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뒤 '시작'

잠시 멈춘 시간 속 다정한 위로.

by Sunyeon 선연

시작

잠시 멈춤,


셋 중 어떤 것이 가장 어려울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쉬이 답을 정할 수 없다. 내겐 늘 셋 다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일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잠시 멈춤.' 이라는 것이다.


교통 신호에도 삶에도 멈추는 일은 중요하다. 50분 수업 이후에 차임이 울리듯, 모두에겐 숨 쉴 '10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그 사실을 잊는다. 업무를 쉬는 날에도 두고 온 일을 뇌 끝에 걸친 채 리모콘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쉽게 배달 어플을 켜면서도 당장 다음달의 카드값을 걱정한다. 소비에 대한 염려 때문에, '먹고사니즘' 탓에 우리는 쉽게 일을 놓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긴 휴식이 필요한 시기를 맞닥뜨릴 때도 퇴사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다.


내게도 퇴사는 당장 내일이 무너질 것 같아 쉽게 결정하면 안 될 것만 같은 무언가였다. 5년 10개월, 길게 일했던 스타벅스의 앞치마를 벗는 데에 무려 10개월 이상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으니까. 시작엔 늦은 나이란 없다지만, 서른 여섯에 시작해 마흔 넘어 달게 된 '관리자' 직급을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잠시 멈춤' 버튼을 찾아 누르고 싶다가도 관성처럼 출근하면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뭐.' 생각하며 현실을 잊었다. 쉬어야 할 시간에는 업무를 어딘가에 걸친 듯 사내 앱에 들락거리느라 손가락이 바빴다. 매장에서 잔뜩 묻혀온 원두 쩐내가 집 안에서도 잔뜩 풍기는 것 같았다.


그러다 모종의 이유로 작년 이맘때쯤, 퇴직원을 냈을 때. 당장 나는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밤이 공허해졌다. 쉽잖게 했던 시작에 '끝'이라는 온점을 찍었지만 마음은 온통 묵직했고, 이대로 쉬어도 괜찮은 걸까 싶은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스타벅스 생활을 하면서 나는 이미 나이를 먹었고, 이제 다른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는 아닐까 뒤늦게 불쑥 기우가 솟았다. 발목의 상태가 좋지 않아 꽤 오래 쉴 생각으로 호기롭게 퇴직했지만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어떤 것이어야 할까, 생각하면 눈 앞이 캄캄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고 누군가 그랬다던데, 별 위로는 안 되네 싶었다.


'잠시 멈춤.'


그렇게 나는 잠시 멈춤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삶의 여러 굴곡들을 넘으며, 1년의 시간들을 여러 가지 경험들로 채우는 경험들을 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삶은 어색했지만 조용하게 고양이와 보내는 오후는 평온했고, 음식을 쓸어 넣지 않아도 되는, '천천히 하는 식사'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정돈해 줬다. 쌓이는 빨래들을 가지런히 정돈할 수 있는 일상은 차라리 감사했고, "오늘은 날씨가 좋네" 중얼거릴 수 있는 아침은 신선했다. 매일 저녁 10분을 가지런한 필사로 채우며, 누르는 감각에 스스로를 맡기는 여유를 만날 때면 가만히 작은 행복을 느꼈다. 재생되던 음악의 '잠시 멈춤'을 누른 것처럼 나는 느릿하게 일상의 패턴을 만들어 갔다. 여유가 없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격무에 시달릴 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삶이다.


어떤 끝은 시작과 맞닿아 있겠지. 마찬가지로 어떤 시작은 또 끝과 아주 가까이 마주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만물이 가만히 소생하는 봄. 괜찮다면 스스로에게 '잠시 멈추는 시간'을 선물해 보면 어떨까, 권하고 싶다.

무언가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거기서부터

새순처럼 돋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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