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 Nov 23. 2021

만약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망상이 심한 나답게 그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만약 지금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결혼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몰아치는 폭력으로부터 나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결정이 '이혼'과 '도망'뿐인 그 길을 굳이 걸을 필요가 없다면 말이다. 


 이 모든 경험을 직접 겪지 않고, 말로만 전해 들은 스물여섯의 나라면 결혼을 택하지 않을 거다. 결혼? 결호온~?! 분명 어린 나는 코웃음 치며 내 발로 지옥불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야 없지 생각할 테다. 애초에 사랑으로 한 결혼도 아니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결혼까지 이어지지 않을 만남이었으니까. 두 줄이 그어진 임신테스트기를 부여잡고 지하철 계단에 앉아 대성통곡을 하던 나는 기꺼이 새 생명을 위해 결혼을 택했다. 어쨌든 아버지가 있는 게 아이에게 좋지 않을까? 마침 상대방도 원하고 있으니 조건쯤이야 조금 안 맞아도 맞춰가면 되지. 아니, 상대가 나에게 맞추지 않더라도 온전히 내가 맞추면 될 일이다. 그렇게 자신했다.


 때릴 줄은 몰랐지. 그런 원초적이고도 저급한 이유 때문에 이혼이라는 결정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지.


 바람을 피웠다거나, 돈을 안 벌어다 줬으면 어떻게든 맞춰가며 견뎠을 나다. 한 번 결혼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갈라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단 한 번도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본 적 없었던 데다가, 그다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더욱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모든 것은 아이를 위해서. 하기 싫은 결혼까지 감행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든 참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전남편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가 나만 때렸다면 아마 나는 여전히 맞고 사는 아내의 삶을 살고 있을 거다. 브런치에 '매 맞는 아내의 삶이란...' 이딴 글을 개제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보다는 아이가 더 많이 맞았다. 더 위험했고, 더 끔찍했다. 아이를 위한 '결혼'이 아이를 위한 '이혼'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랑스런 내 새끼가 죽을 뻔했다. 당연히, 결정은 순식간이었다.


 이 모든 경험을 직접 겪은 현재의 내가 고스란히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게 된다면 어떨까. 단지 귀로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게 아니라, 아이의 살결을 피부로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말이다. 


 '엄마, 이거 봐! 내가 혼자서 종이 접기로 이걸 만들었어!'


 꼬물거리는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우다다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 잔뜩 신이 난 눈빛. 힘차게 안겨드는 작은 몸. 씨익 씨익 거세게 내쉬는 숨과 두근대는 따듯한 신체. 더 칭찬해 줘, 더 안아 줘, 하고 칭얼거리는 목소리. 손가락 사이사이에 감겨오는 얇은 머리카락들. 뽀송한 볼의 솜털. 반짝반짝 공기마저 춤을 추게 하는 생동감 넘치는 존재. 그 아이가 없는데 나 혼자 멀쩡히 살 수 있을까...?


 가정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겁다. 아마 그때로 되돌아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이제는 많이 안정되어 상담소를 찾을 필요 없는 나의 작은 꼬마도, 내 옆을 조용히 지키는 소심한 남자 친구도, 모든 게 다 만족스러워 그런 걸까. 요즈음엔 마음속에 미움이 없다. 이혼 직후에는 뿌득 뿌득 이를 갈며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저주했던 전남편이, 이제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만나게 해 주고, 착한 지금의 남자 친구도 만나게 해 준, 사랑의 큐피드처럼 느껴질 정도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분이랑 같이 만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