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50대 직장인 스토리 #04. 남자에게도 갱년기가(2)

(이미지출처: unsplash)


천천히 자신이 지난 일주일 동안 느낀 감정을 떠올려 보시라. 그리고 떠오른 그 감정들을 1분 동안 최대한 적어보시라. 


느낌이 어떠신가? 적을 수 있는 단어가 몇 개 되지 않는다는데 놀라지 않으셨나? 대부분의 중년 남자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스러워한다. ‘내가 그래도 제법 배운 사람인데’, ‘내가 그래도 직장생활 짬밥이 몇 년인데...이럴 수가!’ 직장생활 짬밥 따위는 필요 없다. 중년 남자들은 정서나 감정에 대해 배워본 적도 없고, 곰곰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런 걸 ‘정서 리터러시’, ‘감정 리터러시’라고 불러도 될 거다. 즉 정서나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래서 늘 경험하고 살지만, ‘무엇이 무엇인지’ 이들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고 억압한 결과로 나타난다. ‘내가 지금 기쁜지, 슬픈지, 화가 나는지, 신이 나는지’ 알아차리는 능력이 사라지자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함께 약화됐다. 결국, 이들의 ‘공감 능력 부재’는 가족 간의 관계에서 취약성을 드러낸다.


“그 아줌마 진짜 이상해. 같이 모임을 했으면...”
얼마 전 아내가 아랫집 아줌마와 다툰 이야기를 꺼냈다.
이럴 땐 그냥 아내의 편을 들어주면서 ‘헐~’, ‘대박’, ‘짱’ 맞장구 쳐주면 될 일을, ‘그 아줌마는 이런, 저런 문제가 있고, 자기도 문제가 있어.
내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얘기하는데...’ 


이러니 여성들은 나이 먹고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누구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어 할까? 인천공항에 한 번 가보시라. 아주머니, 할머니 친구들은 많아도 부부 여행객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사회생활에서도 부족한 공감능력은 이들을 환영받지 못하는 아저씨로 만든다.

경호: 대부분의 중년 남자들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아요. 자기 말만 해요. 아저씨들이랑 술 먹으면 왜 이렇게 자기 얘기만 하나 싶어요.
재원: 그게 아재의 특징이에요. 자기 할 얘기가 너무 많은 거예요. 이해는 되요. 살면서 사연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런데 그 얘기가 지금 이 자리에 어울리는지, 저 사람이 흥미로워할 만한 내용인지 판단해야 하거든요.
경호: 맞아요. 전혀 판다하지 않아요. 어떤 아저씨는 나무에 꽂혀 가지고 나무 얘기만 한 시간 하는 사람이 있고, 시종일관 텃밭 얘기만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 안 만나고 싶어지죠.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어느 정도의 인정욕구도 있고 자기표현 욕구도 있다. 그리고 중년에는 이런 욕구가 더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런 욕구들이 공감능력 부재와 결합하면서 공감 안 되는 훈시를 늘어놓는 아저씨가 되는 거다.


집안일이라는 새로운 부담

나이를 먹고 사회적 역할이나 관계가 변하면서 이 남자들은 가정에서도 변화를 경험한다. 한국 사회 중년 남자들은 ‘집안일’은 아내의 몫이고 자신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 우선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생각은 남자들의 언어에서도 드러나는데, 집안일은 ‘하는 것’이 아니라 ‘돕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특히 치열한 삶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그 결과로 사회적 지위와 부를 얻어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일수록 집안일을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저는 애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도 잘 안 나요. 와이프 이야기로 애 둘이 연년생으로 키웠는데 어릴 때 기저귀 한번 안 갈아줬데요.” 


“30년 동안 아침 다섯 시 반에 나가면 열한 시에 들어왔으니까. 와이프도 내가 살아가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그냥 존중해 주는 거죠. 자기가 집안일을 좀 더 한다, 육아를 더 한다. 일종의 내조를 해 준거죠.”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퇴직한 분들의 이야기다.

남자들이 기억해야 할 점은 중년 남자들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의 상당 부분은 배우자와 관계에서 기인한다는 거다. 이런 측면에서 이들 남자들의 가사 분담은 부부 관계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 남자들도 할 말은 많다. 일과 삶의 균형은 최근 몇 년 사이의 변화이고, 그 당시에는 다 그렇게 바쁘게 살았으며, 그렇게 일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을 중심으로 보내면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가정생활이나 자녀양육은 전적으로 아내가 책임지는 구조가 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회사일 때문에 집안일을 당연히 면제받는 시대는 지났다. 그래서 중년 남자들에게 집안일에 대한 갈등과 심리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

보근: 집에서 부엌을 드나드는 일이 많아지는 것, 빨래를 한다거나,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일 하는 횟수가 늘어났어. 
형운: 나는 와이프가 청소를 하잖아, 그럼 아들이 스팀청소기 돌렸는데. 아들이 군대 가버렸으니까 이젠 그게 나한테 오겠네.
영운: 옛날 같으면 와이프한테 아침밥을 차리라고 할 텐데, 요즘은 그러면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요즘은 금요일 밤에, 토요일 밤에 빵이랑 이런 거 테이블에 차려 놓으면, 식구들이  일어나서 알아서 먹어. 
영목: 집안일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던데. 그전에는 회사 일이 바빠서 눈에 안 들어왔는데, 이제는 집에 가면 집안일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서, 특히 맞벌이의 경우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중년 남자들의 비율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40대 후배는 50대 남자들의 이런 모습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아직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남자들에게 뿌리깊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문제는 남자들은 변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여성들은 많이 변했다는 거예요.
결국 20대, 30대 때는 정신없이 사느라 몰랐지만, 40대가 넘어가고 애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면 부부사이에서도 생각이 갈리는 것 같아요.
여성들은 ‘내가 참을 만큼 참았고, 내가 평생 골아먹었다’라고 생각하는 거고,
남자들은 ‘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어’
이러다보니 50대 넘어가면서 부부관계도 갈리지 않나 생각돼요.”


중년기 부부는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경험 때문에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오히려 심한 갈등을 경험하게 되고, 위기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남자든 여자든 집안일에 대한 한 쪽의 분담 비율이 30% 이하라고 생각될 경우 이혼확률이 두 배 이상 높아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제로 혼인 지속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이 2016년에는 전체 이혼의 30.4%를 차지했는데, 이는 OECD 평균인 26%보다도 높다.


한국의 중년 남자들은 사회적으로나 가정에서 그리고 자기 내면에서 이런 크고 작은 아픔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사는 게 왜 이리 힘든가, 뭐하려고 이리 아등바등 사나, 왜 이리 재미없고 허무한가, 요즘은 왜 이렇게 화가 치밀어 오르나 싶은 생각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마음의 병, 몸의 병들이 많다. 


이제는 그것들을 조금씩 내어놓고 표현해야 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누군가에게는 묻어놓았던 이야기들을 내놓아야 한다. 그 사람이 아내라면 더 없이 좋다. 가장 마음 편한 누군가와 이런 마음속 이야기들을 나눠보면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50대 직장인 스토리 #04. 남자에게도 갱년기가(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