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떤 기록 Mar 10. 2021

계절이 흐르는 집

10th. Issue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마당 한 편에는

갖가지 허브를 심을 수 있고,

가을이면 감과 호두가 익는

적당한 크기의 마당이 있는 집.


따뜻하고 선선한 날이면,

자리를 펴고 커피를 내려

햇볕을 쬐는 상상을 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주택 수리의 고됨도

그런 기대들로

견뎌낼 수 있었다.




봄 : 예쁘고 여린 것들



혜숙은 20대 초반,

자취를 할 무렵부터 혜숙의 방에는

항상 화분이 있었다.

그러나 고양이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화초를 기르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마당에서 화초를 기를 수 있게 된

지금도 어려운 점은 있다.

여름의 긴 장마와 겨울의 추위를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한 품종이 아니라면

아차 하는 순간에 시들어 버린다.

그래서 기를 수 있는 화초의 종류는

얼마 되지 않는다.



혜숙은, 그 상황들을 다 알지만

여리고 약한 것들에 눈길을 준다.

어째서 예쁜 것들은 약하고 손이 많이 것이냐고

몇 번이나 데려갈 수 없는 아이들을

만져본다.


가끔씩

이번에는 꼭 성공하겠다고 말하며

비교적 키우기 어려운 아이들을

데려왔지만 결과는 매번 좋지 않았다.

그때마다 자기가 신경을 못써줘서

죽었다며 자책을 했다.



서점에서 키우고 있는 아이들은

아주 잘 자라서

이미 분갈이를

몇 번이나 했을 정도이니,

화초를 키우는 재주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환경적인 문제가 더 큰 것 같다.


올해도 여러 상황들과 씨름하며

예쁘고 여린 것들에 도전하는

혜숙의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여름: 쉽지가 않다


잡초의 생명력은 정말 놀랍다.

그렇게 베고, 뽑고, 땅을 뒤집어도

금세 다시 무성하게 자라난다.

봄과 가을에는 한 달에 한번,

여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잡초를 제거해야 한다.

그대로 방치해 두면

관리가 안된 빈집같이 보였고,

어쩌다 대문이 열려 있을 때는

원하지 않았던 방문객이 있기도 했다.



일이 적고 여유가 있을 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갑자기 밀려드는 외주업무와

책방의 일까지 더해지고,

방문하는 지인들을 대접하다 보면,

귀중한 휴일을 온종일 마당 정리에만

매달려야 했다.



정말 무슨 수를 내야겠다 싶어

주위에 물어봤지만,

바닥에 콘크리트를 치라는(?)

원론적인 답만 돌아왔다.

동네를 살펴보아도

흙마당은 우리 집 밖에 없다.


정말 쉬운 게 하나도 없는 집이다.




가을 : 감과 고양이


마당에는 감나무와 호두나무가 있다.

집주인의 말로는 감나무는

60년이 넘은 나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감이 열린다.



이사 온 뒤 첫 해 가을에는

온 마당에 감이 떨어져서

그대로 썩었기 때문에

벌레와 날파리가 들끓었다.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어 감을 땄는데,

3분의 1 정도를 수확하니

그 양이 4박스 정도가 되었다.

나머지는 너무 높은 곳에 열려 있어

손대지 못했다.



감은 떨감이었다.

그대로는 먹을 수 없고,

말랭이나 곶감을 만들어야 했다.

우리는 그 정도의

시간적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포항에 계신 혜숙의 아버님께

보내드렸다.



무뚝뚝하신 아버님도

감들을 받아보시고는  

‘거, 감이 좀 많긴 하네’

하고 굉장히 놀라셨다는 말을

에둘러하셨다.

나중에 만드신 감말랭이를

잔뜩 보내주셨는데,

‘거, 조금 힘들긴 하더라’

하고 굉장히 고생하셨다는 말을

에둘러하셨다.



그리고 이 시기에

우리에게 나타났던 아이가 있다.

혜숙은 ‘째폴보&프렌즈’의

‘버찌’라는 고양이를 너무 좋아했는데,

그 ‘버찌’와 행동거지가

비슷한 고양이가 우리 집 마당에

자주 보이더니 어느 날부터

마당에 터를 잡고 눌러앉아 버렸다.

우리는 임시로 ‘까만 버찌’라는 의미로

‘흑찌’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입에 붙어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이미 중성화도 되어있었고,

깨끗하고 다친 곳도 없어서

외출 냥이인가 싶어 주위에 알아봤다.

하지만 흑지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딱히 맡아서 기르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이 아이는

다른 고양이들에게 상냥하기까지 해서

어린 고양이들과 잘 놀아줬고,

자기 밥그릇의 밥을 뺏어 먹어도

더 먹고 가라는 듯

자리를 피해 주었다.


흑찌는 서점으로 출근하는

혜숙을 배웅해주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중을 나왔다.

세상에 이런 꿈같은 아이가

우리에게 오다니.


우리가 가족이 될까도

수없이 고민했지만,

이미 우리 집은 고양이들로

포화 상태라 더 이상은 무리였다.


좋은 곳으로

입양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마당에 임시로 집을 만들어

겨울까지 함께 지냈고,

지금은 좋은 반려인과 함께 살고 있다.

이 아이가 우리에게 주고 간

상냥함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겨울 : 눈


강릉은 한번 눈이 오면

무릎까지 쌓인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주하고서부터

그런 눈은 거의 오지 않았다.

혜숙이 처음 강릉 여행을 왔던

7년 전에도 눈이 많이 왔다고 했다.

혜숙은 매해 겨울마다

그때의 눈을 기다려 왔다.



얼마 전 봄이 다가온 날에

눈이 내렸다.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니,

눈이 시릴 정도의

하얀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눈을 치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보니

눈 내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마당의 향나무는

쌓인 눈의 무게 때문에

축 처져 있었고,

혹시나 넘어질까 싶어

계속해서 눈을 털어냈다.



이런 눈 오는날

우리집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데려와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긴 따뜻해, 얘들아!



- 10th.Issue END -



영상은 아래의 링크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O-4akBHCkc0





작가의 이전글 지치지 않기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