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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 Nov 15. 2021

"남편분이랑 같이 만나요."


 친한 동네 언니가 소개해준 지인이 있었다. 오가며 마주치면 인사하고, 가끔 만나면 전해 듣는 자녀 소식에 가끔 선물을 사주기도 하는 사이. 내가 일곱 살 아들과 함께 살고 있고, 개와 고양이를 키운다는 정도를 알고 있는 사람. 하지만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 


 대외적으로 남자 친구에 대해 얘기할 때 '남편'이라고 지칭하기도 하는데, 많은 번거로운 설명 과정을 생략해주는 마법의 단어이다. 남자 친구와 아들과 나, 셋이 함께하는 이야기들은 '보통의 가정'이라는 필터를 씌우면 자연스러워 보이는 모습이니까. (정확하게 따져보면 나와 아들은 '가족', 남자 친구는 법적으로 '완전한 남'이지만)


 "제가 개 산책시킬 동안, 남편은 아이와 운동장에서 잡기 놀이를 하며 뛰어놀았어요."


 "남편은 매일 퇴근 후에 고양이 화장실 청소를 하죠. 안 그랬음 이렇게 여러 마리 반려동물을 키우기 힘들었을 거예요."


 "아들이 남편이랑 몸으로 치대고 노는걸 너무 좋아해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운동 학원 같은걸 알아봐야 하나?"


 엄마. 아들. 그리고 엄마의 남자 친구. 

 법적으로 챙겨야 할 하등의 책임도 의무도 없지만 아이가 어릴 적부터 함께 육아에 동참해 온 남자 친구. 의무적으로 하는 육아가 아니기에, 더더욱 사랑으로 가득 찬 관계라는 걸. 한두 해 된 가벼운 관계가 아니라는 걸.


 굳이 이렇게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남편' 한 글자면 간단했다.


 그래서 지인이 이렇게 말했을 때 당황했다.


 "다음에 남편분이랑 같이 만나요."


 ...나는 남편이 없노라고 말해야 하는가? 


 지금껏 속여와서 미안하다고?


 남편은 없지만 남자 친구는 있는데, 육아에 적극적이고 성실하고 아무튼 아이에게 아주 잘 대하는 그런 삼촌임을 알려야 하나?


 남자 친구와 나는 법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고, 앞으로도 없으리란 사실도 말하는 게 좋을까?


 우리 셋은 누구보다 가족 같은 사이로 지내고 있노라고,

법이 보호하지 않아도 서로 사랑하고 지켜주는 그런 사이라고.

의무는 없고 오로지 그러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몇 년간 지속되어 온 관계임을 전달하는 건 너무 과한 설명일까?


 그걸 알린다 할지라도 남자 친구와, 아이와 나, 이렇게 셋과 다른 가족이 만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난 또다시 얼버무렸다. 남편은 바쁘고.. 아프고.. 


 "다음에 아들이랑 저랑 둘이서 올게요!"


 당당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과, 일일이 납득하도록 설명해주기 귀찮다는 마음이 충돌한다. 친부도 찾지 않는 아이를,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데다 법적으로 완전 남남인 한 성인 남성이 아빠처럼 챙긴다는 사실은 분명 자랑할만한 좋은 일이 아닌가? 그 좋은 일을 오늘도 나는 숨기고, 적당히 둘러댔다. 지금 이 상태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서. 굳이 변화를 주고 싶지 않아서.


 그 지인과는 여전히 친하지만 벽이 있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 내 가족사가 궁금할 테지만 캐묻지 않는 걸 보면 꽤 매너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고마운 한 편 미안하기도 하지만, 깊게 사색에 빠질 겨를도 없이 또 하루가 후다닥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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