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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직장인 스토리#08. 운인가, 실력인가(2)

(이미지출처: unsplash)


사람들은 왜 성공을 자신의 노력과 재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다들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했다고 우긴다. 그런 이유는 노력-성공 가설이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노력과 삶의 방식이 만든 성공신화! 얼마나 폼나고 있어 보이는가. 물론 그들의 치열한 삶은 당연히 인정받고 존중 받아야 한다. 그들의 성취와 성공에 대한 자부심에도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들의 성공 스토리 또한 우리 삶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그런데 그들의 성공 스토리 이면에는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이 숨어 있다. ‘사후확신편향’이란 말이 있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실제로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도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국가대표 축구경기처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경기가 끝나고 나면, 마치 나는 그런 결과가 나올 것을 이전부터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듯한 분석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것 봐, 내가 뭐라 그랬어.’ 우리가 결과를 알고 나서 흔히 하는 말이다. 이 말인즉슨 ‘나는 이전부터 결과가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건데, 그렇게 정확하게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면 스포츠토토를 해야지, 왜 경기 다 끝나고 나서 유튜브에서 자신의 선견지명을 자랑할까?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떤 결말을 알고 나면, 그 결말에 대한 이유를 지어내기 쉽다. 그래서 나의 성공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후확신편향이 강력하게 나타난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성공신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현재의 성공이 자신의 치열한 노력과 혜안만으로 성취된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현재 모습을 이루기 위해 일생을 치열하게 살아왔고, 현재의 성공이 그 때 꿈꾸던 모습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예외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들 자신도 지금의 결과가 있기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우여곡절을 지나, 돌고 돌아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인생이 선형적으로 흘러온 듯한,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을 꿈꾸며 시작한 것 같은 설명이 가능한 것이지, 현재의 성공을 당시에도 예측하고 있었다는 건 전형적인 사후확신편향이다. 

“조그맣게 회사를 시작할 당시에는
지금처럼 큰 회사로 성장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수성가한 어느 금융회사 회장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는 자신이 편향된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편향된 시각으로 자신의 인생을 회상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더 겸손한 성찰이 필요하다.


또 다른 심리 현상도 있다. 사람들은 모두 실제보다 스스로를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을 ‘워비곤 호수 효과’라고 한다. 워비곤 호수는 개리슨 케일러라는 미국의 작가가 만든 가상의 마을이다. 이 가상의 마을에는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만 모여 사는데, 이들은 모두 평균 이상으로 똑똑하고, 잘 생기고, 예쁘고, 키도 크단다. 그런데 모두가 평균 이상인 마을은 현실 세계에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런 논리적 모순을 풍자한데서 시작한 워비곤 호수 이야기는 심리학자인 토마스 길로비치를 통해 ‘워비곤 호수 효과’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기업의 매니저들 중 90%는 자신들의 성과를 ‘평균 이상’이라고 평가한다. 또 자기 잘못으로 사고를 낸 경험이 있는 운전자들 중 80%는 자신의 운전 실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과 실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건을 더 잘 기억한다. 그래서 내가 들었던 칭찬보다 비난을 더 오래도록 기억한다. 또 즐겁고 좋은 기억보다 힘들고 어려웠던 사건을 더 잘 기억한다. 그래서 성공이라는 결과를 얻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었던 것보다 방해하는 것을 더 크게 인식한다. 그것이 성공에 있어서 행운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이중적이다. 잘 되면 내 탓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거나,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은 우리의 자기중심성과 이중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다. 그래서 나의 성공은 나의 노력 때문이지만, 남의 성공은 운이 좋았던 것이다. 반면에 나의 실패는 운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남의 실패는 그 사람의 능력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사람들은 실패를 설명할 때는 운이 나빴다는 사실을 기꺼이 그리고 재빨리 받아들이지만, 성공을 설명할 때는 행운의 영향을 과소평가한다. 이것이 인간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고,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런 경향이 나쁘거나 잘못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특성이라는 의미다. 잘못(error)이 아니라 한계(limit)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심리적 기제를 안다고 해서 이런 한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조금 더 의식하자는 거다. 한번쯤 나의 성공이나 실패에 대한 해석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자는 의미다.


역사는 의외로 사소한 우연들에 이끌려 왔다

자기 운명은 혼자 힘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여러분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시라. 그 때 그 회사에 입사를 하고. 그 부서에 배치를 받고, 그래서 그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 전부 나의 노력과 의지만으로는 된 것은 아니다. 부서 이동을 하고, 그 상사를 만나고, 때마침 그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된 것도 전부 내 뜻대로 된 것은 아닐 거다. 누군가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매출이 반토막 났지만, 또 누군가는 평생 벌어도 만져보지 못할 큰돈을 벌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우연들이 내 삶에 작동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시장을 이기는 사장은 없어요.” 어느 미디어그룹 사장님이 지나가듯 던진 한마디가 뇌리를 스친다.


실제 역사도 의외로 사소한 우연들에 의해 이끌려왔다. 모나리자가 지금처럼 유명해진 것도 도난사건 때문이란다. 모나리자가 대낮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을 당하자 이 소식을 들은 파리 시민들은 모나리자가 걸려 있던 텅 빈자리를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을 찾으면서 유명세를 더했다. 


또 수많은 예술적 노력이 성공으로 연결되는지의 여부는 초기 행운에 달려 있단다. 어떤 노래에 대한 평가는 처음 다운로드 받은 사람이 어떤 평점을 부여했는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거다. 만약 첫 다운로더가 좋은 평점을 남기면 다른 사람들도 그 노래에 좋은 평점을 매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처음에 다운로드 한 사람이 그 곡에 평점을 낮게 준다면 그 곡은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확실히 줄어든다. 


초기의 우연한 성공이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도 있다는 실험 연구도 있다. 연구자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일부 집단에는 모금액의 1%를 보내고 다른 집단에는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펀딩 마감일까지 모금이 되는 양상을 관찰했다. 결과는 초기 1% 모금액을 받은 집단이 모금 마감일까지 계속해서 모금액의 차이를 벌려갔다. 청원활동에 대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동일한 내용의 청원에 대해서 한 쪽 게시물에는 청원 초기에 12명이 동의를 했고, 다른 게시물에는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랬더니 초기에 12명의 동의를 얻었던 게시물이 계속해서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초기에 우연일 수 있는 성공이 결과적으로 성패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이런 우연히 실험실에서만 작동할까? 우리 인생에는 작동하지 않을까? 동료들보다 자신이 좀 더 성공했다면 자신의 노력뿐만 아니라 거기엔 행운도 따랐을 것이다. 반면 자신이 만약 승진이나 이동에서 불이익을 당했다면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상황이 도와주지 않았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선배들이 보직을 안내려 놓고 장기집권 하다보니까, 우리 회사에서는 우리가 낀 세대가 되가지고 피해도 보고...” 같은 능력과 배경을 지닌 사람이라도 일의 성패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자신의 성공이나 실패, 그리고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실패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인생의 단계와 성공과 행운

그렇다고 노력이 필요 없다거나 노력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성공한 사람은 예외 없이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했다. 더 치열하게, 더 열심히 살아왔다는 표현으로 부족할 만큼 분투하는 삶이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자신의 성공을 모두 노력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는 말자는 의미다. 이유는 이렇다.


사회적 성공이나 성취로 인정받았던 남자들일수록 자신의 노력이 만든 개인의 신화를 쓴다. 그리고 그런 신화는 나이가 들면서 깨지게 되는데, 그때 끔찍한 추락을 경험한다. 우리의 성공이 모두 자신의 노력 때문이었다면, 우리의 실패 또한 전적으로 자신의 게으름 때문이어야 한다. 반면에 자신의 성공이 모두 자신의 유능함 때문이라면, 자신의 실패 또한 오롯이 자신의 무능함 때문이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노력과 행운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성공과 출세에 대한 집착을 서서히 거두어야 성공 또는 실패 이후에 새로운 출구를 모색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이자 ‘소셜 애니멀’이라는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브룩스가 어느 독자에게 전한 성공과 행운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얼마나 많은 성취를 오롯이 선생님의 힘만으로 이루어 냈는지 생각해보는 단계를 거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20대에서는 자신을 슈퍼맨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당신 자신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은 당신을 발전하게 만드는 열정적인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30대와 40대는 당신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듬과 동시에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의 힘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때 중요한 질문은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시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50대와 60대에는 사회적 관계가 개인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매니저로서 당신은 부하들의 꿈을 응원하는 인생의 코칭 단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70대와 80대에는 고대 역사학자와 같은 사람이 되어 사람들의 삶을 회고해보며 행운의 중요성 때문에 놀랄 것입니다. 요약하면, 우리가 성숙하고 시야가 넓어질수록, 자신의 영향력은 작아지고, 반면에 자신에게 밀려오는 상황의 힘이 더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성취한 업적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자율성과 자신감을 가진 개인으로서, 야심 찬 기업가로서, 당신이 달성한 모든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그것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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