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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 Nov 12. 2021

이혼인데 비혼입니다

남편은 없고 남친은 있어요. 아, 애기도 있습니다.


 "다음에 남편이랑 애기랑 같이 한 번 만나요!"


 애매하게 친한 사이의 사람에게 위와 같은 제안을 받는다고 해도 이제는 당황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웃으며 '네, 그래요!' 하면 되니까. '그래서 언제 만날까요?'라는 질문이 뒤따라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약 정확한 일정을 잡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결정을 해야만 한다. 밝히느냐, 숨기느냐. 또는 적당히 얼버무리느냐.


 얼마만큼 가까운 사이인지, 우리 가족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만한 존재인지 등에 대한 폭풍 같은 고민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 이후는 간단하다. 속이는 것에 아무 거리낌이 없어진 만큼 거짓말도 쉽다. "남편은 조금 아파서..." 등의 말을 할 때 흔들리는 눈동자와 떨리는 목소리 등이 동반된다면 "무슨 사정인지 말해봐요!"라고 캐묻는 사람은 없다. 눈치 없는 누군가 캐묻는다 할지라도 인상을 찡그리며 "아... 그게... 사정이 좀 있어요." 라며 말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면 보통은 그럭저럭 넘어가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꾸 물어보는 건 예의 없는 비상식인이나 할만한 행동이다'는 제스처를 확실히 취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질문을 해댈 정도로 예의와 눈치가 부재한 인간이라면 굳이 관계를 맺고 지낼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한마디로 손절한다는 뜻이다. 


 아들의 유치원 생활, 나아가서는 학교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실대로 알려줄 수도 있다.


 - 이혼한 상태로 일곱 살 아들 혼자 키우고 있고요, 남자 친구는 있습니다. 그리고 비혼 주의자예요. 


 몇 마디 말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대부분 후속 질문이 따라오기 때문에 가능하면 얼버무리는 쪽이 편하긴 하다. (같은 설명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것은 무척 귀찮은 일이므로) 개인차는 있지만 보통 첫 번째로 이혼 사유를 물어보고, 남자 친구는 아들에게 괜찮게 대하는지를 걱정한 다음, 왜 비혼 주의자인지를 궁금해한다. 


 이혼 후 연애 중이고, 비혼 주의자인 육아맘이 전 세계에 나 한 명은 아닐 거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어떤 특성 때문인지, 높아지는 이혼율에 비해 주변에서 이혼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로 결혼하고 이혼한 커플들까지 다 합하면 그 수가 꽤 될 텐데도 말이다. 이혼은 흠이 아닌 세상이라고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어머, 너 이혼했다고? 에구... 어쩌다가 그런 결정을... 괜찮아?"


 라는 질문은 평범해 보이지만,


 "어머, 너 결혼했다고? 에구... 어쩌다가 그런 결정을... 괜찮아?"


 라고 하지는 않잖아.


 한 마디로 약간 재수 없는 일이지만 이혼하는 사람들도 많고 하니 굳이 따지자면 '흠'까지는 아니야, 라는 걸까. 나는 그 속에 들어있는 부정적인 어조가 마음에 안 든다.


 "결혼, 축하해~"


 라는 말만큼


 "이혼, 축하해~"


 라는 말도 평범하게 쓸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어떨까. 그때야 말로 '이혼이 흠은 아닌' 사회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모르지만, 이혼 얘기를 했으니 남자 친구와 비혼에 대한 얘기도 해볼까 한다. 보통 이혼을 질문한 다음 육아와 연애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고, 어째서 비혼을 추구하는지(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기 때문에 글도 그런 순서로 정리하려 한다.


 애당초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게 된 것도 이런 연유다. 누군가 "이혼인데요. 비혼 주의자고요. 육아와 연애를 함께 합니다."라는 요지의 책을 좀 써주면 좋겠는데, 편하게 읽을만한 이혼+비혼+연애+육아서를 못 찾았다. 새로이 지인이 된 이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는 귀찮고, 생략하기엔 오해할만한 요소가 많은 이슈라 간단하게 "OO책 읽어보셨어요?"정도로 축약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안 써서 내가 쓴다.


 어쨌든, 연애. 그렇다. 나는 연애와 육아를 함께 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육아 동지 포지션을 잡아버린 내 남자 친구에 대해 처음 알게 될 때, 다들 공통적으로 놀라는 지점이 있다. 먼저 나보다 한 살 어리다는 것. 그리고 결혼 경험은커녕, 연애 경험도 전혀 없었다는 것. (꽤나 멀쩡하고 젊은 청년이라는 데서 다들 많이 놀라더라. 왜 놀라는 거야!)


 아이 키우는 이혼 경험 있는 여성이 연애를 한다고 하면, 왜 자연스레 나이 많은 아저씨를 떠올리는가. (반대로 이혼 경험 있는 육아 대디가 연애를 한다고 말할 때 흰머리 뽀글뽀글한 아줌마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잖아!) 미디어에서 비추는 모습이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적 생각들이 얽히고설켜 그런 고정관념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다. 이것에 대해 할 말이 무척 많지만 다음번에 순서대로 정리해서 다시 적는 게 좋겠다.


 어쨌든 산뜻하고 귀여운 청년과 연애를 하고 있다. 이 친구와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마도 아이를 잘 봐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육아의 달인이다. 주말은 보통 아침부터 저녁까지 쭉 함께 시간을 보낸다. 주말에 느지막이 눈을 뜨면, 일찍 일어난 아이와 남자 친구가 거실에서 놀고 있다. 남자 친구는 방금 사 온 빵과 샌드위치를 식탁에 차려놓고 나를 깨운다. 이 정도 설명하면, 그런 괜찮은 젊은 남자가 너를 왜 만나냐, 라는 어조로 이어지는 질문이 있다.


 "그 사람은 너의 어떤 점에 반했대?"


 글쎄...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으니 다음에 인터뷰라도 해봐야겠다 싶다. 어쨌든 나는 축하받을만한 행복한 이혼을 했고, 귀여운 연인과 사랑스러운 아들을 함께 양육하며, 즐거운 매일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왜 비혼 주의자냐고? 바꿔서 질문하고 싶다. 왜 결혼을 하고 싶어 해야 해?


 이미 한 번의 결혼과 이혼으로, 결혼제도의 단점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나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어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재미있는 점은, 남자가 괜찮다면 결혼하고 싶어 할 거고, 결혼을 원치 않는다는 건 남자가 별로라는 뜻이라 생각한다는 거다. 꽤 예전엔 아무리 좋은 남자를 갖다 놔도 결혼은 안 할 거라고 조목조목 설명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으나, 지금에 와서는 다 귀찮아져 버려서 "예, 그러게요." 하고 웃고 넘긴다. 뭐가 그렇다는 건지 나도 모르고 그들도 모르지만 더 말하기 싫으니까.






이혼했는데, 연애 중이고, 비혼 주의자라는

그 한 줄 자기소개에

 변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이제는 조금 지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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