적인 증상도 없다보니 일부는 갱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보통은 탈모, 흰머리, 노안, 뱃살 같은 외모의 변화나, 젊은 시절보다 ‘체력이 떨어졌다’, ‘예전만 못하다’는 신체증상을 경험하게 되면서 나이가 들고 중년이 되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해마다 건강검진 받으면 뭔가 하나씩 이상한 수치들이 나오잖아요.
콜레스테롤 수치니 혈압이니 뭐 이런 게 올라가니까, 이제 젊지만은 않구나.” 


남자들이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발견되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노안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것이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남자들은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슬퍼하고 우울해하고 무기력해한다. 이럴 때 여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수다를 떨고, 울기도 한다. 음식으로 문제를 풀기도 한다. 그런데 남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애써 억누르거나 덮는다. 다른 사람에게 털어 놓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그래서 남자들의 마음의 병은 드러나지 않은 채 깊어져 간다. 


여기에는 남자는 강한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어린 시절 학습 경험과 사회 통념이 작용한다. 그리고 약점을 노출하는 것은 곧 패배를 의미하는, 경쟁 사회에서의 생존방식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다보니 노화로 인한 쇠퇴를 남들에게, 특히 다른 남자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런 중년 남자들을 일컬어 ‘거품청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겉으로는 과시적이지만 사실은 신체적으로 쇄약하고 심리적으로 힘든 거품 가득한 아저씨들을 빗댄 말이다. 


눈물이 흔해지지만 여전히 공감능력은 떨어져

보근: 드라마 같은 거 봐도 예전에는 시큰둥했었는데, 요새는 울컥해져서 눈물이 나더라고.

영운: 나도 영화보다 운적이 없었거든. 진짜 별 감동적인 것도 아니야. 그런데도 요즘은 눈물이 나. 특히나 엄마 관련된 장면이 나오면 무의식중에 눈물이 나서, 내가 민망해.


이들도 한때는 상남자였다. 그런데 이제는 드라마를 보다가도,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면서 그런 자신의 모습에 민망해한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는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어린 시절 강한 유교 문화권에서 자라난 한국 중년 남자들은 감정 표현을 억제하도록 교육받았다. 


어른이 되어 직장생활에서도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노출하거나 자기 자신의 내면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것을 나약한 ‘여성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배웠다. ‘흥분하지 마.’, ‘감정적으로 처리하지 마.’, ‘뭘 그만한 일로 삐지고 그래, 소심하게.’ 이들은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는 메시지를 무수히 들으며 생활했고, 남성성이 중시되는 조직사회에서 이런 ‘여성적인 특성’을 드려내는 것을 경쟁에서 약점을 노출하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더불어 직장에서 논리적, 이성적, 객관적 사고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면서, 논리나 이성이 더 고차원적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게 된 반면 감정이나 정서는 굉장히 불합리하고, 수준이 낮고, 믿을 수 없다고 업신여겼다. 이러한 생존방식에 누구보다 최적화되어 있는 중년 남자들은 의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고, 억눌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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